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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씨앗 Oct 10. 2021

[부부 일상] 누구나 계획은 있다. 쳐 맞기 전까지는

멋진 남자와 사는 게으른 여자의  성공 비결에 대하여.

"세정 작가, 자기랑 남편 이야기를 써 보는 건 어때?"

"무슨 얘기?"

"그냥 어떻게 사는지, 알콩달콩 사는 이야기들, 그런 거 쓰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남편과의 연애시절 이야기를 글로 쓸 생각은 있었지만 결혼 생활을 써 볼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지금 검열당하고 있으니까....'


 브런치를 시작했을 때, 오래간만에 열심히 쓴 글을 아무도 봐주지 않아 낙담했었고, 남편의 대리만족을 위해 여행과 음식 이야기 칸을 만들었다. 남편이 아이들과 음식을 만들었던 기억을 아이들이 크면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싫다는 남편에게 브런치 가입을 시키고, 강제로 구독을 시켰다.


 반응은 생각보다 빨랐다. 심혈을 쏟아 써 내려간 글에 신랑이 딱 하고 '댓글'을 달았다. 아주 장난스럽게 말이다. 나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실 우리는 실제로 그런 대화를 하며 집에서는 하하호호 웃고 논다.

 하지만 이곳 브런치라는 공간에서는 좀 더 '글다운 글'을 쓰고 싶어서였을까? 나는 남편의 장난스러운 댓글을 지우고, 남편에게 한소리(?)했다.

 

 "여보, 댓글로 장난치면 어떻게 해요? 거기는 내 공적인 장소라고요."

 남편의 표정은 금세 시무룩해졌다.

 "장난친 거 아닌데..."

 나는 순간 화가 나 나도 모르게 조금 심한 말을 했던  같다. 남편은 풀이 죽었다. 화가 가라앉자 내가 너무 예민하게  것이 미안해졌다.

 "여보, 내가 화내서 미안해요. 나는 정말 다시 작가로서 글을 쓰고 싶었어요."

 "알았어요."

 남편은 대답했지만, 상처는 이미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남편은 더 이상 브런치에 댓글을 달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이 브런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이 아침 일찍 '평범한 블로그 A 씨의 성공 비결' 이라며 블로그에서 공모주로 대박을 터뜨린 주부에 대한 기사를 나에게 링크해줬다.

 나는 또 씩씩거리며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혹시 오늘 내가 브런치에 글 때문에 그거 보낸 거야?"

 "아니, 아무것도 안 봤는데?"

  나는 전날 '전업주부의 자존감과 아르바이트'에 대한 글을 작성했었다.

 내인 내가 돈을  버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 다고 생각한 거였나? 남편은 브런치 내용과 상관없이 '투자로 돈을 벌어 일도 하고 자존감도 찾으라' 조언을 해줬다.


 "여보 나는 돈을 벌고 싶은 것도 있지만, 기왕이면 글도 쓰면서 돈을 벌고 싶어요. 내가 작가가 된 건 글을 쓰면서도 돈을 벌 수 있고, 나는 글을 쓰는 일이 좋아요. 그걸로 돈을 벌고 인정받고 싶은 거지, 투자의 귀재가 되어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게 아니에요."

 남편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 써~ 여보가 쓰고 싶은 거 다 써요. 돈은 내가 많이 벌어줄게요."

 나는 남편을 향해 '무한 감동'을 표정을 보여줬다. FM적인 답변이다.

 "말이라도 그렇게 해줘서 고마워요."

 물론 몇 개월 전의 이야기다.

 

"여보, 나 @@언니가 '남편 다루는 비법'을 글로 써달라는데 써볼까? 우리 집의 평화의 비법, 부부 사이가 좋은 비법, 이런 거 다들 궁금해 하긴 하던데 어때?"

 웹툰을 보던 남편은 "뭐라도 써봐." 하며 심드렁하게 웃었다.


 "여보 나 진짜 진지해. 잘 들어봐. 거기에는 내가 여보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들... 좋은 사이를 유지하는 비법을 담을 건데, 그걸 보고 여보가 '내가 속았구나, 비뚤어질 거야' 하면 안 돼! 그 글을 보더라도 이전과 똑같이 잘해주기? 알았지?"

 

남편이 드디어 보던 웹툰에서 시선을 거두고 나를 바라봤다.

오랜만에 들뜬 나를 남편은 빤히 보더니 눈을 반짝였다.

 "여보 혹시 그런 말 알아?"

오랜만에 반짝이는 남편을 눈을 바라보며 나도 눈을 반짝였다.

"무슨 말???"

 "아무도 자기가 병신인 줄 모른다. 쳐 맞기 전까지는"

 "그게 무슨 말이야? 설마 내가 병신이라는 거야?"

장난기 가득한 남편의 말에 나 역시 장난스레 달려들어 목덜미를 잡았다. 내 손엔 아랑곳하지 않고 남편은 하던 말을 계속했다.

 "여보가 아직 모르는 모양인데 나는 원래 그래. 여보가 뭘 어떻게 해서가 아니라.. 여보가 그렇게 안 해도 난 그럴 사람이야. 난 멋진 남자니까"

 자기가 말을 해놓고도 기분이 좋은지 신랑은 벙실벙실 웃었다.


 "근데 그게 어디서 나온 말인데?

 "나도 몰라. 아무튼 그런 말이 있다는 거야. 암튼 나는 여보가 뭘 하든 좋아. 일단 뭐라도 좀 써봐. 말만 하지 말고."

 "쓸 거야. 당장 쓸 거야. 방금 여보가 한 이 말부터! 이것부터 쓸 거야."


 나는 다시 노트북에 와서 남편과의 이야기를 쓰려다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소파에 쏟아부었다.

 "으악, 여보 물티슈~~~"

 "아이고 폼 잡을 때부터 알아봤어."

 남편은 배꼽을 잡으며 웃다가 키친타월 한 장을 뜯어 나에게 건네줬다.


  커피를 엎지른 자리를 대충 정리하고 나는 검색창에 남편이 해 본 말을 검색해본다.

 "누가 했던 말인가 어디서 봤는데, 잘 기억이 안 나. 뭐 그런 뜻이었어."

 "웹툰에서 나온 거야? 막상 찾아보면 전혀 다른 말 아냐?"

 "몰라. 암튼 그런 말이 있었어."



 나는 검색창에 검색한다.

 '자기가 병신인 줄'

 '자기는 모른다'

 '병신인 줄 모른다'

 아무것도 안 나온다. 다시 검색어를 바꿔본다.

 '쳐 맞기 전까지'


 네이버 블로그 글이 뜬다.

"처음엔 누구나 근사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현실에 쳐 맞기 전까지는"

 나는 남편에게 다시 문구를 읽어주며 확인한다.

 "어. 그거 같다. 비슷해. 아 맞아. 그거야. 처음엔 누구나 근사한 계획이 있다."

 "이게 뭐야. 전혀 다르잖아. 계획이랑 병신이 어떻게 비슷해~"

 "아까 내가 뭐라고 했는데?"

 "아무도 자기가 병신인 줄 모른다. 쳐 맞기 전까지는"

 "이거 마이크 타이슨 명언이래. "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쳐 맞기 전까지는"


 남편에게 한 방 맞았다.

 '그럴싸한 나의 계획이 병신으로 둔갑한 순간이었다.'

 비슷한 말인데 전혀 다른 느낌!

      

비슷한 말, 다른 느낌!

<덧붙이는 말>

"병X"이라는 말은 좀 세긴 세다.

좋지 못한 못된 이 상스러운 언어를 아주 가끔은 쓸 때가 있다.

남편이 쓴 이 엉뚱한 오해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듣는 순간에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장난기 가득한 그 남자의 펀치에 나는 그저 기분 좋게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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