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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남들 앞에서 말하기가 어려운 아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by 연두씨앗 김세정

책이름 :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책정보 : 조던 스콧 글/ 시드니 스미스 그림 / 김지은 옮김

나는 눈을 떠요

그리고 소리를 들어요

하지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요

입안에 엉켜버린 소나무의 스-

목구멍에 붙어버린 까마귀의 끄-

입술을 지워버린 달의 드- 때문에

나는 웅얼거릴 수밖에 없어요

아이들은 나의 이상한 소리와

이상한 표정과 겁먹은 마음만을 봐요

아빠는 말했어요.

내가 강물처럼 말한다고

나도 때론 아무 걱정 없이 말하고 싶어요

우아하고, 세련되고, 유창하게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건 내가 아니에요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책을 읽고, 연두씨앗 요약



우울해 보이는 표지를 보고 잠시 망설였다.

예쁜 그림(?)을 좋아하는 나는 책을 훑어본 뒤 바로 읽기 시작했다.

그림책 수업을 받고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그림을 조금 더 꼼꼼히 본다는 것이다.

동화책 나는 '말이 없는 아이'다. 말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아이다.

읽다 보니 나의 어린 시절이 문득 떠올라 더 집중하게 됐던 것 같다.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비슷하게 일어나 밥을 먹고 학교에 간다.

하지만 학교에 오면 아이의 '공포'가 시작된다.

반에는 아이들이 많이 있지만 그림 속의 친구들에게는 표정이 없다. 얼굴이 없다.

왜 없을지 생각해 본다. 소년은 친구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친구들의 얼굴을 알 수가 없다. 왜 소년은 친구들의 얼굴을 볼 수 없을까? 아마 두려워서일 것이다.

소년은 친구들이 자신의 이상한 소리와 이상한 표정과 겁먹은 모습만 바라볼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친구들 얼굴을 바라볼 수 없다.


소년은 잔뜩 시무룩해져서 아빠와 함께 하교를 한다. 아빠는 소년의 마음을 알아채고 근처의 강으로 함께 간다. 둘은 아무 말없이 강을 함께 걷는다. 강은 소년을 편하게 해 준다. 강은 소년의 목소리에 관심이 없고, 소년의 표정에도 관심이 없다. 강은 그저 흘러갈 뿐이다.

소년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강에서 치유받는다. 그리고 아빠는 소년이 강물처럼 말한다고 얘기해 준다.

소년은 강물을 생각한다.

'물거품을 일으키고, 굽이치고, 소용돌이치고, 부딪히는 강물' 그리고 그 빠른 물살 너머의 잔잔한 강물과 햇빛에 반짝거리는 강물을 생각한다.

"강물도 더듬거릴 때가 있어요. 내가 그런 것처럼요."

나는 어릴 때 발표울렁증이 있었다. 말을 하려고 준비를 하면 심장이 콩닥거리며 세차게 뛰고, 이어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목소리가 흐느끼듯 떨리는 현상이 있는 것이었다. 익숙해지면 괜찮아지지만 매학년 새 학기 때마다 친구들에게 그런 나의 '특이함'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꽤 고된 일이었다.

그때 내가 이런 책을 읽었다면 나는 친구들에게 훨씬 쉽게 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는 다양한 생각과 의견이 들어있고, 그것을 친구들에게 잘 말하고 싶은데, 생각과는 달리 말이 어수룩하게 나와버린다. 글자를 띄어 넘어 바로 읽어버리거나, 글자를 합쳐서 내 멋대로 발음을 해 버리는 경우도 종종이었다. 나는 발표를 하지 않는 것이 나의 실수를 줄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말을 아끼는 아이가 된 적이 있었다.


그때 내게 도움이 됐던 건, 친구들의 이해였다. 내가 약간 '발표 울렁증'이 있으니 그거에 대해 알아두고 너무 놀란 반응이나 당황해하지 말아 달라고 했었다. 소년이 생각하듯이 친구들의 반응이 소년을 제일 힘들게 했듯이 친구들의 반응이 나를 제일 힘들게 했다.

일단 내가 발표를 할 때 친구들은 모두 책상 위의 책을 보거나, 칠판을 보고 있다. 하지만 내가 입을 여는 동시에 모든 아이의 시선은 말을 하고 있는 나에게로 집중된다. 긴장해서 내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하면 교실 안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다. 똑딱이는 시계소리도 작아지고, 연필로 끄적이며 낙서하던 소리도, 책장을 무심히 넘기는 소리, 책상바닥을 실내화로 툭툭 치던 모든 소리가 사라진다. 교실에는 오직 나의 목소리와 친구들의 숨죽임만 남는다. 그중 호기심이 많은 아이는 내 얼굴을 바라본다. 내가 울고 있는 건지 확인하는 것이다. 목소리는 분명 떨리고 있고, 울음이 섞여있으니 몇몇 아이들은 걱정스레 쉬는 시간에 나에게 달려온다. 아이들에게 나에게는 '울렁증'이 있다는 얘기를 하면 그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다음 내 발표 시간에는 가만히 기다려준다. 그들은 내가 울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긴장하지 않는다. 다만 떨고 있는 나를 위해 교실을 더 조용하게 배려해 준다. 물론 나는 그 배려가 달갑지 않다. 조금 더 소란하게 들어줬으면 하지만 친구들은 조용했다.

처음부터 내가 울렁증이 있던 아이는 아이였다. 나는 초등 저학년 시절에 '발표왕'이라고 할 만큼 앞에 나서서 발표를 잘하는 아이였다. 그랬던 내가 왜 '울렁증'이 생겼던 걸까? 그건 '이사'와 '전학'을 통한 새로운 친구들과 만나면서 생겼던 것 같다. '시골에서 도시로 전학 온 아이' 나는 아이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시골에서 친구도 많고 공부도 잘했던 아이였기에 도시에서도 뒤처지고 싶지 않았다. 그게 내 '울렁증'의 시작이었다. 잘하고 싶었던 마음은 나를 더욱 옥죄였고,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물론 지금도 나는 울렁증이 있다. 물론 그게 일상에 방해가 되거나 사람들이 의아할 정도로 잘 티가 나진 않지만 말이다. 아직도 나는 소년처럼 강물처럼 말한다. 때로는 휘몰아치고, 때로는 꺾어지고, 때로는 부딪혀 튀어 오르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 나는 소년보다는 어른이니까. 내가 조금 말이 서툴러도 이해할 수 있다. 말을 조금 더 천천히 얘기하면 된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나는 나의 이런 어린 시절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다. 나는 아무에게도 도움받지 못했지만 다른 아이들은 어른들의 도움으로 '말하기 어려움'을 잘 극복했으면 좋겠다.

강물처럼 말하는 아이들에게, 강물처럼 말하는 아줌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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