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스리랑카] 뚝뚝 타고 스리랑카 일주, 3,375km 누와라엘리야
“렌트 업체에 문의했는데 답변이 어떻게 올지 모르겠어. 그래도 일단 정비소로 가자.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더라도 뚝뚝은 고쳐야 하잖아.”
시내로 돌아오는 동안 머릿속이 분주했다. 뚝뚝을 고칠 수만 있다면 하루 이틀 시간이 지체되는 것은 상관없다. 하지만 배터리보다 더 큰 문제라면 곤란하다. 만약 새 뚝뚝을 빌려야 한다면 다시 네곰보까지 가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곳에서 대차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 별생각이 다 들었다. 구글 지도에서 정비소(repair shop)라고 검색했는데 나오는 곳이 없었다. 난감했다. 분명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정비소를 본 것 같은데. 이럴 때마다 나는 스마트폰 지도는 아직 못 담고 있는 게 훨씬 많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스마트폰으로 검색되지 않는 곳은 이 세상에 없는 것처럼 여기는 세태가 안타까웠다. 스마트폰 속 지도 밖에는 넓고 다양한 세상이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시내에 도착해서 골목을 기웃거렸다. 작은 정비소가 보였다. 부품이 쌓여 있는 가게 내부는 사람 한두 명이 서면 가득 찰 정도로 좁았다. 가게 앞에서 정비사 2명이 먼저 온 뚝뚝을 살피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 뚝뚝을 세우고 가게로 달려갔다.
“안녕하세요. 저기 제 뚝뚝이 있는데요. 시동이 계속 꺼져요. 출발하려는데 시동이 안 걸릴 때도 많고요. 매일 아침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아무래도 배터리 문제 같아요.”
“음,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저 분이 정비사인데 곧 봐줄거예요.”
손에 검은 기름때가 잔뜩 묻고 눈가에 주름 많은 마른 남자가 정비사였다. 그는 헝겊을 뚝뚝에 툴툴 털며 정비를 마친 후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간절하게 한 번 더 증상을 말했다. 그는 내 뚝뚝에 앉고 핸들을 잡았다. 부르릉, 바랑 바랑. 믿을 수 없이 경쾌한, 여태 한 번도 듣지 못한 엔진소리였다. 그는 아무 문제 없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살짝 흔들었다. 우리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그는 우리를 안심시키고 다시 다른 뚝뚝을 고치러 갔다.
“아, 다행이다. 그런데 진짜 미치겠네. 아무 이상이 없다는 거잖아? 차라리 고장난 곳을 고치면 그게 더 속이 편할 것 같아. 내가 시동 걸어볼게. 그런데 시동이 걸려도 문제야. 이곳을 벗어난 다음에 또 문제가 생기면 어쩌냐고.”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뚝뚝은 나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나는 오히려 잘 됐다 싶은 마음으로 정비사를 찾아가 다시 한번 사정했다.
“또 시동이 걸리지 않아요. 내가 시동 거는 걸 봐줄래요? 뭐가 문제인지 찾아주세요.”
나는 정비사가 보는 앞에서 악셀을 당겼다. 역시,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손을 들더니 손가락을 모두 접고 엄지와 검지를 펼쳤다.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하는지 시범을 보여주세요.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매일 아침,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두려웠다고요. 제발, 도와주세요.”
그는 다시 운전석에 앉았다. 두 손가락을 핸들에 올렸다.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1cm 정도 악셀을 당겼다. 바랑, 바랑, 바라랑. 엔진이 기다렸다는 듯이 목청을 높였다. 마법 같은 일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넋이 나갔다. 그는 연신 “No, problem(문제 없어)”을 되뇌며 나를 다독였다. 이렇게 쉽게 시동이 걸리다니, 허탈했다. 야생마도 길들이기 나름이라더니, 그의 손에 단숨에 반응하는 뚝뚝이 얄밉기도 했다. 한편으론 이렇게 튼튼한 엔진을 울부짖는 뚝뚝이 그동안 겪었을 고통에 미안하기도 했다.
운전석에 앉았다. 심호흡을 하고 두 손가락을 핸들에 올렸다.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온몸에 힘을 빼고 두 손가락 끝이 감각에 집중했다. 슬쩍 악셀을 당겼다. 바라랑, 바라랑! 뚝뚝이 내지르는 사자후 같은 시동이 걸렸다. 시동은 꺼지지 않고 진동을 구석구석으로 전달했다. 그때 깨달았다. 뚝뚝은 매우 섬세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뚝뚝 시동을 거는 데 필요한 힘은 계란을 들거나 종이컵을 쥐는 정도면 충분했다. 다섯 손가락을 모두 쓸 필요도 없었다. 두 손가락이면 충분하다. 무의식적으로 다른 손가락이 거드는 힘은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시동이 꺼질까 불안해서, 한 번에 시동을 걸지 못할까 두려워서, 있는 힘껏 핸들을 움켜 쥐고 악셀을 당기던 게 독이었다. 시동을 껐다. 다시 두 손가락을 슬쩍 올리고 악셀을 당겼다. 엔진은 여지 없이 큰소리로 화답했다. 걱정이 말끔하게 사라지자 나는 신나게 떠들었다.
“앞으로 이걸 ‘두 손가락의 마법’이라고 부를 거야. 그런데 이상한 게 있어. 이렇게 쉬운 걸 왜 아무도 하지 못했을까. 뚝뚝 운전사도, 호텔 직원도 모르는 비결이 있었어. 정비사 아저씨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만난 은인이야. ”
뚝뚝 때문에 속앓이하던 나는 어느 여행보다 벅찼다. 하루에 네다섯 시간 운전하는 내내 신경 써야 했던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것 같았다. 오늘 나는 두 가지 기술, ‘밀면서 시동 걸기’와 ‘두 손가락의 마법’을 완전히 터득했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뚝뚝 사용설명서’ 영상을 만들었다. 뚝뚝 렌트와 운전에 필요한 33가지 기술과 주의점을 정리했다. 다음 여행자의 뚝뚝 로드트립은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