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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Apr 10. 2022

수유, 그 고난의 행군 - part 2

노산 일기


젖몸살의 기억 1]

젖몸살의 고통은 대단하다. 기억은 시간의 순서로 배열되는 것이겠지만 괴로운 고통이 오래 지속되는 것이 가히 출산의 고통을 잊을만 했다.

첫 젖몸살은 조리원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호기롭게 유축수유가 아닌 직접수유를 하겠다고 선언한 나는, 치밀 유방이 풀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하루 동안 유축을 하지 않았고, 배고플지언정 힘을 쏟지는 않겠다는 입짧은 사랑이의 콜라보로 그 결과 젖이 아주 막혀버렸다. 조리원 원장과 마사지 관리사 두 분께서 나의 젖을 빨래 묵은 때 벗기는 느낌으로 마구 치대어 댔지만 막힌 젖이 완벽히 뚫어지지는 않았고,

"원장님... 혹시 지금 피 나오는 거 아닌가요..."

고통을 참다못한 나의 유언 같은 비통한 질문에 원장은 깔깔 웃기만 하셨다.

잠시 뒤 몸살기운이 올라오고 두통이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이것이 젖몸살이구나 싶어 급히 조리원 근처의 병원을 찾았다.

맙소사, 남자 의사 선생님이다.

가슴도 초음파를 찍는지는 처음 알았다. 젖가슴을 드러낸 채 상담이 진행된다. 선생님.. 가슴 시려요...

"치밀 유방인데 조직이 안풀렸네. 이 부위에 염증 소견이 있고. 마사지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아, 관리사분들께 마사지 받기는 했어요."

"여자들은 힘이 딸려서 안 돼요. 남편이 도와주면 직빵인데. 남편 교육 시켜줄 수 있는데 남편 못와요?"

"지금은 회사에... 제가 교육 받으면 안 되나요?"

...

뭔가 미심쩍은 분위기로 마사지 방법을 교육 받고 퇴근한 남편에게 마사지 방법을 일러 주었다. 마사지 방법이라곤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으나 아무래도 남자들 아구힘이 좋긴 하다.

불쌍한 내 젖.

젖몸살의 기억 2]

모유 수유 기간 내내 3시간마다 유축을 한다는 것은 웬만한 의지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인 듯 싶다. 출산 후 두 달이 되어가자 나도 꾀가 난다. 4시간에 한 번, 5시간에 한 번. 그러다 6시간에 한 번 짜기 시작한 어느 날에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가슴은 탱탱 부어 터질 듯 한데, 젖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다.

이런, 막혔다.

손가락이 휠 정도로 주무르고, 뜨거운 타올로 찜질도 해 보고 별 방법을 다 써봤지만 젖이 나오지 않는다. 조리원 동기께서 동네에 가슴마사지센터인 아이통곡이 있다는 얘기를 한 것이 떠올라 급히 전화를 해 보았다. 한밤중도 가능하니 젖량이 줄어들기 전에 빨리 오라고 한다. 남편에게 아기를 맡기고 부랴부랴 한 밤중의 외출을 시도했다.

관리사 또한 이런 저런 방법을 써보더니 젖이 나오지 않자,

"하.. 내가 이 방법까지는 안 쓰는데..."

깔때기가 달린 주사바늘이 내 유두를 관통하자 중동의 유전 마냥 고여있던 젖이 콸콸 쏟아져 나온다. 유축을 또 다시 제대로 해 주지 않으면 바늘로 길을 뚫어놓은 곳부터 다시 막힐 것이라는 공포스러운 조언을 뒤로한 채 집으로 향했다.

모유수유가 분유수유 대비 영양학적인 여러 장점을 포함, 경제적인 장점도 있다는데, 마사지 돈도 돈이고 가슴은 너덜너덜해 지고. 정말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목표를 길게 잡은 것도 아니고 단순히 유동식을 시작한다는 6개월 정도까지만 모유 수유를 하고 싶었을 뿐인데 이것이 이 정도로 어려운 일이라니. 양육에 희생이 들어가면 보상심리가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너를 위한, 그리고 나를 위한 양육을 하는 것이지 너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나를 희생하지는 않겠다는 철칙 앞에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모유 수유에 대한 내 계획이 심히 흔들린다.

젖몸살의 기억 3]

고통이 따라야 각성을 한다고, 주사바늘 사건 이후로는 유축을 꽤나 열심히 진행했던 것 같다. 모유생성에 도움을 준다는 설렁탕, 갈비탕, 도가니탕 단백질이 풍부한 탕이란 탕은 다 찾아 먹었고 남편은 큰 돈 들여 흑염소도 달여 주었다. 임신 기간 동안 살이 별로 찌지 않은 탓에 출산 후 몸무게가 바로 임신 전으로 원상복귀 했었는데 집에만 틀어박혀 먹어제끼기 시작하니 임신 때보다 몸무게가 더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수유를 끝낸 후 아이를 재우고 유축에 들어갔는데... 느낌이 싸늘하다. 젖은 퉁퉁 불어 있는데 아무리 쥐어짜도 나오지를 않는다.

하, 또 막혔다.

나는 꽤나 무던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에는 그것이 정말 별것 아닌 것을 스스로가 알고 있음에도 금방 좌절감에 빠지게 되곤 한다. 혼자 우울감에 빠져 하루 종일을 끙끙거리다 퇴근한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냥 모유수유를 하지 마"

나를 생각해서 하는 이야기인데도 내심 또 그 말이 섭섭하다.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오랜 친구가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남편이 빨아줬으면 좋았을텐데 우리 남편은 절대 안해주더라."

이거 진짜 남편이 가슴을 입에 물고 빨아당긴다는건가? 진짜로?

이게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남편이 도와주면 되는데' 라고 했던 것이 바로 그 의미인가?

남편은 흔쾌히(?) 도움을 주었고, 잠시 뒤 나는 유레카를 외칠 뻔했다. 주사바늘의 고통 없이도 젖이 뻥 뚫리는 것을 내 눈으로 목격하고 있다.

사회의 많은 어르신들께서 너무나 양반이시라 단번에 해결되는 이렇게 쉽고 편한 방법을 돌려돌려 이야기 하시고, 눈치없는 나는 또 그 말을 곧이 곧대로만 해석해서 내 젖만 갖은 꼴을 다 당했다.

그래, 이 얘기 하려고 이렇게 길게 썰을 풀었다.

왜 남편이 빨아주면 된다고 얘길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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