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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씨앗 Mar 15. 2021

[아이의 사생활] 반장 선거(2)

엄마 친구들이 나를 안 뽑아줬어요!

반장 선거가 있는 날이다.

준비한 것도 없이 보내 놓고, 혹여나 아이가 반장이 되어올까 속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학교가 끝나자 아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 소리가 들리자 일부로 딴청을 피우며 컴퓨터 작업에 열중했다.

"다녀왔습니다."

조금 풀 죽은 목소리로 보아, 분명 반장선거에서 떨어진 모양이었다.

"잘 다녀왔어? 반장 선거는 잘했어?"

"엄마, 나 떨어졌어요."

"그랬어? 어휴, 속상했겠네."

 못된 엄마는 속으로 알고 있었다는 듯 웃음이 나왔다.

"엄마, 나 너무 속상해요. 친구들이 나를 아무도 안 뽑아줬어요."

"뭐라고? 0표 나왔어?"

아이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며 엉엉 울었다. 세상에 태어나 겪은 첫 실패 같은 느낌이 이런 걸까? 아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엄마 품에 달려와 엉엉 울었다.

'아뿔싸, 정말 반장이 되고 싶었던 걸까?'


"너는 누구 뽑았는데?"

"나는 유 OO 뽑았지."

 아이가 뽑았던 아이가 반장이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은 아무도 뽑아주지 않아서 너무 속상하다고 했다.

"그래도 네가 뽑은 친구가 반장이 되면 좋은 거 아니야?"

"그래도 어떻게 아무도 안 뽑아줄 수가 있어. 친구들이 아무도 나를 안 뽑아줬어."


아이의 눈물을 보고 문득 예전 이야기가 떠올랐다.

새 학기 반장선거가 되면 반 아이들 반절 정도가 우수수 나가서 반장이 되겠다고 한다고, 표도 거의 갈려서 4~5표로 반장이 되고, 떨어져도 1~2표 차이라고... 딸아이 친구 언니였던 한 아이는 반장선거 때 자신이 아닌 남의 이름을 썼노라고. 그래서 1표밖에 못 받았다고... 자기는 다른 친구를 한 표 찍고, 자기도 한 표 받았다고.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선배 엄마들은 모두 입을 모아서 얘기했다.

"자기는 자기 한 표 뽑아야지."


반장선거 나갈 때 자기 이름 뽑아야 한다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 어릴 때 나도 단 한 번도 내 이름을 쓴 적이 없었다. 그랬던 내가 아이에게 꼭 니 이름을 써야 한다고 강하게 어필할 수가 없었다.

 엉엉 우는 아이를 달래는데 자꾸 웃음이 나왔다. 세상의 쓴 맛을 3학년 반장선거에서 맛보게 될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너는 꼭 니 이름 쓰라고 강하게 말해줄 걸 이라는 후회도 들었다.


딸아이의 탈락 소식을 전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못된 엄마'라고 한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반장 선거 나갈 때 자기 이름 쓰는 걸 왜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몰랐다. 엄마인 나도 딸아이도 진짜 한 표도 안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는 친구도 2~3명 있고, 새로 사귄 친구들도 2명 있고 해서 한 표는 나올 줄 알았지~"

"네가 얘들을 너무 쉽게 생각했어. 요즘 애들이 어떤 애들인데... 친하다고 뽑아주는 거 아니야~"


엄마가 3학년을 너무 무시했던 탓이었다.

'미안하다, 딸아. 엄마가 무지했다.'


어느 센가 딸아이는 울음을 그쳤다.

"혹시 2학기 반장 선거 또 나갈 거야?"

"응.. 2학기 때 반장선거 또 나갈 거야. 그래서 나 반장 꼭 될 거야."


'아뿔싸. 이거 좋아해야 하는 걸까? 슬퍼해야 하는 걸까?'

"그럼 니 표에는 니 이름 써야 해. 알았지?"

"엄마, 반장 선거는 반장이 됐으면 하는 친구를 적는 거잖아요."

"너는 반장선거 왜 나가? 반장이 되고 싶어 나가는 거 아니야? 너는 누가 반장이 됐으면 좋겠어?"

"저요."

"그럼 누구 이름을 써야 할까?"

 순간, 아이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대신 투표는 비밀투표니깐 네가 누구한테 썼는지는 친구들에게 비밀이야."

"알겠어요."



아이는 다시 즐겁게 일상으로 돌아갔다.

2학기 때 반장선거 나가겠다고 하는 게 좀 두렵긴 하지만

적어도 2학기 땐, 0표 나왔다고 엉엉 우는 모습은 안 볼 수 있게 되었다.


반장선거가 이런 건 줄 나만 몰랐다니...

엄마의 두 번째 실수!


아이의 첫 실패를 기념하고, 아이를 응원하기 위해 위로금을 지급했다.

마음 같아선 만 원짜리 한 장을 주고 싶었지만

'반장 선거 나가면 무조건 만원이라는 생각을 할까 봐.' 천 원만 지급하기로...


천 원에 기뻐하는 아이...

엄마가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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