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은 당연히 지나간다.
나는 변호사로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다양한 삶의 고충들을 듣곤 한다. 그리고 나 역시 어느덧 40대가 되면서 내 주위의 친한 지인들은 대부분 결혼을 하고 아이도 있다. 자연스럽게 변호사로서뿐 아니라 주위의 가장 가까운 친구 또는 지인으로서 고민 상담을 듣기도 한다.
며칠 전 있었던 사건도 그렇다. 한 부부가 나에게 이혼조정으로 상담을 받기 위해 찾아왔다. 그들은 이미 결혼을 한지 6년정도 되었는데 추후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재산분할 때문에 이혼 조정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아이도 있었지만 부부는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3년 전부터 느껴서 이혼을 결심했다.'라고 다소 쿨하게(?) 말을 했다. 그 과정을 나로서는 잘 알 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들은 모든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물론 많지 않다. 많은 부부들이 결혼을 한 이후 6년 정도가 지나면 서로 간의 열정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 같다. 한때는 맹렬하게 기댔던 서로에 대한 의지하는 마음도, 그리고 상대가 변하리라는 기대도 시간이 지나면서는 자연스럽게 소멸한다. 물론 연애를 하면서 사랑을 하고 결혼까지 이끌어 갈 수 있었던 열정도 화롯불의 재처럼 어느덧 사라져 버린다.
나는 생각한다. 그럼 그 이후 남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심지어 단지 열정이 사라지는 것뿐만 아니라 뿌옇던 안개가 걷히듯 상대방에 대한 미움만 남게 되면? 열정이란 동력이 사라지면 더 이상 노력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스스로는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에 대하여 바라는 마음까지는 버릴 수 없다. 그렇다 보니 많은 부분에서 실망감이 들고, 산다는 것에 대한 허무감이 그 자리를 뒤덮을지도 모른다.
나는 '가족의 중요성'을 잘 알지 못한다. 물론 삶에서 가족은 무척 중요하다(어떤 이들에게는 가족이 인생의 전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의 경우는 결핍에서부터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금껏 가족의 중요성보다는 유한한 삶 속에서의 삶의 가치에 중점을 두는 편이었다. '젊은이들은 언제 죽을지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한다.'라고 했던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의 삶은 대단히 짧다. 그렇기에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일에 매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은 '가치 있는 일'을 잘 알 수 없고, 또 그것에 매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가 참 쉽지가 않다.
그래서 나는 많은 의뢰인들이 찾아와 '이혼 이후의 삶'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하거나 아이들 때문에 이혼을 망설일 때마다 '왜 변호사를 찾아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을 던진다.
만약 내가 변호사를 찾아올 정도라면 내가 끌어안고 있는 문제는 생각보다 분명하고 실체가 있는 것이고 적어도 제대로 된 상담이 필요한 일이다. 어쩌면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러 가지 상황은 있지만 결국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많은 어려움과 두려움을 건너야 했지만 결혼 생활이라는 겉으로 보기에 완벽하게 안전한 울타리를 나 스스로 거스를 만큼의 각오가 필요한 것이다.
" 이혼을 결심할 만큼의 큰일이 있을까? "
나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정말로 여러 가지의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데 결론은 없었다. 이혼을 결심할 만큼의 큰일이란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는 얼마나 상대방이 잘못했든 아니면 내가 잘못했든 적어도 결혼을 한 부부 사이에서 이혼을 결심하게 되는 것은 순전히 '나 스스로의 문제'에 가까웠다. 다시 말하면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결심도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결심'에 가까웠던 것이다.
결혼 이후 열정이 사라진다면,
열정이란 감정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감정은 지나간다. 그것이 아무리 큰 감정일지라도 감정이 흐른다는 것은 시간이 흐르는 것만큼이나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듣는 관찰자로서 또 많은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변호사로서 또한 누군가의 가장 가까운 친구 또는 동반자로서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을 만큼 커다란 감정들이 나이와 상관없이 공존하는 것을 지켜봐온다.
어쩌면 우리는 많은 대화의 불일치, 상대방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 그 외로움과 결핍 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발견해 주기를 고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나를 이해하는 것은 나의 배우자가 아니다. 그리고 가끔 만나는 친구도 아니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처럼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