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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그림자 Nov 19. 2023

ᴇᴘ. 39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좋아하는 시인]



미소 짓고 손을 건네는 행위 그 본질은 무엇일까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순간에도 홀로 고립되었다고 느낀 적은 없는지 사람이 사람으로부터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듯 첫 번째 심문에서 피고에게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는 엄정한 법정에 끌려 나온 듯 과연 내가 타인의 속마음을 알 수 있을까


책을 펼쳤을 때 활자나 삽화가 아닌 그 내용에 진정 공감하듯이 과연 내가 사람들의 진심을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럴듯하게 얼버무리면서 정작 답변은 회피하고 손해라도 입을까 겁에 질려 솔직한 고백 대신 번지르르 농담이나 늘어놓는 주제에 참다운 우정이 존재하지 않는 냉혹한 세상을 탓하기만 할 뿐 우정도 사랑처럼 함께 만들어야 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혹독한 역경 속에서 발맞춰 걷기를 단념한 이들도 있으련만 벗이 저지른 과오 중에 나로 인한 잘못은 없는 걸까 함께 탄식하고 충고를 해주는 이들도 있으련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도 전에 얼마나 많은 눈물이 메말라버렸을까 천년만년 번영을 기약하며 공공의 의무를 강조하는 동안 단 일 분이면 충분할 순간의 눈물을 지나쳐버리진 않았는지


다른 이의 소중한 노력을 하찮게 여긴 적은 없었는지 탁자 위에 놓인 유리컵 따위엔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법 누군가의 부주의로 인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기 전까지는 사람에게 품고 있는 사람의 마음 과연 생각처럼 단순하고 명확한 것이려나


_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나에게 던진 질문>


쉼보르스카의 글을 읽다 보면 마음 한구석에 박혀 있던 모난 돌멩이가 둥글어지는 느낌이다 나에게 질문을 던지며 나를 돌아보게 된다 출장에 챙겨 온 쉼보르스카의 책들은 언제 어디서 또 읽어도 새로운 느낌이 들어서 좋다


나는 늘 순간의 소중함을 운운하지만 모든 것을 항상 기억하며 살아가지 못한다는 걸 인정한다 읽거나 쓰고 생각할 때가 아니면 순간순간 망각하기 십상이니 당면한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서 당연한 진실을 계속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인생에 두 번은 없다지만 배움에 두 번은 있다 아니 그것으로 끝낼 수 없다 세 번 네 번 다섯 번 무한히 반복해도 부족하다 아무리 들려준들 또 망각하겠지만 그럼 다시 들려줘야지 들을 때만이라도 똑똑히 기억하라고 그 순간이라도 감사함을 아는 사람으로 지혜롭고 유연한 삶의 대응 방식을 배워가며 살아가길 희망하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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