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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씨앗 Sep 20. 2022

<마음일기> 가족들 생각하며 버텼어요

포항 지하주차장 생존자를 생각하며...



우연히 기사를 보다가 포항 지하주차장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처음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차 빼라는 방송을 듣고 지하주차장에 내려갔을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순식간에 물이 들어찰 줄은 몰랐을 거다.


언젠가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가족끼리 여행을 가다가 먼바다에서 해일이 오는 게 보였다.

남편에게 얘기해 해일을 뒤로하고 방향을 돌려 집 쪽으로 달렸다.

우리 가족은 집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아파트 지하를 통해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엉뚱한 꿈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찌 됐든 꿈에서 나는 해일은 피했지만, 지하주차장엔 어른 무릎까지 물이 찬 것을 보고 무섭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태풍이야기를 하다가 엄마와 사건 이야기를 나눴다.

'안됐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던 나와 엄마는 사실 기대하지 않았다.

물이 순식간에 차올라서 입구까지 다 막아버렸는데...

바로 구조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물 빼는 데 시간이 걸릴 거라는데...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과연 무사할 것인가?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었지만 포기하고 있었는데...

다음날 기사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나왔다.

39살의 남성은 아이들과 가족을 생각하며 13시간을 매달려 버텼다고 했다.

50대 여성은 기적적으로 생존했지만 그녀의 중학생 아들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누군가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서 기뻤지만, 한 편으로는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보며 눈물이 났다.

내 가족도 아닌데, 내가 아는 사람도 아닌데 눈물이 나왔다.

살아나 줘서 고마웠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버티는데, 나도 버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주차장에 물이 순식간에 들이쳤듯이 내 인생에도 불행은 갑자기 찾아왔다. 39살을 조용히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마흔이 되기도 전에 '암'진단을 받았다. 39살.. 많이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니 아직 창창한 나이였다.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나는 살 것이다. 시키는 대로 수술하고, 추가 치료도 받고, 머리카락을 잘라야 한다면 자르고, 가슴도 다 절제한다고 해도 그것들이 나의 생존과 바로 직결되는 일은 아니다.


  죽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치료가 수술이 무섭다는 건 엄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수술이 두려운 거다. 죽는다고 했으면 수술해서 살고 싶었을 것이다. 엄청난 자연재해와 생존의 기로 앞에 나는 그래도 살 가능성이 아주 높은 환자였다. 나에겐 없었으면 더 좋았을 일이고, 더 늦었으면 하고 좋았겠지만 이미 와버렸다.  버티고 버텨서 악성종양 다 떼어내고 가족들과 오래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카락 좀 없으면 어때... 어차피 다시 자라니까.. 괜찮아"

"가슴 좀 짝짝이면 어때... 건강하게 사는 게 중요하지."

"수술 뭐 별거 아니야. 수술만 하면 괜찮을 거야."


그동안 상처되고 듣기 싫었던 말은 사실 맞는 말이었다.

나 혼자 아프다고, 무섭다고, 힘들다고 징징대고 싶었던 건 아닐까?

 저렇게 삶의 기로에서 가족을 생각하며 버텨서 살아 나오는 사람도 있는데 겨우 수술 하나로 우울해할 필요 없다. 검사도 무섭고, 수술 후 회복기간도 무섭고, 그 뒤에 부수적으로 따라붙을 여러 치료들도 무섭지만 어찌 됐든 지나고 나면 큰 훈장처럼 남아서 좀 더 크고 어른스러운 내가 될 거라 생각이 든다.



2022.9.8


포항 주차장 생존자에 대한 기사를 보며

살아있는 내가 더 열심히 살아야 되는 이유를 새삼 다시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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