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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소설] 소울메이트 (1. 이별 독감_1)

몸과 마음은 하나, 마음이 아프니 몸도 따라 아프다.

by 연두씨앗 김세정

-1-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그저 그런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유정은 설거지를 하며 노래를 듣기 위해 라디오를 켰다.

귀에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유정은 시끄러운 물소리를 끄고, 노래 가사를 따라 흥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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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 잊혀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 나를 울려요...

--------------------------------------------------------잊혀진 계절, 이용


낙엽.JPG

유정은 부엌 창문 너머로 보이는 공원에 흩날리는 낙엽을 바라봤다.

매섭고, 찬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낙엽을 보다가

문득 그 날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찬바람이 불었다. 무척 추운 날이었다. 몸과 마음을 꽁꽁 얼려버릴 듯한 차고 매서운 바람이었다.

유정은 점퍼를 잡아당겨 얼굴과 목을 가리려 애썼다.

그런 유정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찬 바람은 유정의 옷깃 사이사이로 스며들었다.

유정은 지나가는 젊은 여성의 얇은 옷차림에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를 힐긋 훑어본다.

또각또각 젊은 여성은 반짝이는 하이힐을 신고 찬바람에도 굳세게 걸어간다.

유정은 젊은 여성의 짧은 미니스커트 아래로 드러난 살구빛 스타킹에 시선이 멈춘다.


'나도 한때는 이런 추위에도 불구하고 짧은 치마와 하이힐을 즐겨신었지...'

지난 날의 자신을 떠올려보던 유정은 피씩 웃음을 지었다.

유정은 더 이상 짧은 치마를 입지 않는다.

그리고 진한 화장을 하지도, 굳이 예쁜 옷을 찾아 나서지도 않는다.

유정은 오래전 잊어버렸던 예전의 자신을 떠올려본다.


그겨울 바람 구두 사진.JPG




오래전 겨울이었다.

유정은 학원강사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아 여의도로 향했다.

유정의 자취방이 있던 서울 봉천동 집에서 여의도까지 가기 위해서는 중간지점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유정은 그 지루한 출퇴근 시간을 항상 음악을 들으며 버텼다.

이제는 노래 가사인지 자신이 실제 겪은 이야기인지조차 헷갈릴 정도로 유정에게는 아주 오래되고 아주 익숙한 노래들이었다.


늘 같은 곳, 비슷한 노래를 들었지만 그날그날의 감정에 따라 노래들은 유정의 마음을 흔들어놨다.

그러다 문득, 어느 노래에선가 가슴속에 응어리가 울컥 솟아오르기도 했다.

매서운 찬바람이 불 수록 유정의 코끝과 가슴은 오히려 뜨거워졌고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차가워진 볼을 잠시 데우다 금세 식어버렸다.

가로등과 도로의 불빛들이 뿌옇게 흐려졌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바람이 유정의 얼굴을, 옷깃 속을 파고 들 때마다 유정은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정류장.JPG

- 계속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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