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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그림자 Nov 17. 2023

ᴇᴘ. 38 모순의 반복

[슬픔을 해독하는 능력]



글이 잘 써지는 날엔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 그런 날이 자주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리운 날엔 위로받기 위해 전시를 보러 간다 그러다 가끔 그곳에 온 사람들을 둘러볼 때가 있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눈빛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사색에 잠긴 사람들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 울고 싶은 날엔 꼭 찾아보는 영화가 있는데 어김없이 매번 같은 장면에서 눈물이 차오르는 게 놀랍다 아픈 기억은 왜 더 오래도록 우리 안에 남아 있는 것일까 가끔 길을 걷다가 우연히 그날의 내가 보일 때가 있다 그럼 급히 아무도 없는 곳으로 대피해야만 한다 당장 눈물을 쏟아낼 테니


나는 우연한 만남에 대해 자주 상상한다 하지만 알맞은 우연이 일어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기에 실상 큰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실은 지금껏 많은 것들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왔다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 그것은 결국 상처라는 진부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보다야 슬픔이나 허무함 권태 같은 감정들을 다독이며 살아가는 일이 더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는 건 여전히 변함없다


내 안에 있는 감정들을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날이면 알 수 없는 두통이 찾아오기도 한다 지금껏 많은 상처들이 두통처럼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갔지만 어쩌면 지금도 이 순간에도 존재하고 있음에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는 중은 아닐는지 어떠한 아픔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었다 그러나 그때의 마음가짐들은 지금 어디로 사라졌나 통증이 지나가면 상처가 잊히듯이 내 안의 다짐들도 자연스레 무뎌지나 보다


슬픔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유는 바로 그런 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들을 자꾸 망각하니까 분명 충분히 아팠고 많이 깨달았고 그로 인해 굳은 다짐을 해왔건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다시 원점이다 삶은 모순의 반복이다 그렇지만 모순의 반복이기에 다시 사랑하고 다시 일어서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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