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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씨앗 May 20. 2021

[방콕연애]부부의 스킨쉽

'스킨쉽이 너무너무 싫어요'

 시간이 나면 종종 둘러보는 카페가 있다. 카페에 최근에 고민이 올라왔다.

  '남편이 싫은 것은 아닌데, 남편이 하는 스킨쉽이 정말 너무 싫다'는 내용이었다. 소스라치게 싫어서 정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글의 내용에도 남편의 스킨쉽에 대한 거부감과 적대감이 가득했다.

 몇 해전, 남편이 나를 쏘아보며 했던 말이 생각났다.


 "싫다고 했잖아. 싫다고 하는데 왜 자꾸 그래."


 나는 정말 눈물이 핑 돌았다. 그저 좋아서 장난으로 그랬던 거였다.


 "나는 좋아서 그런 건데... 그렇게까지 말할 건 아니잖아."


 억울하고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날따라 남편이 피곤했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장난을 치고 싶던 나의 과욕이 일으킨 참변이기도 했다.

 나는 평소 장난기가 많은 편은 아닌데 아주 간혹 불쑥불쑥 치고 올라올 때가 있었는데, 그 날이 아마 그랬던 것 같다. 평소에 늘 하던 장난이었지만 피곤했던 남편의 신경을 건드려버렸다.

 펑펑 우는 나를 본 남편은 신경질을 내서 미안했던 지 피곤해서 그랬다며 화를 낸 것에 대해 사과를 하고 잠이 들었다. 남편이 잠 들고나서 나는 옛 기억을 떠올렸다.


 아이가 태어나고 시작된 육아전쟁으로 지친 날들이었다. 갓 엄마가 된 초보 엄마인 나에게 '성욕' 따위는 없었고, 오로지 보이는 것은 '아이'하나뿐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 잠들 기 직전까지 하는 일이 '아이 돌보는 일'이었다. 아이를 돌보는 것이 내 일이었고, 그것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어느 날인가 회식 후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남편은 나를 보자마자 평소보다 들뜬 얼굴로 스킨십을 시도했고, 아이를 혼자 돌보던 나는 그런 남편에게 화를 냈다.

 사실 남편이 일찍 와서 함께 아이를 돌봐주기를 바랐던 마음이 컸고, 다짜고짜 술 마신 입으로 뽀뽀를 하는 것도 달갑지 않았다. 나는 그때 평소에 잘 보이지 않는 아주 무서운 눈(?)으로 남편을 쳐다보며 한 소리를 했었다. 그 순간, 술에 취해 몽롱하게 풀어졌던 남편의 눈이 또렷해짐을 느꼈다.


 '아뿔싸. 내가 실수했구나.'

 남편의 표정을 보고 나는 바로 알아버렸다. 남편은 금세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서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나는 안고 있던 아이를 내려놓고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화가 난 남편에게 하루 종일 내가 신경이 곤두설 만큼 바빴던 일과에 대해 계속 읊어 내려갔다. 그리고 당신이 회사에서 술 먹고 있는 동안 아이와 전쟁을 치르느라 늦게 들어온 모습에 화가 나서 못되게 굴었노라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남편의 화는 그날 다 풀린 것은 아니었으나 어찌 됐든 표면적으로 우리는 화해를 했고 그 뒤에도 잘 지냈다.


 그때 생각했었다. 우리가 아니 내가 아이를 키우느라 정말 '부부'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남편을 나의 배우자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아이를 키우는 동반자, 아이의 아빠라고만 생각했었다. 물론 우리 부부는 사이가 좋은 편이었지만, 우리 부부는 배우자보다는 항상 아이에게 잘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다.


 어찌 됐던 서로 서운했던 이유는 너무 피곤했던 상대방의 기분은 생각지도 않고, 평소보다 기분이 좋았던 이의 과도한 스킨쉽이 부른 화(禍)였다.


 '남편의 스킨쉽이 싫다'는 고민에 대한 댓글은 대부분은

1) 남편이 조금 서운할 것 같다.    

2) 맘님의 마음도 알고, 남편 분의 마음도 알겠다.

3) 그런 스킨쉽 하는 거 정말 싫다.

등의 반응이었다. 나도 댓글을 달려고 댓글창을 열었다가 금세 닫았다.

 

 '제가 남편에게 왜 사과를 해야 하나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


 글쓴이의 재 댓글에서는 남편에 대한 자신의 감정만이 있을 뿐, 자신으로 인해 어떤 감정을 느꼈을 남편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준들 들어줄 것인가?

  나는 듣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굳이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글쓴이는 '남편의 과도한 스킨쉽이 잘못됐다'는 답변을 원하는데 나는 글쓴이의 태도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므로 그 글에는 댓글을 달지 않는 것이 맞다. 굳이 내가 그녀가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에 댓글을 달고 안 그래도 화가 나 있는 그녀의 기분을 망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그 글에서 남편이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스킨쉽이 싫다는 데 계속하는 것은 문제가 있었지만 말이다. 적어도 내가 느낀 느낌은 그 집 남편이 조금 더 안됐다는 느낌이었다. 아마 내가 이전에 남편에게 스킨쉽을 했다가 한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면 아마 그 남편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어릴 때 스킨쉽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스킨쉽을 피하면 피했지 먼저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간혹 스킨쉽이 좋은 사람이 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다. 남편은 내가 스킨쉽을 하면 깜짝 놀라는 리액션을 해준다. 나는 동그랗게 뜬 토끼눈과 깜짝 놀라 멈칫하는 남편의 '리액션'을 사랑한다.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가 덜 한 나는 종종 남편에게 스킨쉽 장난을 치곤 한다. 그러다 남편의 컨디션이 안 좋으면 금방 한소리를 듣는다. 그럼 바로 나는 깨깽하며 물러선다. 다른 사람이 하는 스킨쉽이 싫은데 내가 하는 스킨쉽은 좋다. 내가 설거지하는데 남편이 나를 괴롭히는 건 싫은데, 남편이 뭔가 집중했을 때 나도 장난은 치고 싶다. 알 수 없는 부부의 심리...




 예전에 카페에 비슷한 글이 올라왔었는데, 그 글에는 유쾌한 답변들이 많이 달려있었다. 글쓴이의 재답변도 꽤 유쾌한 편이었고, 여러 답변을 보며 글쓴이는 자신의 행동을 다시 생각해본다고 했다. 많은 답변 중에 기억나는 댓글이 있었는데 '부부가 서로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상대의 오금(무릎 뒤쪽)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아마 서로 상대가 방심하는 틈을 타서 장난을 칠 기회를 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 사자성어에는 ‘나는 옳고 다른 이는 그르다’라는 뜻을 가진 ‘我是他非(아시타비)가 있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한자어를 좋아한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의 한자성어로 모든 것을 그렇게 생각하면 사실 피곤한 삶이 되겠지만, 간혹 도저히 이해 안 가는 것들도 상대의 시각에서 보다 보면 이해가 가는 순간이 있기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피곤한 것보다 '왜 그랬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우리 부부의 스킨쉽 싸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나의 장난스런 스킨쉽도 계속 될 것이며, 우리 남편이 나에게 화를 내는 경우도 간혹 지속될 것이며, 내가 남편에게 화를 내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하지만 스킨쉽의 기본은 '애정'이다. 애정이 없다면 스킨쉽도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남편을 사랑하지 않은데 왜 스킨쉽으로 장난을 치고 싶을까? 그렇다고 스킨쉽으로 애정의 척도를 삼을 순 없다. 나는 남편과 스킨쉽이 없을 때도 남편을 사랑했다. 다만 피곤함이 애정을 넘어서는 순간이 생기니 스킨쉽에 관심이 적어진 것 같다.

 기본적으로 우리 부부는 스킨쉽으로 장난을 잘 친다. 그리고 상대가 칠  스킨쉽 장난(?)을 미리 간파하고 막아내는 것에 스스로 더 쾌감을 느낀다.



 장난이고 스킨 쉽고 모두 상대방의 기분이 중요하다. 내가 장난을 쳤는데 상대가 기분이 아니라면 장난이 큰 싸움이 될 수도 있다.

'(스킨쉽이든 장난이든 시도했다가) 아니다 싶으면 빨리 사과하라' 남편과 상의해서 부부 룰로 만들어둬야겠다.

  

 


-(과거의 스킨쉽 거부증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나 이야기가 길어지므로 다음 편에)




 * 여기서 나오는 스킨쉽은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대부분이 가벼운 정도의 스킨쉽이에요.^^

부부 사이 뿐 아니라 친밀한 연인사이에서도 스킨쉽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것 같아요.

조금 더 친밀한 부부의 예를 들었지만 의미는 하나입니다.

서로 상대방의 상황과 기분을 생각해주고 배려해준다는 것!


아내가 김태희는 아니지만 아내도 김태희처럼 사랑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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