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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드 Oct 21. 2024

Ep 18. 신의 발자국, 아담스피크

[와일드 스리랑카] 뚝뚝 타고 스리랑카 일주, 3,375km 아담스피크


‘신의 발자국’이라니.

호튼 평원에서 다녀온 ‘세상의 끝’에 이어 도저히 모른 척할 수 없는 기가 막힌 작명이다.


도대체 어떤 곳일까? 궁금하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찾을 수 없다. 사진 촬영을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도도함이 비밀을 들춰보고야 말겠다는 호기심과 탐욕을 자극한다. 신의 발자국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직접 가서 보지 않으면 평생 알 수 없는 유니콘일 뿐이다. 그러니 가야 한다. 가서 직접 보는 수밖에 없다.

스리랑카에서는 신의 발자국을 성스러운(Sri) 발자국(Pada)이라는 의미로 스리파다(Sri Pada)라고 한다. 스리파다는 높은 산꼭대기에 있는 큰 바위에 움푹 남겨진 발자국이다. 사람들은 이 발자국을 신의 흔적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불교, 힌두교, 이슬람, 기독교 모두 성지로 여긴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스리랑카를 방문한 부처가 남긴 발자국으로, 힌두교에서는 세상을 축복한 시바 신의 발자국이라고 주장한다. 이슬람과 기독교에서는 태초의 인간인 아담(Adam)의 발자국이라고 믿는다.

기독교와 이슬람에 익숙했던 유럽의 탐험가와 상인은 스리파다를 아담스피크(Adam`s peak)라고 불렀다. 지금도 스리파다와 아담스피크는 혼용되는데 그 누구도 이곳을 두고 싸우거나 편 가르지 않는다. 자신이 믿음대로 성지로 여긴다. 불교, 힌두교, 이슬람, 기독교. 4대 종교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거의 모든 사람에게 성지인 곳이다. 나는 이런 상징적인 이야기가 신의 발자국보다 더 궁금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는 아담스피크(스리파다)가 해발 2,243m로 너무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이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이곳을 오르는 시작 지점이 약 1,200m이며, 아담스피크까지 약 1,000m 높이를 오르는 6km 정도 되는 길은 오로지 계단이다. 계단의 수는 약 5,500개로 알려졌다. 1,251개의 계단을 가지고 있는 63빌딩과 비교하면 264층 건물을 오르내리는 셈이다. 게다가 빌딩 계단과 다르게 매우 불규칙한 높이와 폭, 매서운 추위와 바람을 6시간 넘게 견뎌야 하는 대장정이다. 모습조차 알 수 없는 신의 발자국에 이르는 건 신앙 없이는 하기 힘든, 그야말로 성지순례이다.


어려운 점은 또 있다. 이곳을 오르는 시각이다. 보통 자정에서 일출 사이에 다녀온다. 한낮의 자외선을 피하거나 정상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서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경건한 마음으로 새벽에 성지 순례에 나서는 종교적, 문화적 관습으로 이해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     


“지금부터 6시간 뒤인 오후 11시 30분에 여행사 앞으로 갈게요. 15,000루피 어때요? 그리고 아담스피크에 다녀올 때까지 뚝뚝을 주차해도 되죠?”

“네. 물론이죠. 돈은 기사에게 직접 전해주세요. 11시 30분에 픽업하라고 말해둘게요.”     


당일 예약을 마치고 억지로 2시간 정도 낮잠을 잤다. 밤 11시에 일어나 짐을 챙겨 여행사 앞으로 가는 길은 어둡고 위험했다. 택시 운전사는 미리 도착해 우리를 기다렸다. 뚝뚝을 주차하고 택시에 올랐다. 가드레일과 가로등이 없는 산길, 수없이 많은 커브, 간간히 내리는 비를 보며 택시를 예약하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 운전사는 졸린지 차를 세우고 15분 정도 눈을 붙였다. 2시간 넘게 달려 아담스피크 성지순례의 시작점인 날라타니야(Nallathanniya)에 가까웠다. 그때 한 무리의 돼지가 택시의 헤드라이트에 쫓겨 소리를 질렀다. 야생 돼지였다. 돼지가 사라지길 기다렸다 출발했다. 목적지에 이르자 수많은 차와 사람이 보였다. 택시 운전사는 몇 가지 당부했다.     


“이 호텔을 기억하세요. 여기에서 기다리면서 한숨 잘게요. 아마 적어도 6시간 이상 걸릴 거예요. 무리하지 말고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이따 봐요.”     


멀리 아담스피크가 보였다. 얼마나 멀고 높은지 가늠할 수 없었다. 산등성이에 걸린 전구가 내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고 있었다.      



새벽 2시

순례를 시작했다. 쌀쌀했지만 나는 아직 쌩쌩했다. 택시에서 졸기 잘한 것 같다. 땅콩이 들어간 납작하고 넓은 엿을 사서 나눠 먹었다. 사람들을 따라 빨리 걸었다. 여러 종교의 기도소가 나타났다. 부처와 시바 신이 나란히 보였다.     

새벽 2시 30분

스님의 염불이 새벽 공기보다 더 맑게 들렸다. 노승은 사람들을 위해 염불을 외고 손목에 하얀 실을 묶어주었다. 나도 노승 앞에 공손하게 서서 눈을 감았다. 노승이 머리에 손을 대고 염불을 외며 축복과 안녕을 빌어주었다. 순례자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들어섰기를 바라며 얼마간의 돈을 기부했다.     


새벽 3시

뺨은 칼바람에 얼얼해지는데 몸에는 땀이 흘렀다. 숨이 찼다. 길가 매점에서 음료수를 사 마셨다.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불상을 모시고 노래하며 지나갔다. 도대체 종교란 무엇인가. 나보다 왜소하고 나이 많은 저들을 걷게 하는 믿음이란 무엇일까. 땀이 식기 전에 다시 길을 나섰다.     


새벽 3시 30분

끝없는 계단. 계단 오르는 벌을 받는 것 같다. 전구는 계단과 사람 밖에 밝히지 않았다. 아무 풍경도 없는 순례길이 지겹고 지쳤다. 뚱뚱한 할머니가 무거운 배낭을 메고 천천히 걸었다. 서두르지 않았다. 성실하게 걸었다. 할머니를 지나서 성큼 걷다 뒤돌아보면 어느새 할머니는 내 뒤에 있었다. 내가 숨을 헐떡이며 쉴 때 할머니가 앞서 갔다. 할머니는 나와 달리 자신의 속도를 알았다.     

새벽 4시

높아질수록 가팔라지는 계단. 한계와 싸우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래도 얼굴은 맑다. 발길을 돌리는 사람은 없었다. 보통 체격의 아버지가 자신만큼 큰 아들을 업고 걷는 게 보였다. 아이는 아직 앳된 얼굴이었다. 털모자와 털장갑으로 온몸을 싸맨 어머니가 꼬마를 안고 걸었다. 나는 이 모습이 서커스처럼 믿기지 않았다.     


새벽 4시 30분

마지막 깔딱고개가 남았다. 칼바람이 불었다. 바람 소리가 이렇게 무서운 것이었나. 살에 베일 듯 춥고 거칠었다. 옷깃을 여미고 마지막 고비를 향해 갔다. 많은 사람이 가족과 친구를 밀고 당기며 계단을 올랐다. 겨울에 태풍이 분다면 이런 걸까. 춥고 힘들었다.     


새벽 5시

계단에는 신발이 널려있었다. 맨발로 들어가야 했다. 발이 시렸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이곳에 온 횟수만큼 종을 쳤다. 난 한 번 쳤다. 그런데 일곱 번, 여덟 번, 열 번. 열일곱 번 종을 치는 사람도 있었다. 드디어 신의 발자국을 만났다.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입을 맞추고 기도했다. 어설프게 따라하려다 말았다. 속으로 짧고 간결하게 빌었다. 다치거나 아프지 않고 여행이 무사히 끝나게 해달라고, 그리고 여행을 과시하려는 욕심을 경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새벽 5시 30분

일출 욕심은 싹 사라졌다. 조금이라도 빨리 내려가고 싶었다. 내려오는 길에 100루피짜리 초를 사 계단 옆 기도소에서 어느 신인지도 모르고 봉양했다. 계단 폭이 좁고 가팔라서 집중력을 잃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새벽 8시

내려오는 중에 해가 떴다. 날씨가 흐려 풍경을 감상하진 못했다. 부슬비가 내리며 옷을 적셨다. 힘든 순례였다. 순례라곤 하지만 사실 내게는 관광에 가까웠다. 할 일을 한 가지 했다는 성취감도 조금 느꼈다.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끌고 택시를 찾아가며 R과 B에게 물었다.     


“다시 기회가 생기면 올라갈 거야?”

“아, 글쎄. 솔직히 올라간다고는 못 하겠다. 한 번이면 충분한 것 같아.”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새벽 순례. 너무 길고 힘든 길이었다.     


그런데 신의 발자국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더 흐려졌다. 황금빛으로 화려하게 장식했고, 실제 발자국보다는 더 컸던 것 같다. 그런데 발자국 모양이나 생김새가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크기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신의 발자국을 보러 갔지만, 그것을 만나는 그 순간만 벌써 수십 년이 지난 것처럼 까마득하다. 아마 그때 나는 집중력을 완전히 잃었던 것 같다. 순례 자체가 순례이니 신의 발자국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길 거부했던 건지, 내가 신심이 부족해 그런 건지, 끝없는 계단에 지치고 화가 났던 건지 모르겠다. 누가 사진으로 보여주면 기억이 날까, 그것도 잘 모르겠다.     

얼마 전 유튜브 영상을 만드는데, 낯 간지러운 내 목소리를 들었다.     


“신의 발자국을 보러 왔잖아. 처음에는 왜 하필 저 높은 곳에 발자국을 남겨서 이렇게 사람들을 힘들게 하냐는 우스갯소리를 했어.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하잖아. 그런데 신의 발자국을 보고 내려가는 지금, 무수히 많은 신의 발자국이 보여. 천천히 올라오던 할머니, 아들을 업고 가던 아버지, 아이를 들쳐 멘 어머니. 장애를 가진 사람들. 불상을 가마에 태우고 오르던 승려와 신자들. 어느 순간부터 이들의 걸음에서 신의 발자국을 느낀 것 같아.”     


그날의 흐린 내가,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 선명한 나보다 나은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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