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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Apr 10. 2022

유축을 시작하다.

노산일기


약의 힘인지 뇌가 고통을 잊는 빠른 속도 때문인지 놀랍게도 며칠 지났다고 벌써 통증이 많이 가라앉았다. 아직 진통제에 의지를 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래도 걸을 때 자력으로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 면회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시간 맞춰서 다녀야 한다. 창밖으로 밖에 못보고 내 아이 만져볼 수도 없는 이 코로나 시국이 너무 안타깝다. 친정 부모님도 시부모님도 병원 정책 때문에 아예 병원 자체를 오시지도 못했는데, 어쩌면 한켠으로는 다행이다 싶었다. 아무래도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존재이기 보다는 내가 더 챙겨야 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모든 상황이 일장일단이 있다.



아이는 점점 더 얼굴이 갖춰져 간다. 임신 중에는 그 어떤 모성애도 느껴지지 않아서 걱정이 되었는데, 눈에 아이가 보이니 이제 아이가 이뻐보이는 마법도 생기고... 모성애는 사실상 키우는 정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모든 교육과 검사, 서비스 일정이 퇴원 전날로 몰려 있어서 사실상 수술 셋째날이 마지막으로 쉴 수 있는 날인 셈이다. 아침 8시 아침 식사 후 9시에 진료실 방문해서 의사선생님께 수술부위 드레싱도 받고 초음파로 자궁 내 혈액이 많이 남아 있는지 여부도 확인했다. 피가 아직도 좀 많이 나는 것 같아서 걱정되었는데 일반 생리혈 정도의 양이면 괜찮다고 한다. 정상적으로 잘 수축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고 하고 실밥 제거는 수술일 일주일 뒤라고 병원 방문 날짜를 지정해 주셨다. 샤워를 한번도 못하고 있는데 전혀 찝찝함이 없다....



10시 좀 넘으니 첫 유축을 해 본다고 신생아실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유축기는 이렇게 생겼구나. 출산의 고통 뒤에는 젖몸살이라는 또 다른 고통이 따라 온다는데 두렵다. 젖짜는 소가 된 기분으로 기계에 몸을 실어 보았는데 역시나 나오는 것이 없다. 너무 마음의 준비를 많이 해서인지 생각보다는 덜 아팠지만 가슴이 아픈 건 사실이다.


첫 젖이 나오고 일주일간은 초유라고 해서 정말 귀한 젖이 나온다고 하고, 아이들이 이걸 먹어야 면역력도 강해지고 지능도 높아진다고들 한다. 진짜 한방울 한방울 모아서 10ML도 안되는 극소량을 모아 신생아실로 넘겨 드렸다. 그렇게 귀한 것이라고 하니 열심히 소젖을 짜보아야겠다....



방에 틀어박혀 먹기만 하니 소화도 잘 안되는 것 같다. 그런데 식단엔 아직 고기를 찾아볼 수가 없다. 출산 후의 산모는 최소 4주 동안은 절대 다이어트를 하면 안된다고 한다. 모유를 만들려면 충분한 영양분이 있어야 하고 이 때 다량의 영양소가 몸에서 빠져 나가기 때문에 일일 최소 2000칼로리 이상은 반드시 먹어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야채반찬이 웬말이냐! 그렇다. 배가 부르니 반찬투정도 나온다.



아기는 계속 잔다. 괜히 들어서 잠을 깨우고 싶지 않아서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되돌아선다.


머리 감는 시간이 되어서 8층에 다녀왔다. 며칠만에 머리를 감으니, 더군다나 남이 감겨주니 시원하긴 했지만 뭔가 마사지스러운 것을 너무 기대한 것인지 그냥 샴푸칠만 해주는 서비스가 조금 아쉽기는 했다.


머리숱이 많아서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게 조절해야 한다며 약간 아쉬운 서비스를 받고 산모 교육에 부랴부랴 뛰어 갔다. 아이 샤워법, 관리법 등등을 구두로 설명 받았는데 설명으로만 들으니 감흥도 없고 심지어 눈도 스르르 감기기 시작했다. 이제 공부는 못할 것 같다.


젖 짰다고 간식도 준다. 산모 식단은 거의 소금기, 설탕기가 없는 음식들이라 심심하기 짝이 없다. 이러면 안되는데 남편을 통해 과자를 조금씩 보충했다. 남편은 그러라고 있는 거라고 지인들의 조언이 있었다.


3시 반쯤 되었을까 가슴 마사지 서비스를 받으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가슴 마사지로 뭉친 가슴을 풀어주어야 젖이 잘 나온다고 한다. 완모할 계획이 있냐기에 그건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무슨 소리냐 정말 드문 케이스로 불가능한 경우가 있지만 99%는 엄마의 의지로 되는 부분이다 라고 한다.


나는 유선은 잘 발달되어 있으니 젖이 나오는 길만 열심히 잘 뚫어주면 될 것 같고 오늘 저녁 6시부터 3시간마다 한 번씩 유축을 해서 가슴이 굳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했다. 6시, 9시, 12시 유축을 시도했는데 젖이 잘 나오지도 않을 뿐더러 젖을 한 번 짜면 너무 진이 빠진다 ㅠㅠ 이래서 육아 고행길이라고 하는구나....


아기야, 엄마가 영혼까지 끌어모아 20ML씩 건네주니 이거라도 맛있게 먹고 건강하렴....




물론 이때는 알지 못했다. 유축 고행길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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