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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six May 28. 2023

Ricco Minano 4.

2023 이탈리아 여행기 4.

모든 것이 걸작, 밀라노 두오모

#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의 산물, 고딕 양식

대성당을 만날 때마다 언급되는 건축 양식이 고딕 양식이다. 하늘로 솟구친 첨탑과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수직적인 디자인 등을 특징으로 하는 건축 양식으로 12세기 중반에서 14세기에 걸쳐 유럽 전역에서 나타난 중세의 건축 양식을 일컫는다. 수직적인 디자인이 의미하는 것은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나타내며, 이 덕분에 당시 동원 가능한 모든 기술을 가지고 끝까지 밀어붙인 결과물들이 유럽의 고딕 양식 대성당들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훨씬 더 높고 화려한 건물들을 지어 내는 지금에도 이 거대한 구조물들을 만날 때면 인간의 문명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된다. 이렇게 중세 시대 엄청났던 종교의 힘을 실감할 수 있는 반면, 당시 사회의 모든 자원을 집중시켰을 거라 쉽게 예상되는 건축 과정 속에서 희생되었을 평범한 사람들, 또 소외되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정치와 종교의 힘으로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걸작을 남겨놓았지만, 어찌 보면 민생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을 상징적인 구조물일 뿐이지 않을까 하는 상반된 생각과 감정이 느껴진다. 과연, 인간의 문화와 문명이 창조해 낸 위대한 유적과 유물들은 당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 3,159개의 조각상, 화려함의 끝판왕

밀라노 두오모는 1386년에 착공해서 거의 580년 만인 1965년에 완공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현대 건축에서 말하는 착공과 완공의 의미라기보다는 이 시간 동안 추가 건축과 개축이 계속 이어진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성당 전체에 산재해 있는 3천 개가 넘는 조각상들 또한 수백 년 동안 추가되어 지금의 모습에 이른 것이다. 오랜 기간 동안 건축과 재건축과 수정이 계속되다 보니 건축 양식 또한 로마네스크-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 등 많은 건축 양식들이 혼재되어 완성된 성당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통일성이 없다고도 하지만, 내가 볼 땐 오히려 이런 잡탕스런 특성이 더 많은 볼거리를 만들어내었고 화려함의 끝을 만들어냈다고 본다.

두오모의 구조를 알 수 있는 측면 벽체의 모습. 기본적인 고딕 양식에 르네상스, 바로크적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고, 수많은 조각들이 성당을 둘러싸고 있다.

점심 식사 이후 미리 예약해 둔 티켓을 가지고 두오모의 지붕으로 올라갔다. 아래에서는 짐작만 했던 지붕의 첨탑들은 저마다 화려한 위용을 뽐내고 있었고 첨탑의 끝엔 마치 두오모의 호위무사들인 양 각각의 인물 조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놀라운 건 첨탑 끝의 조각들이 모두 다 다른 생김새를 갖고 있다는 것. 두오모의 전체적인 구조를 살펴보면 하단부 위에 스테인드 글라스 아치를 포함한 벽체와 연결된 기둥, 그리고 기둥 위로 뻗은 첨탑, 첨탑과 첨탑 사이 지붕과 테라스로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면 각각의 기둥과 벽체에도 수많은 인물들(대부분 성인, 교황, 성자 등의 역사 속 인물들로 추정됨)의 조각이 새겨져 있고, 첨탑의 꼭대기까지 만들어져 있는 이 모든 인물 조각들이 서로 다른 표정과 포즈와 생김새를 갖고 있다.(조각뿐 아니라 스테인드 글라스의 그림 또한 디테일이 다 다르다.) 이런 점이 쾰른이나 세인트폴 같은 다른 나라의 고딕양식 대성당과 확연히 구분되는 차별성이었다. 물론, 580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함께 참여하였고, 각종 양식이 혼합되는 과정이 있었기에 이런 집착적인 디테일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오랜 세월과 많은 참여 인물 때문만은 아닌 것이 이후 여정에서 만나게 될 많은 성당들과 유적들 또한 어마무시한 디테일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이는 이탈리아가 가지는 특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고딕 양식이 가지는 첫 번째 인상은 웅장함과 위압감이다. 끝없이 솟은 기둥과 첨탑이 신에게 닿기를 바라는 인간의 염원을 담고 있다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시 교회의 엄중한 권위의 상징을 시현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통해 당대의 사람들에게 거대한 종교 권력의 힘을 과시하여 복종을 이끌어내기 위한 의도 또한 분명 존재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내가 밀라노 두오모를 보며 놀란 점은 웅장함과 위압감에다 엄청나게 세밀한 예술적 장식까지 추가하여 시각적 압도감을 몇 배 더 높여 놓았다는 것이다. 즉, 당대 최고의 건축 기술과 최고의 예술적 역량을 모두 동원한 당시 문화의 결정체가 바로 밀라노 두오모라는 걸작이다. 이런 위대한 건축물을 볼 때면 새삼 인간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절감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인간의 능력이 같은 인간과 삶의 터전인 자연을 해치는데 스스럼없이 활용되는 경우도 함께 떠올리게 된다.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신은 아담과 하와를 탄생시키는 순간에 인간이란 존재가 가지게 될 양면성과 복잡성을 알고 있었을까.  

화려한 장식과 조각으로 아름답다 못해 장엄한 광경의 두오모 첨탑들.

# 걸작의 완성. 성당의 내부.

두오모의 지붕 테라스에서 내려와 성당 내부로 향했다. 내부의 길이가 157m, 너비가 92m, 높이가 45m에 이른다고 하며 무려 4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라고 하니 그 규모의 거대함은 직접 가보지 않고서야 상상하기 어렵다. 지붕 테라스의 첨탑과 외벽 등과 마찬가지로 내부도 엄청나게 화려한 장식과 예술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조각 문양으로 이어진 천장의 장식과 거대한 기둥에 새겨진 인물들의 조각상, 그리고 벽체에 만들어져 있는 거대한 아치형의 스테인드 글라스까지. 하나하나가 다 완벽한 작품들이었고, 그야말로 이 모든 것들이 한데 모인 시대를 초월하는 걸작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이 엄청나게 많은 거대한 대리석 기둥들이 15층 건물 높이까지 뻗어 있고 그 기둥의 끝엔 조각으로 문양을 만들어놓은 천장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양쪽 측면에는 각종 성화와 성상, 성인, 교황의 동상들이 세워져 있고, 각기 다른 그림으로 채워진 거대한 아치 속 스테인드 글라스가 벽면을 채우고 있으며 정면엔 거대한 위용의 제대와 독서대가 신자석을 바라보고 있다. 바닥엔 아름답고 화려한 모자이크 장식까지, 어디 하나 눈길이 가지 않는 곳이 없다. 밀라노 사람들이 이 두오모를 왜 밀라노의 혼이라 부르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밀라노라는 도시가 이탈리아 전체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꼽힌다고 하는데, 이토록 화려하고 거대한 밀라노 두오모가 바로 그 부유함의 상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두오모를 빠져나왔다.

거대하고 화려한 독서대.
웅장한 위용의 제대. 사진 오른쪽 아래에 찍힌 사람의 크기와 비교하면 그 웅장함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가능하다.
내부로 빛을 들이기 위해 만들었다는 거대하고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 가죽이 벗겨지는 처형을 당해 순교한 바르톨로메오 성인의 조각상.
높이 솟은 기둥에 연결된 천장의 장식들. 그리고 길게 뻗은 복도와 높은 층고, 바닥의 모자이크 장식 등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밀라노 두오모 내부의 경관.

# 이틀 만에 아이스아메리카노와 한식을....

전날 밀라노 공항에 도착한 후 본격적인 관광은 첫날에 불과함에도 밀라노 두오모까지 보고 나오니 피곤과 허기와 갈증이 마구 몰려왔다. 오랜 비행으로 인한 여독과 시차와 함께 엄청난 것들을 보고 느끼며 발생한 감정 소모도 한 몫하는 듯했다. 그와 함께, 앞으로 이탈리아 어디에서도 스타벅스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만나기 어려울 것이기에 이번에 먹어놓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는 불안감이 마음속에서 올라왔다. 아침에 스타벅스 매장에서 생각했던 일종의 반항심? 따윈 쉽게 접어 놓은 후 자연스레 스타벅스 매장으로 향했고, 거기서 맛본 아이스아메리카노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반갑게 달디 단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섭취하고는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화룡점정을 찍는 기분으로 저녁식사는 한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그렇게 소주와 함께 한식으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니 피곤은 사라지고 새로운 에너지가 솟아올라 두오모 광장의 야경까지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괴력을 발휘했다.

밀라노 스타벅스에서 마셨던 아이스아메리카노. 이것은 이후 절대 맛볼 수 없는 맛으로 남았다. 그리고, 제육과 부대찌개로 마무리한 한식 저녁식사.
아름다운 밀라노 두오모의 야경. 첨탑 가장 높은 곳에 그 유명한 마돈니나 조각이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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