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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Apr 10. 2022

수유, 그 고난의 행군 - part 1

노산일기

사랑이 탄생 67일째, 어느 날의 늦은 일기.



왜 분유를 택하지 않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면, 아마 분유보다는 모유가 조금이나마 낫지 않을까라는 기대감과, 그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고 내 아이에게 모유 수유를 하고 있다는, 그래서 나는 육아를 성실히 하고 있다는 어떤 면죄부 같은 마음 이었을까.


제왕절개와 조리원 기간을 거치며 모유 직접 수유 가능 기간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데다 치밀 유방 및 충분하지 않은 젖량으로 인해 아기의 실낱같은 의지력 마저 꺾어버린 탓에 나의 하루는 불가피하게 유축과 분유통 수유 + 모유/분유 혼합 수유의 반복으로 쳇바퀴를 돌고 있다. 구체적인 일과로는 유축 1시간 - 분유통 수유 및 소화 시키기 1시간(모유가 부족할 때는 분유 수유) - 식사, 집안 일(청소/요리/빨래/설거지 기타 등등), 유튜브 혹은 책 경제/육아 정보 보기, 아이와 놀기의 네 가지의 행위가 평균 세 시간 텀으로 진행되고 있다(그 외 기타 행위는 생략).


효율성에 집착하는 나로서는 바쁜 일과 중의 유축과 수유의 중복 활동에 대한 비효율적 시간 소비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미 조리원 시절부터 관리사분들의 지원 하에 직접 수유를 여러 차례 시도해 보았으나 젖이 완벽히 빠지지 않아 결국은 젖몸살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조리원 퇴소 후 잠시 지원을 받게 된 산후관리사는 '아이를 많이 먹여서 쑥쑥 크게 만들겠다'라는 강력한 목표를 가진 분이었고, 20년 경력 기간 동안 수없는 산모를 봐왔지만 완모가 성공했던 사람은 단 두 사람에 불가능 했다며 더더욱 나의 직수에 대한 의지력을 꺾어버렸다.


그렇게 출산 후 두 달이라는 직수의 골든타임은 지나 버렸고, 오늘도 나는 유축을 하다 아이가 울거나 보채면 면 젖가슴을 드러낸 채로 집안을 활보하고 있다. 의성어 수준의 대화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상의 탈의에 수 개월 간의 이 동굴 생활이 초기 인류의 삶을 간접 체험하고 있는 듯한, 오늘도 그런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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