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산일기
더워죽겠다 죽겠다 하다가 어느덧 가을이 왔다.
나는 겨울을 제일 좋아했기 때문에 가을이 시작되면 겨울을 맞을 생각에 설레곤 했는데 등산을 시작한 후부터는 가을이 그렇게 예쁘고 좋을 수가 없다. 특히 아기를 데리고 다니기가 극여름과 극겨울은 쉽지 않다보니 더더욱 바깥 활동하기 딱 좋은 선선한 계절이 좋아진다.
임신한 뒤부터는 300미터 이상의 산은 거의 간 적이 없다보니 요즘 더더욱 등산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서 설악산 케이블카라도 탈까 하다가 회사 동료의 추천으로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을 가게 되었다.
차량이 꽤 높이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해서 호기롭게 출발했는데 이거 웬걸, 축제기간에는 차량을 통제한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윰차를 끌고 예정에 없던 리얼 등산을 시작했다.
그다지 경사도가 높지 않은 길인데도 조금만 가도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윰차조차도 아빠가 끄는 꼴을 못보는 딸내미 덕분에 오늘도 행군이다.
최근에는 더더욱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정도밖에 못했던데다 몸무게가 만삭 몸무게보다 더찌는 바람에 내 몸뚱아리 지탱하는 것만으로도 무릎과 발목이 쑤셔오기 시작하는데 껌딱지까지 업고 밀고 끌고 가려니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려가기는 싫었다. 산이 너무 가고 싶었다.
다행인지 어쩐지 그래도 중간중간 조금씩 윰차에서 내려 걸어준 아기 덕에 등산 시간은 세 네배 길어졌지만 그래도 한숨 돌려가며 산행을 할 수 있었다. 민둥산이야 등산이라기엔 정상 부근까지 아스팔트 길이 너무나 잘 깔려 있어서 산책 정도의 코스이겠지만(물론 진짜 등산코스도 있음) 오랜만의 운동을 하는 나로서는 정말 쉽지는 않았다.
날씨도 해가 별로 없었던 탓에 선선하게 그다지 땀을 내지 않고 걸을 수 있었고, 눈앞에 펼쳐진 정상의 가을 억새는 마음이 벅차오르게 예뻤다.
산행길 중간에 있는 식당에서 감자전과 오뎅을 먹는데 아 이 맛에 등산하지 라는 기분을 오랫만에 느낄 수 있었다.
10월 말이 설악산 단풍 절정이라고 하는데 설악산은 올해는 무리겠지. 나이가 들어서야 보이는 이 아름다운 금수강산, 그리고 사계절. 내 어릴 적에는 그렇게 등산하는게 이해가 안되더니 커서는 산을 못가서 안달이다.
아이에게 이 아름다움을 나눠주고 보여주고 싶지만 내가 그러했듯 내려올걸 왜 올라가냐고 물어보겠지.
그래도 멋모르는 23개월 아기는 이 날의 최연소 민둥산 등산러로서 많은 분들의 응원을 받으며 한걸음한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