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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씨앗 Mar 15. 2021

[아이의 사생활] 반장 선거(1)

엄마, 나도 반장이 되고 싶어요

학기 초 안내문이 도착했다.

"3월 둘째 주에는 학급 임원 선거가 있으니 임원선거에 출마할 아이는 미리 연설문을 준비해 오면 좋습니다."


목욕을 하던 딸아이에게 물었다.

"다음 주에 반장 선거 있는데, 나갈 거야?"

아이는 부끄러운 듯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왜?"

"부끄러워."


남 앞에 선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어릴 적 부끄러움이 많아 친구들 앞에서 자기소개도 못할 정도로 숙맥이었던 나였기에 아이가 반장 선거에 나가는 일이 심적으로 얼마나 부담이 될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어릴 때 부끄러움이 많았던 것과 달리 학년이 올라갈수록 나의 자신감도 높아졌고,  2학년부터는 5학년 때까지 1년에 한 번쯤은 반장이든 부반장을 했던 기억도 있었다.

 어릴 적 반장 부반장의 기억은 나의 자존감을 끌어올려주는 계기가 되었고 한 번 부반장이 된 뒤로 성적도 눈에 띄게 올라갔다. 아이도 나처럼 작은 역할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학교생활에 적극적이길 바란 거였다.


"그래도 한 번 나가보는 건 어때? 다른 아이들은 엄마들이 싫어해서 못 나가는 경우도 있대."

"왜, 엄마가 싫어하는데요?"

"음... 1학기 임원의 엄마가 엄마들의 대표를 맡는데... 대부분의 엄마들이 부담스러워하고 싫어하거든. 하지만 엄마는 네가 반장이 된다면 반대표는 해줄 수 있어. 어때? 도전이라도 해볼래?"

아이는 잠시 생각하는 듯했으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이가 반장이 되길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남들 앞에서 자신을 당당하게 소개할 줄 아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엄마의 욕심이었다.

"알아, 어려운 거... 엄마도 그랬으니까. 안 나가도 돼."

"엄마, 근데 반장은 뭐 하는 거예요?"

"반을 대표하는 거지. 친구들을 도와주고, 선생님이 바쁠 때 선생님도 도와주고."

"저 친구들도 도와주고, 선생님도 도와주고 싶어요."

"그럼 반장 해볼래?"

"....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아이가 멋쩍게 웃었다. 엄마인 나도 더 이상의 강요는 하지 않았다.


딱 거기까지로 끝난 일이었다.

반장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날,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내일 반장 선거하는 날이지?"

"네."

"반장은 안 나갈 거잖아?"

"아니요! 저 반장 선거 나갈 거예요."

분명 어제까지는 전혀 생각이 없던 아이였는데 아이는 갑자기 눈망울을 반짝이며 반장이 되고 싶다고 했다.

"갑자기 왜 생각이 변한 거야? 반장 나가기 부끄럽다면서?"

"용기를 내려고요. 친구들도 다들 반장선거 나간대요."

웃음이 나왔다. 친구를 좋아하는 딸은 친구들과 하굣길에서 친구들 모두 반장 선거에 나간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친구들도 나가니 자신도 용기를 내서 도전해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걱정이 생겼다.

'우리 딸이 반장 역할을 잘할 수 있을까?'

12월생 조금은 늦된 아이라 아직도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다. 또래보다 순박하고, 맑은 아이...

공부와 숙제보다는 그림과 친구 선물이 더 중요한 아이였다.


"반장이 되면... 수업 시간에 딴짓도 하면 안 되는데 그럴 수 있어?"

"왜요?"

"반장이 됐는데, 수업 시간에 딴짓하면 당연히 안되지. 반장은 반을 대표하는데, 딴짓하면 될까? 안될까?"

"안돼요...."

아이의 표정은 금세 어두워졌다. 반장은 하고 싶은데, 공부는 열심히 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엄마, 나는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선생님도 도와주고 싶어요."

"친구를 도와주고 선생님을 도와주는 건 꼭 반장이 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인데?"

"그래도 반장이 되고 싶어요."


하루 전, 갑자기 반장이 되고 싶다는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무리 인기투표 같은 반장선거라지만 한 반의 대표로서 아이가 잘 해낼지 엄마로서 조금 부담이 느껴졌다.

그래도 나가겠다는 아이의 자신감을 꺾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차라리 반장이 아니라 부반장이라면 나의 부담감이 조금은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반장이 될 거면 공약 같은 게 필요한데 공약은 있어?"

"공약이 뭔데요?"

"네가 반장이 되면 어떻게 하겠다는 약속 같은 거야."

"음.... 친구들을 도와줄 거예요. 친구들이 싸우면 제가 대신 말릴 거고요. 친구들이 준비물을 안 가져오면 제가 다 빌려줄 거예요."

"음.... 그 정도 가지고는 안 될 것 같은데...."


사실, 아주 조금은 아니 조금 많이 아이가 반장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가 아이들 앞에 서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 하는 것도 싫었다.

"우리 그럼 연설문을 짧게 써볼까?"


 반장이 뭔지도 모르는 딸과 연설문을 준비했다. 준비랄 것도 없었다. 아주 간단하게 자기 소개하는 글만 적었다. 절대 이 정도 문장으로 반장이 될 수 없다는 건 엄마인 나는 알고 있었다. 반장선거 연설문이 아니라 자기소개글이었지만 뭐 3학년 반장선거에 대단한 공약을 준비한다는 것도 부담이었다.


이것이 엄마의 첫 번째 실수였다. 3학년 아이들을 우습게 본 죄.



어찌 됐던 아이는 엄마가 적어준 간단한 자기소개서를 들고 반장선거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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