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목(端木) 같은 나무가 되고파]
아주아주 어렸을 적엔 누가 물으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다가 더 좋아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물론 지금도 햇살에 부서지는 파도를 사랑하지만 언젠가부터 바다보다 산이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서인가 싶기도 했지만 생각해 보니 20대가 막 넘어서였나 이모네 집에 걸려 있는 배병우 작가님의 소나무 작품의 대작을 본 이후에 산에 대한 특히 나무에 대한 아름다움에 크게 매료되지 않았나 싶다
전에 읽었던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라는 책에서 인상 깊은 챕터의 제목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나무는 빛이 디자인하고 바람이 다듬는다 빛과 바람 너무나 멋진 말이라 마음속에 각인되어 잊히지가 않는다 나무를 보다 보면 세상 가장 깊은 내면의 고독을 떠안고 나에게 위로를 건네주기도 하고 탐스러운 잎사귀들과 꽃들이 마중 나와 나를 반겨주기도 하니깐 계절을 따라 차곡차곡 춘재와 추재가 겹쳐지면서 나이테라고 하는 나뭇결이 생겨난다 아름다운 결일수록 나무의 수많은 방황의 흔적들이 쌓인 걸 테고 나뭇가지들이 일관된 방향 없이 얽히고설키는 그런 나무의 삶이 사람의 삶과 무릇 다르지 않구나 느껴진다 나무는 다른 나무의 처지를 비교하지 않고 온전히 자기답게 사는 것에 집중한다 그래서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는 나의 생각은 여전히 확고하다
대학생 때 토플을 위해 한참 강남역에 있는 어학원을 열심히 다녔던 때가 있었다 집에 가려고 버스 정류장 앞에 서있는데 나무에 스테이플러로 덕지덕지 학원 전단지를 박아놓은 것이 아닌가 나무들이 안쓰럽고 마음이 아팠다 생명이 있는 것들인데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스테이플러를 박은 그 학원들이 괘씸해 절대 이 학원들은 가지 않을 거라 씩씩대며 근처에 있는 전단지들을 모조리 떼어냈던 기억이다 덕분에 손톱은 다 갈라졌지만
멀리서 보면 큰 덩어리로 보이는 산이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볼수록 소박하고 익숙한 자연으로 따뜻함이 가득하다 나도 나무처럼 강인하고 아름답게 성장하고 싶다 앞으로도 수없이 닥칠 작고 큰 고뇌와 두려움을 속에서도 나무의 뿌리처럼 강인하고 우직하게 중심을 잃지 않고 깊게 뿌리내리고 싶고 단목(端木) 같은 나무가 되고 싶다
오래전부터 나의 버킷리스트에 등산이 있어 정보 좀 알 수 있을까 카페를 찾아 가입을 했는데 분위기가 이상해 바로 탈퇴했다는 웃픈 이야기도 ㅋㅋ 아무튼 책을 읽다 나무라는 단어가 나와 뜬금없이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게 이 글의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