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의 항암 주사는 꽤 센 약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환자들이 말하길 혈액암 다음으로 강한 약이라 머리카락도 다 빠지고, 후유증도 다양하다고 했다. 약의 종류가 몇 가지 있었는데, 나는 2기에 고위험군 환자라 '공포의 빨간약'으로 불리는 항암제를 피하지 못했다.
보통 항암제를 맞은 후 2주 후부터 탈모가 시작된다고 한다. 그렇게 서서히 빠지기 시작해 대략 한두 달 이후에는 대부분의 머리카락이 빠진다고 안내서에 적혀있었다. 모든 항암제가 탈모를 일으키는 건 아니다. 수많은 종류의 암들은 제각각 다른 성격, 다른 치료약, 다른 부작용, 다른 형태의 고통이 존재한다.
치료 전 임상병리사 선생님의 교육을 받는 시간이 있는데, 항암 기간에 지켜야 하는 것들, 조심해야 하는 것들을 상세히 알려주셨다. 그리고 케모포트를 심을 것인지 물어보셨다. 케모포트란 항암 주사를 위한 체내 삽입형 의료기구로 쇄골 아래쪽 부근 피부를 절개해 심장과 가까운 경정맥에 연결하는 도구다. 이걸 인체에 삽입해 놓으면 그곳에 바늘을 찔러 항암제를 맞게 된다. 보통 우리가 주사를 맞는 말초 혈관(손, 발)으로 항암제를 맞는 경우에는 혹시라도 항암제가 혈관 밖으로 누출이 되면 피부가 괴사 되는 등의 심한 부작용을 겪을 수 있고, 말초 혈관도 손상되기 쉽다고 한다.
나는 항암 횟수가 아주 적은 것도 많은 것도 아니어서 병원에서 선택권을 주신 것 같다. 하지만 케모포트를 심는 것도 빼내는 것도 매번 수술을 해야 하고, 쇄골 아래에 흉터가 남는 것도 좀 꺼려졌다. 혈관 손상과 괴사가 흉터보다 더 무섭긴 하지만, 설명해주시던 선생님도 4회 차면 그냥 받아도 될 것 같다고 하셔서 그냥 손등 정맥에 주사를 맞기로 결정했다.
나는 왼팔의 림프절을 수술했기 때문에 왼쪽 팔에는 피 뽑는 주사기, 링거 등 어떤 주사도 놓지 않는다. 감염의 위험이 있어 그렇다고 한다. 그로 인해 오른손 하나로 모든 주사를 다 해결해야 해서 사실 좀 마음에 부담이 있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 손이 중요하니까 제발 오른손에는 아무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첫 항암 주사를 맞았다. 병원에서 약 6시간 정도 있으면서 여러 종류의 약을 순서대로 맞았다. 그리고 약을 다 맞고 나니 간호사님이 두툼한 약봉지를 가져오셨다. 구토 억제제였는데 한 번에 먹을 양이 무려 27알. 물배가 차도록 여러 차례 나눠서 겨우 먹었다. 구토 억제제를 이 정도까지 먹어야 한다니.. 도대체 어떤 증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 정말 무서웠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내 위장을 도려내고 싶을 만큼의 통증과 울렁거림, 구역질을 겪었다. 계속 토할 것 같아 밤새 화장실을 수차례 들락거렸는데 구토억제제 덕분인지 토하지는 않았다. 나중에는 침대에서 일어설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아 그 자리에서 헛구역질만 계속하는 그런 밤이 지나갔다.
다음 날 나는 계획대로 D병원에 입원을 했다. 전날 밤에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엄마에게 괴로운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하루 사이에 내 얼굴은 황달 환자처럼 노랗게 변해있었다. 낮에 억제제를 다시 먹고 나니 밤보다는 조금 나아졌는데 다가오는 밤이 정말 무서웠다. D 병원은 병실 내에 화장실이 없고 층마다 화장실이 있는 구조여서 화장실이 멀었다. 밤에 구역질이 난다고 해도 화장실까지 달려가긴 무리여서 그냥 버텨보기로 했다. 구역질보다 무서운 건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수준의 울렁거림과 통증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멀미에 약했다. 뱃멀미, 차멀미, 기차 멀미 등 모든 종류의 교통수단 멀미를 하는 아이였다. 초등학생 때 한 번은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는 기차 안에서 봉지에다 5번 토한 적이 있는데 그 후로 부모님은 나를 기차에 태우지 않으셨다. 이런 나였어도 항암주사의 울렁거림은 말 그대로 어나더 레벨.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의 것이 아니었다. 이쯤 되니 이게 나를 살리는 약인지, 죽이는 약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주사 맞은 후 일주일 동안이 제일 힘든 시기라고 하는데 하루하루가 너무 길었다.
인간이 느끼는 공포에는 종류가 있다. 대상의 실체를 명확하게 모르는 막연한 공포심과 대상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느끼는 공포. 이전에 항암 치료에 대한 나의 두려움은 그냥 막연한 공포심이었는데, 첫 항암 이후 나에게는 실체가 명확하고 두려운 공포심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한 번 자리 잡은 공포의 감정은 내 안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야금야금 갉아먹기 시작했다. 치료가 너무 힘들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약한 마음을 갖지 않게 해달라고 신께 기도했다. 살기 위해 받는 치료인데 죽고 싶게 만든다니 너무 모순적이지 않나. 어디서 뭐가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 같은 공포에 잡아 먹히지 않으려면 일상 속 작은 기쁨과 행복의 순간에 더 집중해야 한다.
영원히 가지 않을 것 같던 2주가 지나갔고, 퇴원해 집으로 돌아왔다. 2차 항암에 들어가기 전까지 일주일 정도 집에서 보내기 위해서였다. 이틀마다 대학병원에 피검사를 받으러 가야 하지만, 집에 돌아오니 마음이 너무 편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취해 오랜만에 제대로 잠들었다. 하지만 행복한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베개에는 머리카락이 잔뜩 빠져있었다. 머리를 만지니 손 닿는 곳마다 스르륵 빠지는 머리카락들. 빗질을 했더니 한 뭉텅이씩 빠져나왔다. 항암 안내서에 적혀있던 내용처럼 항암 주사를 맞은 후 딱 14일이 지나니 탈모가 시작된 것이다. 혹시나 내 머리카락은 남들과 달라 버텨주진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은 너무도 허무하게 사라졌다.
집에서 걸어 다니는 길마다 머리카락 흔적이 남아 안 되겠다 싶어 가위를 들었다.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을 붙들고 쓱싹쓱싹 자르기를 반복하니 난생처음 보는 커트머리의 내가 거울 속에 있다.
나는 항암 치료를 하며 낯선 나를 정말 많이 만났다. 그런 새로운 나를 마주할 때마다 내가 알던 나 자신은 나의 사소한 일부분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몸과 마음이 고통에 허덕이고 있을 때,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던 진짜 자아를 알게 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의 나는 거대한 몸뚱이는 수면 아래에 담가 둔 채 수면 위에는 얼굴만 빼꼼 내밀고 살아온 것 같다. 내 안에 뭐가 있는지 알 기회조차 만나지 못하면 평생 모르고 살아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니 우리가 고통스러운 순간을 마주할 때 고통에 집중하지 말고, 이런 고민에 더 집중해야 하는 건 아닐까. 딱 그 순간에만 찾을 수 있는 나의 모습을 찾다 보면 그 시간의 의미도 함께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그렇게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