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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소금 Sep 22. 2022

09. 눈물겹게 웃긴 순간


 커트 머리로 지낸 지 일주일이 넘어가니 두피가 거의 보이도록 머리가 빠져, 하루하루 지날수록 골룸을 닮아가고 있는 듯 보였다. 이제는 삭발을 해야 하는 때가 되었다. 골룸 같은 상태로 미용실에 가는 건 너무 부끄러워서 엄마께 집에서 깎아달라고 부탁했다. 

 삭발을 위해 거실에다 의자를 놓고, 목에다 천을 두르고 앉았다. 우리 모녀는 뭔가 의식을 치르듯 고요한 분위기로 일을 시작했다. 나는 이제 정말 대머리가 된다는 사실에 조금 침울해져 있었다. 얼마 남아있지 않던 머리카락들이 싹둑싹둑 잘려나갔고, 한참 머리를 자르던 엄마가 말씀하셨다.

"이거 신기하네."

"왜요?"

"여기만 머리가 남아있어."

"어디요?"

엄마가 짚어준 자리는 정수리에서 뒤통수 넘어가는 곳이었는데, 손을 대어보니 정말 거기에만 머리카락이 촘촘하게 남아있었다. 

어린 시절에 봤던 황비홍 영화 속 남자들 헤어스타일(뒤통수에만 머리카락이 있는)이 갑자기 떠올랐다.

"뭐야~ 황비홍도 아니고. 이게 뭐야. ㅎㅎㅎ" 

그랬더니 엄마도 가만히 생각하다 웃음이 터졌다. 엄마가 웃으니 나도 덩달아 웃음이 터져서 갑자기 둘 다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뭔가 눈물겨운 순간인데 황비홍 때문에 웃음이 터져, 우리 모녀는 너무 웃어서 배가 땅기도록 한동안 웃었다.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남아있는 머리카락들을 마저 잘라내고 마무리를 지었더니 의외로 후련했다. 아픈 이후에 엄마랑 같이 제대로 웃는 게 처음인 것 같다.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떠올랐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내 상황이 딱 그랬다. 항암 치료받느라 머리카락이 다 빠진 딸과 그 딸의 머리를 삭발해주는 엄마. 이 문장은 너무 비극적으로 느껴지는데 우리의 모습은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불행이 닥치면 모든 순간 다 불행할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불행 중에도 행복한 순간이 있고, 기쁨도 웃음도 사랑도 있다. 


 나는 우리가 불행 중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건,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본 장치가 아닌가 생각한다. 슬픔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도와주는 생존 시스템이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지금 너무 힘들고 슬프다면, 당신 안에 있는 그 생존 시스템을 얼른 작동시키기 바란다. 







 삭발이 끝나고 대머리인 나를 처음으로 마주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사실 이때 거울 앞에 서는 게 너무 무서웠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내 모습이 너무 강렬해서 평생 잊히지 않는 건 아닐까 생각하며 거울 앞으로 다가갔는데, 나의 첫인상은 '뉘신지..'였다. 어릴 적부터 이목구비가 크고 뚜렷하게 생겨서 이국적이라는 소리를 종종 들었는데, 머리카락까지 없애고 보니 여성스러움은 모두 사라지고 중성적인 소년이 된 느낌이었다. 내 인생이 몇 년짜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별별 경험을 다 하는구나 생각했다. 


 가발은 외출할 때만 쓰기 때문에 집에 있을 땐 비니를 쓰기 시작했다. 미리 사두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거울 속 나와 마주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을 것 같다. 

얼마 후 가발을 쓰고 친한 선배를 만나 머리를 삭발했다고 이야기했더니, 사진을 내놓으라며 손을 내밀었다. 설마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놓을 리가 없지 않냐고 했더니 너무 아쉬워했다. 그 모습은 엄마와 나, 딱 우리 둘만 아는 걸로 평생 간직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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