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산일기
Day1
저렴한 비행기를 예약했더니 시간대가 썩 좋지는 못하다. 아침 8:35 인천공항에서 출발하여 10:05에 다카마쓰에 도착하는 비행기이다.
짐싸느라 늦게 잤는데 공항 간다고 새벽부터 준비했더니 잠을 거의 못자서 비몽사몽이다. 여름 휴가 기간이라 공항엔 이른시간부터 사람들로 인산인해였고 라운지는 줄이 너무 길어 돈을 조금 더 내야 하는 골드마티나 라운지로 갔다.
너무 일찍 아기가 잠에서 깨서 아기도 컨디션이 썩 좋지는 않지만 일단 라운지에서 아침을 억지로 먹여본다.
돈을 더 내서라도 라운지를 편하게 이용한 것은 훌륭한 선택이었던 것이 이른 아침부터 줄줄이 출발 지연이 있다. 일정보다 1시간 뒤에나 비행기를 탑승할 수 있었고 탑승 후에도 한참을 이륙하지 못했다. 피로로 가득한 우리 가족은 비행기에서 부족한 잠을 해결했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가 되자 푸르른 다카마쓰의 모습이 보인다. 후쿠오카도 꽤나 작은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은 약간 시골에 가깝다는 인상이다. 입국수속을 위해 공항 내를 걸어가는데 벌써부터 열기가 느껴졌다. 더워진 아기는 집에 가자고 한다. 아가야 이제 막 일본에 왔어...
사람은 많지 않은데 수속부스가 3곳 밖에 없고 속도도 매우 느려서 한참을 서 있어야 했다. 기다려준 아기를 달래기 위해 짐을 찾자마자 편의점으로 향해 이것저것 주전부리를 샀다. 공항이 작다보니 여기 저기 찾을 필요 없이 모든 곳이 한 곳에 모여있다. 다카마쓰 공항은 주로 국내선 위주로 운영이 되고 국제선 운항은 많지 않은 듯 했다. 예약한 렌트카를 찾아 본격적인 여행을 출발하기 까지 정말 진이 쭉 빠지는 더위에 시작도 전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렌트도 저렴한 것 위주로 해서인지, 아니면 일본 차량이 한국보다 살짝 차체가 가벼운 것인지 일본열도의 엄청난 열기를 차가 막아주지를 못하는 듯 했다. 에어컨을 켜도 더위가 가시지 않는다. 바깥 온도는 35도 가량 되는 듯 했고 이 날씨에 길을 걸어다니는 것은 불가능 할 듯 해서 이런 저런 일정을 다 포기하고 바로 쇼핑몰인 유메타운으로 향했다.
아, 망했다. 유메타운 주차장에서 내리면서 든 생각이다. 이번 여행은 더위만 먹고 끝나겠다 싶은 두려움이 엄습한다. 일단 부랴부랴 아이를 들쳐업고 실내로 향했다. 유메타운에는 아기가 탈 수 있는 여러가지 캐릭터 선택권이 있는 카트가 있다. 더위에 지쳤던 아기는 호빵맨 카트를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 장시간 이동에 지루했을 아기를 위해 유메타운 내 아기 놀거리가 있는 곳을 찾아 갔다. 여러 캐릭터가 있는 작은 놀이기구 몇가지와 게임기들이 모여있는 곳이 있어 시간을 조금 보내고 그 옆의 간이 아기 놀이방에서 미끄럼틀 30번 정도 타고 간식과 기념품 구매를 한 뒤 몰 안의 식당가에서 밥을 해결했다. 다카마쓰에서 굳이 홋카이도 라멘을 먹어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더우니 다른 메뉴는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유메타운 맞은 편에 2nd street가 있고 멀지 않은 곳에 포카포카온천이 있어 가볼까 했으나 날씨 때문에 아무것도 하기 전에 진이 빠져버렸다. 숙소는 료칸형태가 아닌 현대식 건물이기는 했지만 꽤나 오래된 곳이라고 했다. 다다미방에 목욕탕과 식당을 보유하고 있어 우리가 지내기에 모자람이 없었고 조식/석식 포함인데도 가격이 17만원도 안되는 가성비 최고의 숙소였다. 숙소 건너편에는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꽤나 규모가 큰 마트도 있다.
일찍 체크인을 하고 장을 보고 목욕도 하고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아기까지 숙박비를 포함했더니 저녁식사가 3인분이 나와서 배가 터져라 먹었다. 깨알같은 남편은 마트에서 산 사케를 페트병에 담아가서 저녁식사하면서 물처럼 마셔준다. 가끔 흉해도 저렇게 살아왔으니 자수성가 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수가까지는 할 수 있었지 않나 싶다. 서울살이 자력으로 등록금과 생활비, 동생을 키워내는 것까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저녁을 먹고 밖을 보니 더위가 살짝 누그러진 것도 같아 소화를 시킬 겸 산책을 하기로 했다. 일본의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 아케이드형 거리를 걸으며 아 첫날부터 더위를 먹는다 힘이 든다.. 를 연발했다. 다카마쓰는 일본 내에서도 유난히 더 더운 곳이라는데… 여름엔 집이나 회사가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