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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다카마쓰 여행기 - 3

노산일기

by sunshine


Day 2


고치현으로 넘어가는 날이다. 또다시 언제 만날지 알 수 없는 친구와 시간을 좀 더 보내기 위해 고치현에서 이틀을 할애하기로 했다.

낮의 더위가 극악하기 때문에 낮시간은 차량이동으로 잡기로 했다.


숙소는 조식도 알찼다. 아기 때문에 식당에서도 매번 다다미형태의 방을 내어주신다. 이 숙소 때문이라도 다카마쓰는 다시 한 번 오고 싶다 생각이 들었다. 사실 다카마쓰는 나오시마섬을 가기 위해 오는 장소이기도 한데 극악한 여름 날씨에 야외의 섬을 걸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고 날씨가 좋은 계절에 꼭 한 번 다시 와야겠다 라고 다짐을 해 본다.


그나마 해가 중천에 떠오르기 전에 리츠린 공원은 보고 가자 싶었다. 1700년대 조경 정원으로 일본 특별명승지에 등록되어 있으며 정원문화재로는 일본 최대면적을 가진 곳이다. 아직 오전시간인데도 햇빛은 작열하기 시작했고 발을 내딛는 순간이 조금 괴로워서 정원을 둘러보며 고즈넉히 산책하는 환상은 지워지고 고행이 시작되었다. 더위에 짜증이 난 아기는 안아달라고 난리다. 가장 유명한 곳만 보고 가자 싶어서 키쿠츠테이 찻집에서 녹차 말차 한잔하며 쉬어갔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기를 달래려고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줬는데 차로 돌아오기도 전에 다 녹아서 손에 다 흘러내렸으니 날씨 할말 다 했다. 더 놀라운 건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 전이었다는 것이다.


일단 차에 올라타서 두시간 반 가량의 도로주행을 시작한다. 고속도로이기도 하고 인구밀집도가 높지 않은 섬이다보니 운전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일본 차들이 대부분 경차라서 그런지 지열이 차량 내로 그대로 들어와서 에어컨을 내내 틀었는데도 찬 바람만 나올 뿐 차 내부의 공기가 시원해지지는 않는 느낌이다. 가는 길에 구글 평점이 괜찮은 우동집에서 우동 한 그릇을 먹었는데 이 지역의 우동은 어딜 가든 만족도가 높았다.


고치현 인근에 있는 호빵맨 박물관을 들렀다 가기로 했다. 일본 전역에 호빵맨 박물관은 네 군데가 있는데 이곳은 다른 곳과는 좀 다르게 정말 뮤지엄의 색깔이 있는 곳이다. 고치현은 호빵맨 작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하는데 그의 좀 더 예술적인 면모를 이곳에서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아기에게는 좀 지루하니 않을까 하는 걱정과는 달리 그림을 보며 반가워했다.


긴 시간을 달려 고치현에 도착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친구네와 우리가 예약한 호텔이 도보 10분 거리에 있었다. 숙소에 도착하자 친구네가 이미 호텔에 와 있었다. 10년에 한 번 만날까말까 하는 사이이고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않은데도 그저 만나면 마음이 짠하고 애틋하다.


급히 짐을 맡겨두고 친구네와 함께 식사를 하러 시내로 걸어가기로 했다. 아버지와 동생은 아직 도쿄에 살고 있다고 하고 얼마전 아버지가 건강이 악화되셔서 지금 병원에 계시다고 했다. 우리 부모님의 근황도 얘기했고 우리 아빠를 좋아하던 친구는 우리 아빠가 보고 싶다며 길을 걸으며 울기 시작했다. 덩치가 곰같이 큰 친구인데 마음은 여리기가 소녀같다.


고치에서 유명하다는 히로메 시장을 가보고 싶어 그곳에서 저녁을 먹고자 했지만 이미 시장은 사람들로 가득하고 도통 자리를 잡기가 쉽지가 않았다. 역시 아기를 데리고 이런 곳은 무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던 즈음 친구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고 한다. 지친 우리는 어디든 어떤 메뉴든 상관없으니 일단 실내로 갔으면 했다.

조금 가격대가 있어보이는 이자카야의 룸에 들어가 부어라마셔라를 시작했다. 술을 좋아하던 친구는 정말 술고래가 되어 있었다. 1차에서 20만원치를 넘게 먹고 첫날부터 3차까지 이동하며 술을 붓고서야 내일 또 마셔야 되니까 적당히 마시자 라며 판이 끝났다. 더위도 먹고 술도 먹는 이 상황에 두려움이 엄습한다.


고치현은 8월 즈음에 마쯔리가 있어 벌써 축제분위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마쯔리 시즌에는 모든 시민들이 술독에 빠진다고 한다. 8월은 지금보다 더 덥다고 하는데 맨정신으로는 못살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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