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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남편, 기다리면 다시 돌아올까?

이미 떠난 마음은 돌아오지 않는다.

by 정현주 변호사


어느 날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몇 개월 전부터 회식을 핑계로 밤늦게 들어오는 날들이 많아졌다. 원래부터 워커홀릭이긴 했지만 종종 주말에도 일이 있다며 몇 시간씩 자리를 비우지를 않나, 핸드폰을 볼 때마다 과민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부부란 원래 서로에게 큰 관심이 없는 법이다. 한 세월을 함께 지내면서 남편은 나에게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최근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해짐을 느꼈다. 언젠가부터 내가 무엇을 하든, 어디를 나가든 묻지조차 않았던 것이다. 여자의 감이라는 것이 있다. 나는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우선 남편의 차에 있는 블랙박스부터 확인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블랙박스의 일정 부분이 삭제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정말 수상했다. 그래서 나는 불법인 줄 알면서도 남편 모르게 차량에 녹음기를 설치했다. 증거로 이용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증거로 제출만 안 하면 되니까. 우선은 내 느낌이 맞는지 그걸 먼저 확인해야 했다.


녹음기를 통해 들은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남편은 내연녀와 거의 매일같이 전화 통화를 하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따로 만나 밀회를 즐기고 있었다. 남편이 하는 말들의 대부분은 내가 들어본 적이 없었던 종류의 것이다. 이렇게 달달하고 자상할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남편은 그 여자에게 헌신적이었다.


나는 정말로 괴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변호사 상담도 받아봤다. 변호사는 사람 일은 알 수 없으니 우선은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변호사의 조언을 토대로 조금 더 증거를 만든 뒤에 남편에게 이 사실을 밝히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녹음기를 통해 알아낸 정보로 그 여자의 신상을 알게 되었고 또 둘이 데이트를 하는 장소도 알게 되었다.


나는 남편의 바람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입수하고 난 후, 어느 날 밤 저녁을 먹고 있는 남편에게 '당신 바람피워?'라고 물었다.


사실 나는 이 순간을 계속 생각했다. 내가 남편에게 '바람피워?'라고 물었을 때, 남편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어떻게 대답할지를 말이다. 우리에게는 두 명의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은 아빠를 좋아하고, 남편도 아이들을 사랑했다. 적어도 엄마인 내 관점에서 보기에는 남편은 아주 가정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나보다 아이들을 사랑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 말을 들은 남편의 표정이 이상했다.


내 말을 들은 남편은 갑자기 숟가락을 놓더니 나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표정에서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남편은 크게 부정하지 않았다. 올 것이 왔다는 듯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 그 여자 좋아해? ' 나는 재차 물었다. 이 질문은 원래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 귀로 들리는 나의 목소리는 날이 잔뜩 서 있었다. 이번에도 남편은 아무 말도 없었고, 결국 우리의 대화는 여기에서 끝이 났다.


분명 나는 이혼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당장이라도 그 여자에게 찾아가 뭐라도 하고 싶었지만 이혼까지는 갈 생각이 없었기에 나는 참았다. 녹음기에 있었던 녹음을 듣고 나는 당장 남편한테 화를 내고 싶었지만 그때도 나는 참았다. 나는 계속해서 참고 기다렸던 것이다.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나는 이혼까지 할 생각이 없었다.


주위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 원래 남자들은 한 번쯤은 바람을 피우잖아. **씨도 나이가 있는데 언제까지 그러겠어. ' , ' 조금만 있으면 아마 빌면서 집으로 돌아올 거야. 그냥 못 이기는 척 한 번만 받아줘. ' , ' 내가 아는 누구도 그렇게 바람났다가 잘못했다고 싹싹 빌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지금은 잘 살고 있더라. '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들도 있었다. 아무리 재산분할을 받더라도 양육비를 받으면서 어떻게 두 아이들을 혼자서 잘 키울 수 있단 말인가? 아직 어린아이들이 받을 상처는 또 어떠한가? 나는 이혼녀로 잘 살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도 남편은 크게 잘못했다는 인식이 없는 것인가?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정말 잘못했다는 생각을 할까?




처음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몇 번이나 완곡하게 '이혼을 할 생각이 없다.'라는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다면서 우선 이혼 소장을 남편에게 보내기로 했고, 상간녀 또한 용서할 수 없다며 상간녀 소송을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R0000175.JPG 정현주변호사 mbn스토리추적m 인터뷰 중


그런데 막상 이혼 소장을 받은 남편의 반응이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남편은 순순하게 이혼에 응하는 태도를 보였다. 자연스럽게 별거도 하게 되었다. 이미 이혼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녀는 사실 이혼에 응할 만큼의 마음을 먹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몇 번이나 남편이 자신에게 잘못했다고 빌고 용서를 구하면 못 이기는 척 받아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용서를 구하지 않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은 오히려 왜 상황을 이렇게까지 만들었냐면서 그녀의 탓을 하기도 했다.


" 변호사님, 남편이 저에게 다시 돌아올까요? "


소송을 진행하면서 바람을 핀 배우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이것은 남편이나 아내나 매한가지인 것 같다. ' 돌아오는가? '에 대한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 언젠가는 그럴 수도 있다. '라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돌아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만약 정말로 바람이 난 것이라면(바람 난 상대와 정말 좋아하는 사이였다면), 이미 떠난 마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마음은 잘 떠난다. 마음이 떠났을 때 같은 곳에 머무르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상대방이 오더라도 그것은 현실적인 이유에서 올 수는 있을 뿐, 마음까지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더라도 부부란 꼭 마음만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부부는 다른 여러 가지 이유에서 함께 산다. 이미 서로를 선택했기 때문에, 또한 아이를 위해서, 또한 명예나 사회적 지위를 위해서, 그렇게 어영부영 살다 보면 벌써 함께 한지 30년이 지났다고도 말한다. 그 긴 세월을 함께 하면서 '사랑'이 늘 함께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척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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