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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씨앗 Sep 10. 2022

<엄마 일기> 목욕탕은 노래방이 아닙니다.

부제: 노래를 부르는 딸이 부러운 엄마


<엄마일기> 엄마가 된 딸이 쓰는 엄마의 일기. 아이를 키우며 엄마로써 느끼는 감정과 일상을 기록합니다.


코로나로 서로 조심하다 보니 오랫동안 지인들과의 소통도 뜸했던 것 같다.

모처럼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시간이 남아 딸아이의 친구 엄마이자 고향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바쁘세요? 커피 한 잔 할까 해서요?"

"커피? 어디서? 내가 지금 오이피클을 만들고 있어서.. 혹시 괜찮은데 우리 집으로 올래?


가까운 동네 마실이지만 기분도 낼 겸 세수하고 쿠션 좀 바르고 커피를 내려 언니의 집으로 향했다.

"시골집에서 오이를 가져왔는데 누구 주긴 못생겼고, 혼자 먹긴 많고 해서 오이피클 만들고 있었지"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늘 그렇듯이 아이들 이야기로 넘어갔다.


"우리 집 수도세가 장난이 아니야. 딸내미가 씻으러 들어가면 나오질 않아.. 욕실에서 계속 노래 부르면서 씻어. 아들도 목욕탕 들어가서 노래 부르고... "


"왜 다들 목욕탕에서 노래를 부르는지 모르겠어요. 우리 딸도 그렇고, 남편도 가끔 노래 불러서 위아래층 시끄럽다고 못하게 하는데... 아휴..."


"맞아. 우리 남편도 가끔 샤워하다가 노래 부르는데 나는 도통 노래가 안 나오네... 나는 우리 딸이 제일 부러워~ 나도 콧노래가 절로 나왔으면 좋겠는데.. 엄마만 걱정이지. 우리 딸은 걱정이 없어~"


"하긴 요즘 힘드니 노래가 안 나오긴 하죠. 저도 그래요. 아, 아니다. 저는 요즘 거의 매일 노래를 달고 살았던 거 같아요"


"진짜? 요즘 노래가 나와? 뭐 좋은 일 있어?"


언니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봤다.


"전 매일 노래 불러요. '너무 힘들어요~' 다음 가사도 모르고 가수도 모르는데... 이 노래가 계속 입에서 흘러나오는데.. 부르다 보면 그 노래 부르는 게 웃기기도 해서 혼자 웃다가 막 그래요."  



정말 그랬다. 언젠가부터 몸이 무겁고 저녁이 되면 정신이 맑아지는 대신 땅으로 꺼질듯한 피곤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하지만 저녁엔 할 일들이 항상 쌓여있었다. 그러다 정말 몸이 쓰러질 듯 힘들어지면 신세 한탄하듯 한바탕 '너무 힘들어요 송'을 외치며 가족들에게 측은한 눈길로 도움을 요청하곤 했던 거 같다.

잠시 잠깐은 힘들지 않아도 노래가 나올 정도로 노래가 입에 붙어서 언젠가부터 '힘들어요'노래를 자제했던 거 같다. 예전엔 힘들어도 힘들다고 일기장에 썼지. 누군가에게 힘들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런 사람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어릴 땐 무조건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하며 혼자 울었지만 언젠가부터 힘들면 힘들다. 무서우면 무섭다. 싫은 건 싫다. 불편하다고 내 의견을 조금씩 얘기하고 있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무도 모른다. 힘들어도 참고 일해도 힘든 줄 모른다. 무서워도 참는데 안무서운 줄 안다. 정말 정말 싫은데 참고하는 건데 그래도 몰라줘서 싫었던 것 같다.


 엄마로 열심히 밥하고 살림을 하고 정보도 모아서 아이들 뒷바라지했지만 아이들은 그저 당연한 일로 생각하곤 한다. 나가서 일하는 게 아니니깐 돈을 벌어오는 거 아니니깐 집안에서 살림하는 거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

'억울하면 나가서 일하던지...' 하면 다시 깨갱한다.

나가서 일하면 '아이들'은 누가 케어를 한단 말인가. 그럼 내가 밖에서 일을 시작하면 나는 가사와 육아의 업무를 제외시켜줄 것인가? 아니지 않나? 억울하니 나가서 일하면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나는 나대로 힘들게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저 눌러앉았던 것 같다.


 "부모니까..." "자식이니까.."

하지만 세상에 어떤 희생도 노력도 당연한 건 없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노력하는 것은 단지 부모라서가 아니라... 내 아이를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이다.

"엄마도 사람이라 힘들다.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어. 그러니깐 너도 엄마 좀 조금만 도와줄래?"


나는 아이들에게도 하소연하고 징징대는 엄마다. 엄마라고 강철은 아니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자기는 슈퍼맨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엄마는 사람이라고 얘기한다.

엄마인 나는 평범한 보통 사람이다.

'슈퍼우먼'이 아니라 사람이라서 사소한 일에도 슬프고, 화나고, 가끔은 혼자 놀고 싶기도 하고, 나를 위해 하고 싶은 것들도 많다. 하지만 엄마라서 어쩔 수 없이 하지만 하기 싫어도 하는 것들도 많다. 그런 것들을 참고 내가 할 일을 하나씩 해나갈 때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나이가 한 살씩 먹는다고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는 거 같지는 않다. 멋진 어른, 진짜 어른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그냥 시간이 가는 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너무 힘들어요~'라고 노래를 부르지만 나는 즐겁다. 노동이나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건 사실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또 다른 삶의 즐거움들은 많기 때문이다.



엄마인 나도 즐겁게 살고 싶다. 일상에서 콧노래가 절로 나왔으면 좋겠다. 나를 위해 나만을 위해 하루 30분이라도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걸 찾아보려고 한다. 힘들다는 노래말고, 즐거운 노래를 불러보자.


누군가는 내가 그렇게 말하면 팔자 좋은 여자의 편한 소리라 비웃을지도 모른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상황이 있고 형편이 있다. 당장 여건이 안될 수도 있다. 그리고 서로가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게 때문에 무엇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의 가치는 그들의 가치와 다르다. 내가 그들의 가치를 하찮게 보지 않듯이.. 사람들도 내가 선택한 나의 가치를 하찮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2022.6.16



오래전 써놨던 일기를 다시 보며 그때를 떠올려본다.

나중에 알게 된 '너무 힘들어요'는 휘성의 안 되나요 첫 소절이었다.




<안 되나요>

너무 힘들어요......
안 되나요 나를 사랑하면 (엄마 도와주면)
조금 내 마음을 알아주면 안 돼요~~

(엄마 마음 좀 알아주면 안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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