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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six Jun 10. 2023

Pacifico Como

2023 이탈리아 여행기 5 - 03232023

이탈리아엔 아름다운 자연도 있다. 평화로운 꼬모 호수에서의 하루.

# 왜 좋은 건 다 다른 나라에만 있는 것인가.

해외여행을 다닐 때면 이런 얘기를 별 소득 없이 내뱉게 된다. 실상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것들을 만날 때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탈리아를 다니면서도 좋은 건 여기에 다 모여 있구나란 부러움 섞인 말과 생각을 떠올렸다. 이곳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현지인들에겐 익숙한 일상의 풍경일 뿐일 텐데 말이다.

이탈리아로 떠나오기 전 내가 가진 이탈리아에 대한 생각은 유적과 유물로 가득 찬 나라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같은 곳일 거라는 막연한 추측들 뿐이었다. 하지만, 꼬모 호수 여행을 시작으로 이런 편견은 깨지기 시작했는데, 바로 이 나라가 가진 아름다운 자연환경들 때문이었다. 밀라노에서 기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꼬모 호수는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빙하호로 면적이 146㎢에 달하는 이탈리아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라고 하며, 고가의 별장과 주택이 들어서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할리우드 스타나 글로벌 대기업의 CEO 등이 이곳에 집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밀라노 근처 갈만한 곳이 없을까 검색하던 중에 우연히 꼬모 호수를 알게 되어 찾아갔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멋진 풍광에 감탄을 연발하며 돌아다닌 곳이 되어버렸다. 


# 평화로운 호숫가 산책길 자전거 라이딩

밀라노에서 아침 기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걸려 Como S Giovanni 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내려 미리 인터넷으로 찾아 놓은 자전거 렌털샵으로 향했는데 웬걸, 문이 잠겨 있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게 문에 달려 있는 쪽지에 전화번호가 적혀 있길래 전화를 했더니 전화도 받지 않아 불안한 마음이 약간씩 엄습해 왔었지만, 기다린 지 채 5분 되지 않아 직원이 도착했다. 출근한 직원과 함께 자전거를 고르고, 요금을 지불한 후 자전거 렌털을 완료했다.

한국에선 로드 바이크나 혹은 MTB 같은 타입의 자전거가 많지만, 유럽이나 다른 나라의 경우 앞쪽에 바구니를 달았거나 달아야 할 것만 같은 평범한 클래식 타입이 많다. 우리가 빌린 자전거도 그런 타입이었는데, 디자인이 매우 세련되서 차체의 곡선과 도색이 한눈에 마음에 들었고, 생각보다 속도가 잘 나와서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탈 수 있었다. 우리는 렌털샵 직원이 알려준 대로 상대적으로 라이딩이 수월하다는 꼬모 호수의 왼쪽 편 산책로로 호숫가를 돌아보기로 했다.

우리가 선택한 꼬모 호수 라이딩 코스 방향
무척이나 화창했던 날씨와 꼬모 호수 산책로, 우리가 빌린 자전거와 빨간 색깔이 예뻤던 헬맷.

오른쪽으로 호수를 끼고 인도와 차로, 산책로를 번갈아가며 페달을 밟으며 달렸다. 달리는 내내 보이던 오른쪽의 넓디넓은 호수의 전경과 왼쪽의 멋지고 예쁜 건물들, 그리고 이어지는 산등성이들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권력층, 귀족, 부유층들의 주거지나 별장이 많기로 유명한 지역답게 매우 호화스러운 빌라들 또한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꼬모 호수 주변의 호화빌라들 또한 이 곳의 유명 관광지로 꼽힌다.)

그렇게 두 시간 여를 달리고 나니 슬슬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구글맵을 열어 식당을 검색해 보니 생각보다 식당이 별로 없었고, 있어도 점심 영업을 하는 곳도 찾기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근처 식당들은 저녁 영업을 주로 하는 듯했다. 세 군데 정도를 찾아갔으나 허탕을 치고 나니 허기가 더욱 몰려오면서 페달을 밟는 다리에도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자칫 잘못하면 처음 라이딩을 시작한 기차역 부근까지 돌아가야 할 판이었다. 그러다, 너무나도 우연히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고,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해 보니 레스토랑이 맞았다. 유레카!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쓱 둘러보니 대부분 주변의 주민들 혹은 근처에서 일하는 사람들 같이 보였고, 주인, 서버와 다들 알고 지내는 사이 같았다. 물론, 우리처럼 식당을 찾아 헤매다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이곳을 찾아 들어온 여행객이 분명한 손님들도 있었다.(식당에서 주민과 여행객을 구분하기 위해선 주문할 때 어떤 언어를 쓰는가를 보면 된다. 영어로 주문을 시도하면 거의 백 퍼센트 여행객. 우리같이 아예 생김새와 피부색도 다른데 영어까지 쓰면 그건 말할 것도 없다.)

우리가 주문한 건 소고기 요리(Roast beef)와 파스타 두 가지였는데, 애피타이저 격으로 식전빵 내지 디저트류 네 가지를 내어주었는데 메인 음식을 먹기 전 입맛을 돋우는 데 제격이었다. 주문한 메뉴가 나오고 고대하던 점심식사를 시작했다. 소고기 요리의 경우 Roast beef라고 해서 불에 익힌 그런 스타일을 상상했었는데 약간 프로슈토와 비슷한? 스테이크로 치면 거의 레어에 가까운 느낌의 요리여서 살짝 당황했었으나, 비주얼과 달리 식감과 풍미가 나쁘지 않았어서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이 식당도 유명한 관광 안내 책자나 인터넷 사이트 등에 추천되어 있는 곳이 아닌 그야말로 동네 식당이라 할 수 있는 평범한 곳임에도 음식의 퀄리티나 맛이 나쁘지 않았다. 이때부터 이탈리아 음식과 식당들에 대해 Respect를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어디를 가더라도 기본을 해내는 이들의 식당 퀄리티에 대해 감탄과 존경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나는 길 윗 쪽에 자리 잡고 있던 마을의 모습. 평범함 주거지일 뿐인데 아기자기한 풍경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특히,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벽면의 색깔들이 인상적이었다. 
로스트 비프와 파스타, 그리고 에피타이저격으로 나온 스위트류들.

# 진정한 여행의 백미, 여유와 평화 

점심을 먹고 난 후, 출발지점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올 때와 달리 상대적으로 오르막이 많은 코스여서 페달링을 하다 보면 약간 다리가 후들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뭐 그리 서두를 필요가 있는가. 우리는 중간중간 나오는 뷰포인트에서 사진도 찍고, 잠시 쉬기도 하면서 쉬엄쉬엄 길을 달렸다. 돌아가는 길은 올 때와 같이 평화로운 호반의 전경이 함께 했고, 이 거대한 호수의 시작점인 멀리 보이는 설산의 풍경을 보며 감회에 젖기도 했다. 사실, 꼬모 호수를 즐기는 방법은 자전거나 산책 외에 크루즈나 요트를 타고 호수를 탐방하는 것도 유명하다. 넓디넓은 호수를 바라보며 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즐기는 것도 꽤 괜찮을 법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산업 중 세계적으로 유명한 업종이 요트산업이다. 전 세계의 고급 호화 요트 중 다수를 제작 판매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가 호숫가를 다니면서 자주 봤던 것 또한 수면을 활주로 삼아 떠오르는 경비행기들과 정박되어 있는 요트들이었다. 그렇게 정박된 요트들과 경비행기들의 여유롭고 또 여유로운 모습들을 보고 나니 서울의 바쁜 일상과 고민들로부터 멀리 떠나와 여행의 순간 속에 있는 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꼬모 호수 라이딩을 마치고 밀라노 중앙역으로 돌아와 저녁 기차를 타고 여정의 두 번째 도시 베로나로 향했다. 

정박해 있는 요트들의 모습과 저멀리 보이는 설산. 꼬모 호수의 시작이 아마도 저 멀리 보이는 설산의 빙하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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