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엄마, 친구가 자꾸 이상한 걸 보내..."
아이의 말에 딸의 휴대폰을 열어봤다.
익숙한 멘트로 시작하는 '행운의 편지'였다.
아이 친구의 첫 문장은 다급하면서 불안감과 미안함이 담겨있었다.
"OO아, 미안해. 이걸 안 보내면 안 된다고 해서... 정말 정말 미안해..."
'이 편지를 받고 아이 친구는 얼마나 불안에 떨었으며 이걸 다시 친구에게 보내기까지 얼마나 마음의 내적 갈등을 겪었을까.'
사실 이 행운의 편지가 아이도 처음이 아니었다.
아이가 1학년 때 일이었다. 평소에는 문자도 잘 안 하는 아이가 핸드폰을 보며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게 보였다. 너무 집중을 하고 있었는지 엄마인 내가 옆에 다가오는 줄도 몰랐다. 나는 슬쩍 아이의 핸드폰을 뺏어 보았다가 경악했다.
아이는 친구들에게 행운의 편지(문자)를 보내고 있었던 거였다.
나는 그 문자를 보자마자 극노하며 문자를 지워버렸다.
문자를 보낸 아이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였고, 나도 잘 아는 아이였다.
아이는 나쁜 의미로 보낸 것은 아니었다. 10명에게 보내면 행운이 온다는 것을 보고, 가장 친한 친구에게 행운을 주기 위해서 보냈다고 했다.
말만 부드럽게 바꿨을 뿐 방 강제 협박문자였다.
80년생인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우리 학교에도 행운의 편지가 돌았다. 친구들끼리 서로 편지를 주고받는 시기였는데, 서로서로 자신이 받은 편지를 받고 답장을 해주던 시기였다.
그런 시기를 틈타 어느 날 '행운의 편지'를 받았다며 울먹이는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불행해지지 않으려면 10장을 써야 한다며 울먹였다. 나는 편지를 받지 않은 것을 안도하면서도 언젠가 나에게도 올 것만 같은 편지에 대해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어느 날 학교가 끝나고 책상 서랍에서 낯선 편지봉투를 찾았다. 그걸 발견하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올 것이 왔구나.'
반 아이들에게 돌고 돌아 나에게까지 도착했다. 1명이 10명에게 보내니 한 반에 편지가 도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손으로 열심히 행운의 편지를 써서 친구들에게 보냈다. 받은 아이들은 또 쓰고, 또 받은 아이는 또 썼다.
나는 행운의 편지 첫 문장을 읽고 편지 봉투에 다시 담았다.
'나는 이 편지를 읽지 않았어. 그러므로 이 편지 내용은 나에게 해당되지 않아.'
어린 나에게 스스로 주문을 외웠다. 하지만 불안했다. 다른 친구들은 다 편지를 썼고 나만 안 썼기 때문이었다. 친구들은 내게 왜 행운의 편지를 쓰지 않느냐고 물었다. 불행해지는 게 무섭지 않으냐고 물었다. 나 역시 무서웠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것을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일이었다.
나는 아무에게도 '행운의 편지'라는 이름으로 전달된 '불행의 편지'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던 나는 엄마에게 슬그머니 그 편지 이야기를 했다.
"엄마, 행운의 편지라는 게 있는데 그걸 10장을 안보내면....."
그러자 엄마는 내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바로 대답하셨다.
"응, 그거 뻥이야. 아무 일도 없어. 나 어릴 때도 그게 있었는데, 나는 안 썼어. 아무 일도 없었어."
엄마는 정말 무신경하게 대답했고, 진지한 내 마음과 달리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시는 게 조금 야속했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면 내 친구들은 왜 다들 행운의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일까?
행운의 편지는 내가 중학교에 갔을 때도 돌았다. 나는 그때 역시 아무에게도 행운의 편지를 쓰지 않았다. 나는 행운의 편지를 끝까지 읽지 않았을까 괜찮다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내가 행운의 편지를 받은 지, 거의 30년이 지나서 아이에게도 '행운의 편지'가 왔다.
"이게 아직도 있어?"
"엄마, 이거 안 보내면 정말 불행해질까?"
어릴 적 내가 그랬듯이 아이 역시 불안해하고 있었다.
"엄마 어릴 때도 이 편지가 있었거든? 그래서 친구들끼리 다 보내고 그랬어. 그런데 엄마는 안 보냈어. 불행해졌냐고? 아니 아무 일도 없었어. 그리고 이 편지를 네가 친구들에게 보내면 어떻게 될까? 친구들이 이 편지를 받고 좋아할까?"
"안 좋아할 것 같아."
"맞아. 친구들도 안 좋아할 거야. 그리고 너처럼 불안해하겠지. 그러면 이런 편지를 친구들에게 그냥 보내야 할까?"
"아니."
"그래 맞아. 우리 보내지 말자. 엄마도 어릴 때 이런 편지 받고 보내지 않았어. 엄마가 이걸 누군가에게 보내면 그 친구도 불안해지잖아. 친구에게 이 편지에 대해 잘 얘기해주고 앞으로 보내지 말라고 얘기하는 건 어떨까?"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친구에게 답장을 보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3년이 된 아이에게 또 행운의 편지가 왔다.
"엄마, 이게 또 왔어."
아이는 처음처럼 불안해하지는 않았다.
"너, 친구에게 또 보냈어?"
"아니. 나는 안 보냈는데... 근데 이걸 받은 다른 친구가 이 편지 때문에 무섭대."
"그럼 그 친구에게 전화해서 이 편지에 대해서 말해주면 어떨까?"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행운의 편지를 재전송한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OO아, 내가 우리 엄마에게 물어봤는데, 이 편지는 우리 엄마 어릴 때도 있었던 거래. 우리 엄마도 이 편지 받고 안 보냈는데 아무 일도 없대. 그러니까 너무 무서워할 필요 없어."
아이의 말에 엄마 미소가 절로 나왔다.
통화를 끝나고 친구와의 대화를 곱씹던 딸아이가 다시 질문을 했다.
"엄마, 근데 귀신이 정말 있어요?"
"귀신은 갑자기 왜?"
"그 문자를 안 보내면 밤에 귀신이 찾아온다고 했대요."
"아... 그 문자? 이번엔 불행이 아니라 귀신이 나온다고 했나 보네. 근데 귀신이 한가한 것도 아닌데 초등학생들 일일이 찾아다니는 것도 힘들겠다."
아이는 귀신이라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귀신들도 바빠서 초등학생하고 놀 시간 없다고. 그런 거 너무 신경 쓰지 마. 엄마 학교 다닐 때는 편지로 쓰라고도 하고 이메일로 오기도 하고 그랬어. 그런 거 잘못 확인하고 바이러스 같은 게 걸려서 컴퓨터 고장 나고 그랬어."
아이는 그 말을 듣자마자 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그거 예전에는 바이러스가 들어있고 막 그랬대. 그러니까 그런 편지를 신경 쓰지 말래. 그리고 귀신이 만약 있어도 바빠서 초등학생들 다 찾아다닐 수도 없대."
아이를 말릴까 잠시 고민을 했지만 그냥 두기로 했다. 어찌 됐든 아이 친구의 불안이 잠재워지길 바랄 뿐이다.
"행운의 편지라는 게 일종의 폭탄 돌리기 같은 거야. 내가 불행해지기 않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불행해질 수 있는 편지를 보내는 거잖아. 그런데 말이야. 폭탄 돌리기를 하는데 중간에 한 사람이 폭탄을 안 돌리면 어떻게 될까?"
아이는 눈을 크게 뜨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터지지"
"아니, 안 터져."
"왜???"
아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폭탄에 처음부터 불이 안 붙어 있으니까. 안 터지는 거야. 그 편지가 진짜가 아니니깐 그 편지를 보내지 않아도 불행해지는 게 아니고..."
행운의 편지 얘기를 하다가 엉뚱하게 폭탄 돌리기까지 나와버렸다. 어찌 됐든 그럴듯한 '행운'이라는 포장으로 아이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주는 '행운의 편지'는 없어졌으면 좋겠다.
갑자기 생각이 났다.
옛날에 누군가에게 들었던 적이 있다. 행운의 편지의 목적이 어린이들의 글씨 연습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똑같은 내용을 글씨를 예쁘게 10장이나 반복해서 써야 한다는 내용으로 초등학교 저학년인 학생들에게 미션(?)처럼 수행해야 할 과제였다고...
하지만 의도가 어찌 됐든 사람들의 심리를 불안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반대다.
'이 편지는 100년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라는 의미심장한 문구처럼 1958년생인 우리 엄마가 학교 다닐 때인 1960년대도 있었던 행운의 편지는 정말 100년이 지나도 존재할 것만 같은 불안한 느낌이다. 도대체 목적이 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