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기간 동안 대학병원에서 항암 주사를 맞고 집에서 하룻밤을 잔 뒤, 다음 날 D병원에 입원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병원에서 매번 305호 끝자리를 지정석처럼 내주셔서, 나중에는 입원하는 게 숙소에 들어가는 느낌처럼 점점 친근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회에서는 만날 접점이 없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D병원은 5층짜리 중형병원이다. 그곳에는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장기 입원하는 병실도 있고, 나머지 병실에는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후 몸을 회복하기 위해 입원하는 환자나 교통사고 환자들이 많았다. 내가 지냈던 305호실은 5인실이었는데, 그 방은 2-4주 정도 입원하는 다양한 환자들이 모이는 방이었다. 그래서 매번 입원할 때마다 거의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지냈는데 이렇게 여러 사람들을 긴 시간 옆에서 관찰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가 되었다.
나는 2주 입원과 1주일 퇴원을 반복하고 있어서 몇 분은 두 번 이상 만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중에 제일 친해진 사람은 혈액암 투병 중인 50대 후반 아주머니였다. 이 분은 두 달 동안 나와 같은 시기에 입원을 하셔서 한 달을 옆자리에서 함께 보냈다. 그리고 같은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어 가끔 피검사 시간이 겹치면 구급차를 타고 함께 갔다. 혼자 갈 때는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두 명이 모이니 병원에서 구급차를 내주었다. 매번 혼자 다니던 길을 함께 할 동지가 생겨 덜 외로웠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 소소한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는데, 조용하고 차분한 분이라 성격이 잘 맞았다. 어느 날은 구급차 운전기사님께서 병원에서 오는 길에 벚꽃이 예쁘게 피어있는 길로 일부러 돌아 드라이브시켜 주시기도 했는데, 힘든 시간 중 잠깐의 햇살 같은 시간을 함께 공유할 이가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물론 조용한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다. 어느 날 입원하신 70대 후반의 건장한 할머니가 계셨는데 그분은 매일 최소 한 시간 이상은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하셨다. 건장한 체격만큼 목소리도 커서 내용을 다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 매번 통화 내용은 같았다.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대출을 받아 오래된 주택을 헐고 다세대 주택을 짓는다는 이야기. 할머니는 노년에 본인 건물이 생겨 신이 나셨는지 자랑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시는 것 같았다. 특히나 다른 자리에 병문안 손님이 올 때마다 전화를 걸어 건물 이야기를 하고, 또 하셨다. 의도가 너무 뻔히 보이는 행동이었지만, 가끔 그 수법이 통해 옆 침대 손님들이 건물에 대해 물어보면 신이 나서 자랑을 시작하셨다. 시끄럽고 괄괄한 성격의 할머니였지만 병실이 적막한 것보단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우리 병실은 아니었지만 또 다른 할머니 한 분은 형편이 많이 어려운 느낌의 할머니였는데 4층에 장기 입원하고 계신 할아버지의 보호자였다. 할머니가 3층과 4층 환자들이 남긴 반찬을 간호사 몰래 반찬통에 담아두었다가 본인 밥반찬으로 드시는 일이 발각되어서, 그 할머니의 존재를 다들 알게 되었다. 형편이 얼마나 어려우면 그러겠냐고 다들 그런 의견이었는데, 반전이 있었다.
병원 근처 전철역 바로 앞에 있는 10층 건물이 그 할머니 부부의 소유라는 것. 병원에 입원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근처에 살고 계시는 분들 이어서 나를 포함해서 다들 그 건물을 알고 있었다. 다들 강남에 빌딩을 가지고 계신 분이 왜 저러고 다니는 거며, 왜 그런 행동을 하냐고 의아해했다. 할머니 부부를 오랫동안 보신 원무과장님은 그분들이 돈은 있는데 쓰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라 저렇게 사신다고 하셨다. 심지어 할아버지 입원 전에는 동네에서 폐지 줍는 생활을 하셨다고 한다. 그분들은 평생 절약하고 고생하며 운 좋게 많은 돈을 모았지만, 삶을 누리는 문화와 생활 방식은 전혀 배우지 못하신 것 같아 좀 안타까웠다.
참 신기하게도 할머니 부부 이외에도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정말 돈이 많은 분들은 모두 평상시에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엄한 사람들이 있는 척하고 있을 때 잠잠히 있다가 의외의 순간에 부자인 게 들통나곤 했다. 오히려 경제력을 어필하고 싶어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짜 돈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어느 날 교통사고로 입원하신 한 아주머니는 병원복과 어울리지 않는 순금 액세서리를 잔뜩 하고 계셨다. 번쩍이는 금색의 목걸이, 반지, 팔찌는 병원복과 너무 안 어울렸지만 단 한순간도 빼지 않으셨다. 아주머니의 거친 손과 삶의 고단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맨얼굴, 거기다 다들 같은 병원복을 입고 있으니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 보일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러시는 것 같았다. 일종의 방어기제 아니었을까. 다들 종류는 다르지만 그런 방어기제 한 두 가지쯤은 있으니 유별난 것도 아니다. 단지 그 모습을 입원기간 내내 물끄러미 보다가 든 생각은 나도 모르게 발동한 방어기제들이 오히려 내 약점을 더 도드라지게 만든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어떤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나 깊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누가 보아도 암환자처럼 비니를 쓰고, 항암 치료에 찌든 초췌한 얼굴을 하고 있던 나는 맨 구석 침대 자리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들고 나는 모습들을 보며 그렇게 지냈다. 예전의 나였다면 다른 사람들이 이런 초췌한 나를 어떻게 볼까 싶어 신경이 쓰였을 텐데, 암에 걸리고 나니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너무 사소한 문제라 괘념치 않았다.
병원이라는 곳이 모두가 같은 환자복을 입고 지내며, 병원 밖에서 뭐하던 사람들인지는 그 안에서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그런 장소 아닌가. 직업도 나이도 다 상관없이 '건강'이라는 목표를 향해 함께 가는 동지 같은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어떤 때의 멤버는 시장통처럼 왁자지껄하게 함께 했고, 또 어떤 때는 도서관처럼 적막했지만 그 모든 순간에 여러 사람들의 친절과 따스함 덕분에 고달픈 항암 치료의 기간을 잘 버틸 수 있었다.
모든 항암치료가 끝난 후 한 반 년이상 흐른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핸드폰에 전화가 울려 받았는데 305호에서 만났던 아주머니 중 한 분이셨다. 허리 통증으로 입원하셨고, 나이는 어머니 연배의 아주머니셨는데 내 옆 침대에서 2주간 함께 보낸 적이 있는 분이었다. 이 분이 퇴원하실 때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해서 가르쳐 드렸는데 그날에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몇 달이나 지나서 문득 내가 생각나셨는데 그 사이에 별 일 없이 잘 지내는지 확인하려고 전화하셨다고 한다. 혹시나 전화했는데 잘못되었으면 어쩌나 조마조마하셨다고 한다. 잘 지낸다고 했더니 목소리가 건강해 보여 마음이 편해지셨다며, "아유~ 그럼 됐어~. 앞으로도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살어~"라고 하시곤 전화를 끊으셨다.
이 분과 함께 병원 생활하던 때의 나는 컨디션이 별로 좋지 못했다. 심한 울렁거림으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 시기였는데, 옆에서 한 숟갈이라도 더 먹으라며 늘 챙겨주셨다. 가족들도 보지 못한 모습을 바로 옆에서 하루 종일 보셨으니, 젊은 나이에 잘못되는 건 아닌가 속으로 많이 걱정하셨던 것 같다. 짧은 대화였지만 그 행간에 숨어있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전화를 끊고 눈물이 핑 돌았다.
아주머니 핸드폰에는 내가 '305호 아가씨'라고 저장되어 있는데, 우리는 서로의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서로의 안녕을 기도하는 그런 사이다. 고맙고 따뜻한 관계. 이런 작고 따뜻한 기운이 모여 내가 잘 지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 것 같다.
문득 병원에 같이 피검사를 다니던 혈액암 아주머니는 지금도 잘 지내고 계신지 안부가 궁금해진다. 성함도 연락처도 모르지만 어딘가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계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