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빛소금 Sep 16. 2022

01. 서른둘의 가을, 암이 찾아왔다.



 서른두 살의 가을, 딱 이맘때쯤이었다. 

한 두어 달 전에 처음 왼쪽 가슴 윗부분에 멍울이 만져졌다. 그즈음 왼쪽 가슴에 알 수 없는 통증이 있었는데 이것 때문이었나 싶었다. 네이버 지식인에서 검색했더니 아프면 암이 아니란다. 그럼 그렇지. 나 아직 서른둘인데 이게 암 일리가 없다. 그렇게 마음 놓으니 순식간에 두 달이 흘렀다. 그런데 어느 날 다시 만져보니 이상하게 지난번보다 확연하게 커진 느낌이다. 그리고 딱딱했다. '멍울은 호르몬 영향이라 자연스레 사라진다던데..' 하지만 내 가슴의 멍울은 어느새 500원짜리 사이즈를 넘었고,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리고 며칠 후 9월의 마지막 월요일, 출근을 위한 7시 기상 알람이 울렸다. 그날 나는 일어나자마자 생각했다. '아, 오늘은 회사에 전화해서 오전 반차를 써야겠다'   

몇 달이나 미뤄왔는데 그날따라 눈을 뜨자마자 나는 병원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생존 본능의 한 종류였을까. 강남대로에 있는 산부인과들을 검색해 검사가 가능한 병원에 찾아갔는데 예약제라 당일 검사가 안 된다고 했다. 여러 군데의 병원에서 퇴짜를 맞자 마음이 더 다급해졌다. 오늘은 꼭 해결해야 하는데..


 길거리에 서서 병원 검색을 하고 병원에 전화를 먼저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차례 시도 끝에 회사 근처의 유방외과에서 오후에 검사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렇게 그 병원에서 오후에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병원 원장님은 멍울 사이즈가 커서 맘모톰 시술로 제거하는 편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시술 전 혹시 모르니 조직검사를 해서 양성이 맞는지 확인하고 시술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조직검사 결과도 이틀밖에 안 걸리니 이틀 후 알려주겠다고 했다. 원장님이 별 일 아닌 듯 가볍게 이야기를 하시길래, 혹시 악성일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물었더니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음.. 사이즈가 4센티 가까이 되어서.. 한 5~20% 정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네? 그 정도는 너무 높은 거 아닌가요?" 

초반에 맘모톰 시술 이야기하며 세상 가볍게 이야기하던 선생님 입에서 20%라는 말이 나오니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표정이 너무 순식간에 어두워졌는지 선생님이 한 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환자분은 아직 젊으시니까 양성일 확률이 훨씬 높아요. 너무 걱정 마세요." 

좀 전에 20%라 그래 놓고 양성일 확률이 높다는 말은 너무 앞뒤가 안 맞는 거 아닌가 싶었다. 아 모르겠다. 미리 걱정한다고 결과가 바뀌는 것도 아닌데, 이틀 후까지 그냥 아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이틀 후 수요일 점심.

그날은 사무실에서 짜장면을 시켜서 다 같이 먹고 있었다. 한참 맛있게 먹고 있는데 책상 위에 핸드폰이 울렸다. 번호를 보니 병원 같았다. 

'아, 오늘이 결과 나오는 날이구나. 전화로 알려주니 참 편하네.'

전화를 받았는데 남자 목소리, 원장 선생님이다. 원장님이 직접 전화했다는 건 별로 좋지 않은 신호다. 그리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내 조직검사 결과가 악성이라 했다. 그래서 병원에 얼른 내원해 자세한 설명을 들으라고. 선생님은 이틀 전과 달리 상당히 무거운 말투로 이야기를 하셨다. 떨리는 목소리로 오후에 가겠다고 말하고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잠시 멍한 상태로 허공을 바라보다가 이내 눈물이 터졌다. 갑자기 터진 눈물 공격에 나도 당황스럽지만 꺼이꺼이 울음이 나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사실 그날 사무실에서 눈물이 터진 이후의 일들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후 정신을 좀 차리고 오후에 병원에 갔던 시간부터 기억하는 걸 보니 몇 시간 동안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병원에서 다시 만난 선생님은 더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셨다. 사실 지난번 초음파 검사 때 겨드랑이 임파선에서 양쪽 다 1센티가량의 혹이 보였는데 양성일 거라 생각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가슴에 있던 멍울이 악성으로 밝혀진 이상 임파선의 혹도 전이된 암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그 혹이 암일 경우엔 최소 3기, 그리고 또 다른 곳까지 전이가 되었다면 4기까지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는 있었지만 이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 자꾸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환자분, 지금 울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아요. 정신 차리셔야 해요." 

위로는 못해줄망정 나를 다그치는 선생님이 조금은 매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선생님 입장에서도 환자가 암이어서 대학병원으로 보내야 하는 심정이 좋을 리는 없겠지. 선생님은 나를 근처 대학병원으로 이관해줄 계획이며, 그곳에는 국내 최고의 권위자가 계시고 그분이 자기의 은사님이라고 하셨다. 따로 이야기를 잘 해놓을 테니 가서 추가 검사와 수술 잘 받고, 치료도 잘 받으라며 토닥여주셨다. 

 얼이 빠진 상태로 대기실로 나오자 간호사님이 대학병원 예약을 다음날로 해놓았다며 안내해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바로 다음날 예약이 가능했던 것도 너무 기적 같고, 정신없는 나를 위해 병원에서 다 알아서 처리해준 것이 너무 고맙다. 


 인생이 우리를 정신 못 차리게 만드는 순간에 우리 주변에는 고마운 이들이 항상 존재한다. 누군가는 직업이니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이들의 행동이 모여 우리를 불행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니 은인 같은 사람들 아닐까.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누군가의 하루 일상이 무탈하게 지나갈 수 있는 것은 얼굴조차 모르는 이들의 작은 노력들이 수없이 많이 모여서 가능하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고마움을 그 당시에 더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때는 내 앞에 놓인 불행이 너무 커서 다른 것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의 풍경이 기억난다. 오후 네 시쯤 되었으려나. 넘어가는 해가 버스 안으로 깊숙이 들어왔고, 눈이 부셨다. 너무도 평화스러워 보이는 그 장면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또 눈물이 났다. 억울해서도 아니고, 그저 오후 햇살이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세상은 나의 좌절과 상관없이 너무도 당연하게 평화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침엔 평범한 직장인으로 집에서 나왔는데, 돌아갈 때는 암환자가 되어 집으로 돌아간다. 이 간극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