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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는 사람의 마음을 만지는 일을 한다.

법률사무소 봄 정현주변호사

by 정현주 변호사


나는 변호사로서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사람의 마음을 만지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나 스스로는 사람의 마음을 잘 알 수가 없다. 나는 투명한 거울과도 같다. 거울은 상대의 마음을 담는 것 같지만 자신의 생각을 담지는 않는다. 상담의 기본은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일단은 내재되어 있는 화, 억울함, 스트레스들을 '표현(분출)'하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관계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위험 신호다. 우리는 대부분 상대에게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낄 때 말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원래부터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도 그렇다. 상대방에게 이해와 공감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될 때, 더 나아가 나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될 때, 더 나아가 상대방이 나를 비난할 수도 있다고 생각될 때 우리는 상대방에게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다음은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좀 더 나은 대안을 고민해 보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는 변호사로서의 전문지식, 경험칙들을 토대로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변호사를 찾는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이 바로 '현 상황의 해결'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변호사를 만나러 올 때는 그 나름대로의 각오와 다짐을 하고 오지만, 어려운 결정을 내리기 전에 상황을 마주 보는 일은 여전히 힘들기만 하다.




사람의 마음은 섬세하다. 나는 우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억울함, 화, 고통과 같은 감정들을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렇게 때로는 하염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각자의 본질적인 색깔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다음은 얼른 그 세계로 미끄러져 들어가 바로 옆에 털썩 걸터앉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잡아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오로지 그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손을 잡아주는 정도의 일이다. 어려움에 빠져있을 때 실제로 그 일을 헤쳐나가야 할 사람은 스스로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겪어야 할 고통을 경감시켜주기도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이 올 때 본능적으로 회피를 택한다.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것은 회피를 택하는 그들에게 어렵지만 분명히 이 상황에 대한 대면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하는 것이다.


물론 해결책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몹시 냉정한 말들이 나올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우선은 말없이 그의 옆에 걸터앉아 함께 그가 겪고 있는 현재의 상황, 감정, 어려움들을 함께 느낀다. 감정들이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게 지나갈 때까지.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이 되면 나는 비로소 어렵지만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들을 꺼내놓기 시작한다.


분명히, 변호사를 찾는 사람들은 그 말들을 들으러 나를 찾아온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처럼 변호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사람의 마음을 듣고 만지고 또 좀 더 나아지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고 변호사를 찾아올 정도의 사람이라면(그 정도로 문제해결의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분명 그 이야기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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