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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씨앗 Dec 01. 2022

이까짓게 뭐라고

오늘 뭐 먹지?

<남편의 족발>




하루 종일 뭐했을까? 시간은 너무 빨리 갔고, 남편의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다.

밥통에 밥이 없다. 냉장고에 반찬이 없다. 외식을 하자고 하기엔 면목이 없다.

슬퍼졌다. 하루 종일 뭐하느라 저녁밥 준비도 제대로 못한 걸까?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남편이었다.

"뭐해?"

"그냥 있어."

"목소리가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 없어. 그냥 좀 우울해서..."

"왜 우울한데?"

"밥 먹어야 하는데, 밥도 없고, 반찬도 없고... 하루 종일 뭘 한 걸까."

"그럼 내가 퇴근하면서 뭐 사갈까?"

"진짜? 그럼 좋긴 한데..."


면목이 없다. 밥은 날마다 하는데도 날마다 하기 싫다.

밥할 때만 되면 나는 여자로 태어난 걸 후회했다.

"사실, 나 족발이 먹고 싶었어."

"그럼 족발 사갈게. 식탁만 치워놔."


남편의 전화를 끊고 나니 앓던 이가 빠진 듯 속이 후련했다.

저녁이 한방에 해결됐다. 그것도 무려 '족발'이다.

기분이 좋다. 웃으며 식탁을 치운다.

저녁식사가 해결되니 여유가 생겼다.

저저 분한 거실을 둘러보다 얼른 정리를 해둔다.

빨래도 돌린다.

하루 종일 뭘 한 걸까.

어느 순간, 몸이 축축 쳐지면서 일이 힘들어졌다.

쉬고 있는데도 쉬는 거 같지 않고

반복적인 일상 속에 숨만 쉬고 있는 느낌이었다.


족발 포장세트


남편이 '족발'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족발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살점을 아이들에게 양보하고 아무도 관심 없는 뼈를 들고 뜯는다.

어릴 때 엄마가 족발 뼈만 먹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족발뼈에 붙은 살이 맛있다고 했었다.

실제로 먹어보니 쫄깃하고 맛있다.

아무도 넘보지 않는 족발뼈를 뜯으며 '오늘 하루도 행복하다' 생각이 들었다.

족발뼈를 뜯으며 미소 짓던 나를 보더니 남편이 묻는다.

"뭐가 그렇게 좋아?"

"좋지. 족발이잖아 (저녁 안차려도 되지, 설거지 안 해도 되지, 메뉴는 심지어 족발이지)"

"이까짓게 뭐라고"

"오올~~~~ 멋진데?"


족발뼈를 뜯으며, 남편에게 엄지 척을 날렸다.

흡족한 미소를 짓는 남편에게 허리도 굽혀 넙죽넙죽 폴더 인사를 한다.

"족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녁 자알~ 먹었습니다."

남편의 입이 더욱 찢어진다.

'이 정도면 다음번 밥하기 전에 한 번 더 써먹을 수 있겠지?'






<엄마의 통닭>


 가까이 있어도 서로 집순이인 우리 모녀는 별일 없으면 통화를 한다.

엄마가 언니의 아이들, 즉 조카를 봐주기 위해 올라와 계신 지 1년 정도가 지났다.

엄마와 통화를 하다가 엄마가 언니 흉을 본다.

엄마에게는 다행히도 딸이 둘이라 흉보기에도 최적화되어 있다.

툴툴대도 시키는 대로 잘하는 나와 달리, 잘하면서도 본인 고집이 있는 언니는 나와는 다른 면이 있다.

 언니는 잠깐 회사생활(2년) 공무원 준비(2년)를 제외하고는 늘 엄마와 함께였다.

해외출장이 잦은 형부 대신 엄마가 언니의 아이들이 케어하고 집안 살림을 맡아서 했고, 언니는 형부와 함께 바깥양반 아닌 바깥 여주인이 되었다.


 집에서 살림하는 엄마와 나는 사장님들의 횡포에 대해서 종종 울분을 토했다.

"점심은 뭐 먹을래?"

"나는 아무 생각 없는데, 엄마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나는 아무것도 생각이 없다. 그냥 그 치킨이 조금 당기긴 한데..."

"그럼 먹으면 되지, 뭐가 문제야."

"어제도 자장면 시켜먹었는데, 오늘 또 치킨 먹을 순 없지. 그냥 밥이랑 국이랑 대충 먹자."

"왜, 먹으면 되지. 내가 사줄게."

"됐어. 거기까지 가려면 먼데. 그냥 와."

"아냐 괜찮아. 나 자전거 타면 금방 갔다 와. 사 가지고 갈게."

엄마가 좋아하는 옛날통닭


엄마는 동네 상가에 있는 옛날통닭을 좋아하신다.

살짝 매콤한 맛이 나는 치킨이 어느 치킨보다 맛있다고 하셨다.

치킨 두 마리를 시켜서 포장을 해서 언니의 집으로 갔다.

치킨을 본 엄마가 무척 기뻐하셨다.

"이까짓게 뭐라고, 먹고 싶으면 먹어야지"

"안 먹어도 된다니까, 밥 먹으면 되는데...  두 마리나 사 왔네? 오늘은 배 터지게 먹겠네. 아니다 다 못 먹으니, 반은 남겨놨다 애들 오면 간식으로 줘야겠다. 맨날 이거 사다 먹으면 나는 먹을 것도 없어."

엄마는 싱글벙글하며 닭다리를 들고 뜯으셨다.

좋아하는 엄마의 얼굴 위로 남편의 얼굴과 90도로 폴더 인사를 했던 내가 떠올랐다.

남편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사실 별거 아닌데...

누군가에게는 그게 참 고맙고 기쁜 일일 수가 있다.


비록 족발에 비해 저렴한 통닭이었지만 엄마가 기뻐하니 기분이 좋았다.



사랑은 돌고 돈다.

남편의 족발이 내게 사랑이듯

엄마에게도 통닭도 사랑이길...



2022.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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