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산일기
Day-3
여행을 오기 전 친구가 가고 싶은데가 있는지 이런 저런 곳은 어떤지 물어보았었다. 하지만 그곳들이 전혀 아기가 갈 만한 곳들이 아니기도 하고 거리가 꽤 멀어 이동이 부담스러울 것 같아 아기와 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더니 그럼 강 옆에서 캠핑이나 할지 물어보았다. BBQ가 가능하니 고기를 구워 먹자고 했다. 그땐 날씨가 더워도 이 정도까지 더울 줄은 몰랐다…
그 날이 되었다. 호텔 조식은 근사했다. 이번 여행은 호텔 하나는 모두 가성비가 끝내줘서 심혈을 기울여 호텔 검색을 했던 내가 대견했다.
준비해서 로비로 내려가니 벌써 친구네가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네와 차를 같이 타고 가며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었다. 왜 도쿄에서 고치로 왔냐고 물었더니 와이프를 만나고 일본의 전역을 여행했었는데 고치현이 사람들의 인심도 좋고 공기도 좋고 무엇보다 사케가 제일 맛이 좋더란다. 고치현이 물이 좋아 사케 맛이 좋다고 했다. 사케 맛을 잘 모르니 어떤 사케가 좋은 사케인지 알 수 없어 안타깝지만 어쨌든 이곳이 공기좋고 물이 맑은 것은 알겠다 싶었다. 곳곳이 푸르른 숲이고 여기저기 초록빛을 띄는 강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친구가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다더니 한참을 운전해서 도착한 곳이 어떤 다리가 있는 곳이었다. 다리 난간이 없어 다리를 건너는 것으로도 위험해보였는데 오래된 다리라 지역의 명소라고 한다. 마침 위험천만하게 다리 끝에서 인증샷을 찍는 사람들이 보였다. 드라이브로도 유명한 곳인지 색색깔의 페라리가 한 열대 정도 와 있었는데, 고치가 이렇게 부자동네였냐며 친구도 우리도 신기한 듯 페라리를 구경했다. 그렇게 잠깐 다리 구경을 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차안에 갇혀있는게 지겨운 아기가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작은 차 안에 커다란 성인만 네 명에 아기까지 5명, 인구밀도가 높아 나 또한 갑갑증이 몰려온다.
또 온만큼 차를 타고 되돌아가서 드디어 예약한 BBQ 장소에 도착했다. 고치현 사람들은 이미 더위에 익숙한 모양이다. 강가에 잔뜩 텐트를 치고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 하는 가족들이 많아 보였다. 이글이글한 더위에 아기는 정말 짜증이 잔뜩 나 있어서 얕은 강에 발이라도 담그게 해 보려고 했는데 기겁을 하는 바람에 되돌아 왔다. 어찌나 큰 소리로 짜증을 내는지 일본사람들이 귀엽다며 웃어댔지만 나는 속이 타들어간다. 이 여름에 땡볕 아래 BBQ가 웬말이냐....
일단 고기굽는 장비를 설치하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날도 덥고 불도 덥고 나도 현기증이 날 것 같은데 아기는 오죽하랴. 문제는 우리만 더운 것 같다는 것이다. 아기와 함께 있을 때는 남편과 나 둘 중에 한 명은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하기에 가급적 술을 안먹는 편인데, 이 더위를 견디기가 힘들어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래도 다행히 고기는 맛이 있는지 아기는 밥을 조금씩 먹었다.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시원해질 만도 한데 전혀 시원해지지를 않는다. 아기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어서 적당히 달랜 후에 다시 차를 타서 숙소로 돌아왔다. 각자 씻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저녁시간에 맞춰서 접선하고 친구네가 예약해 둔 타다키로 유명한 술집을 갔다. 친구는 종류별로 사케를 시키며 우리에게 술을 맛보게 했고, 맛의 차이는 느껴졌지만 어느 것이 더 좋다 나쁘다의 우열은 가리지 못한 채 취기만 올라갔다. 개인적으로 타다키를 딱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고치현이 진짜 볏짚에 불을 붙여 만든 타다키로 유명하다고 해서 한 번 먹어보기로 했는데 역시는 역시였다. 지금까지 먹었던 타다키는 다 가짜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는 밥같은 밥을 먹고 싶었는데 술을 밥처럼 먹는 친구네와 시간을 같이 보내니 정신이 아찔하다.
이렇게 또 헤어지면 또 한참을 못보겠구나 생각에 아쉬움이 올라오며 취한 친구네와 나는 눈물을 닦았다. 고치현에도 공항이 있는데 국내선 위주이고 유일하게 대만으로 국제선 취항이 된다고 하여 다음에는 대만에서 만나자고 기약을 했다. 일어를 공부해야지 하는 다짐이 여태까지 지켜지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꼭 공부를 해서 다음에 만날때는 일어로 대화를 한 번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