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도 가도 끝이 없는 땅 끝 제일 먼 곳에 위치한 곳. 교통이 발달되지 않은 조선시대에는 그야말로 까마득한 곳이었을 것이다.
처음 강진으로 여행을 계획했을 때 가장 보고 싶었던 곳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다산초당'이었다. 강진까지 왔는데, 살면서 언제 또 올지도 모르는데 다산 정약용 선생의 흔적이 남은 '다산초당'은 한 번 다녀가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행 전 급격히 안 좋아진 첫째 딸의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정을 무리하게 잡을 수 없었다.
점심은 강진군청 근처에 있는 지역 맛집 '모란 추어탕'으로 정했다. 가까운 곳에 어제 가지 못한 '사의재'가 있다고 해서 가는 김에 그곳도 함께 들리기로 했다. 어제 갔던 영랑생가와 불과 3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어제는 볼 게 없을 거라 생각해 패스했는데 오늘 마침 가까운 곳으로 식사를 하러 왔으니 마저 들러보기로 했다.
사의재 :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丁若鏞)이 전라남도 강진에 유배되었을 때 머물던 주막집
위치 : 강진군 강진읍 사의재길 31-8
입구에는 옛 빨래터가 보인다.
강진에서 자연관찰 중인 가족들
올챙이, 개구리, 연못의 연꽃
이곳에 와서 '정약용'선생에 대해 설명을 한 들 관심 있게 들을 아이들이 아니었다.
대신 '옛 빨래터'를 보고, '물레방아'를 보고, '정원 속의 개구리와 연못의 올챙이'를 관찰했다.
사의재의 한옥체험관
사의재의 한옥체험관도 있었는데, 숙박이 가능한 숙소였다. 대략 9개의 방이 있고 2인실에서 10인실까지, 가격은 4만 원에서 10만 원까지 고루 있었다. 예약은 강진군청 홈페이지에서 예약이 가능한 것 같았다.
우리는 자연휴양림 숙소를 정했기에 아쉽지만 pass!
주말에는 여러 행사가 있다는데 평일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평일의 사의재 저잣거리는 한산했다.
주말에는 '조만간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한다는데 일정이 맞으면 참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만간 프로젝트'는 '조선을 만난 시간'의 줄임말로 강진의 역사와 인물을 재현하는 문화관광 프로젝트라고 한다. 강진군의 아마추어 배우들이 마당극을 공연하고, 다산이 먹었던 아욱국 등 특색 있는 먹거리와 조선 시대 재현 코너 등도 있다고 했다.(미리 갈 사람은 일정을 확인하도록!)
사의재는 주막집 주인 할머니의 배려로 골방 하나를 거처 삼은 다산이 몸과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 교육과 학문 연구로 헌신키로 다짐하면서 붙인 이름으로 '네 가지를 올바르게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했다.
다산은 생각과 용모, 언어와 행동, 네 가지를 바로 하도록 자신을 경계하였다. 유배생활 중 4년을 이곳 사의재에서 머물면서 경세유표와 애절양 등을 집필했다고 한다. 또한 1802년 이곳 사의재에서 두 아들 학연 학유에게 쓴 편지글이 아비로서 다산의 심정을 나타낸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라고 했다.
사의재를 둘러보고 점심을 먹으러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모란의 고장답게 골목 담벼락에도 예쁜 모란꽃들이 활짝 피어있었다.
자기 몸보다도 큰 꽃들이 신기했는지, 자꾸 사진을 찍어달라던 둘째였다. 벽화 구경에 신이 난 둘째 덕분에 골목 벽화 구경을 다하고서야 밥을 먹으러 갈 수 있었다.
점심은 지역맛집에서 추어탕과 보쌈수육
점심은 추어탕과 수육이었다. 이곳에서 꽤 이름난 곳이었는데 평일인 데다가 점심시간이 아니어서 그랬을까?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전체적으로 양은 조금 적은 듯했고, 추어탕은 맛있었고, 수육은 보통이었다.
미리 준비를 철저히 했다면 '다산 정약용'의 책도 좀 보고 공부도 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마 그건 '엄마의 욕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 곳은 그저 살아있는 올챙이를 엄청 많이 봤던 곳이었다.
다음에 일정을 잡는다면 영랑생가-모란공원-사의재 저잣거리는 다 묶어서 한 번에 돌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