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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May 21. 2022

둘째를 낳아야 하나요?

노산일기

회사의 같은 팀에서 일하다가 육아를 위해 퇴사한 후배가 둘째를 낳으라고 권유했다.


아이 둘이 매일 하루에  번씩 싸워요. 그럼 일년에 3,650번을 싸우는 건데 혼자  애랑은 사회성 자체가 다르지 않겠어요? 요즘 외동 많다, 저출산이다 하는데 막상 외동 별로 없어요. 얼집 자리 없는  봐요.”


그래, 내가 바로 외동이지.

내가 자란 시대야 말로 외동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아빠의 사업이 잘 되지 않았던 탓일지 부모님 성향 탓일지 막상 외동이라고 오냐오냐 부족한 것 없이 자랐을 거란 편견과는 달리 다른 집 아이들과 별 차이가 없었을 뿐더러 내가 형제가 없다고 하면 놀라는 친구들이 더 많았다.


문제는 나 자신이었다. 집에서야 책읽고 퍼즐하고 혼자 조용히 잘 노는 아이었지만 집 밖을 나가는 순간부터 혼란의 연속이었다. 타인 한명한명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마다 내 생각을 벗어났고 왜 저럴까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걸까, 내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걸까 의문과 당혹감의 연속이었다.


바깥세상은 나에게 불편했고 친구도 잘 못사겼다. 아마 어른들은 쉬는 시간에 책만 읽고 있는 나를보고 얌전하다, 똑똑하다, 착하다 라고 평가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집 밖의 시간들이 편한 순간이 없었다.


그렇게 학창시절을 통해 집단 생활을 시작하면서 과하지는 않았지만 가끔씩 따돌림도, 괴롭힘도 당해 보면서 점차 사회 생활에 걸맞는 가면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용하던 아이가 갑자기 오락부장이 되었으며 소위 좀 논다는 친구들과 잘 어울렸고 성적은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다른 서류 문제로 학교를 방문했던 부모님이 내 학교 생활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먹으셨던 것 같다. 넌 학교에서는 그렇게 말이 많다면서 왜 집에만 오면 입에 구린내가 날때까지 말을 안하냐고 종종 잔소리를 하셨다.


집 문을 열고 들어오면 하루의 피로가 쏟아져서 단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더랬다. 감정연기를 하고 와서 너무 지치다는 얘기도 부모님께 할 수가 없었다. 이해도 못하실 뿐더러 어차피 공부나 하라고 하실꺼니까.


그렇게 지금까지 대인관계를 이어왔고, 아직도 많은 시간 가면을 쓴 채 살고 있다. 가까운 지인들조차 내가 외향적이고 활발하며 친구가 많은 줄 잘 못 알고 있지만, 실제의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에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내가 결혼을 했다는 사실도, 허심탄회 편하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남편을 만난 것도 나에게는 엄청난 행운이자 감사한 일일 정도이다.


그런데 아직도 가끔은 핀트를 못 맞추는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얼마 전에도 교양 수업에서 만나 친해진 동료에게 가까운 티를 낸답시고 애칭삼아 울보 짝꿍이라고 했다가(수업시간마다 우는 동료이다), 아픔이 있는 눈물이니 울보라고 부르지 말아달라, 그 말은 너무 나를 아프게 한다 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곤 아, 난 아직 각각의 사람들 간의 경계선이 어디 즈음인지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돌고 돌아 둘째 얘기로 돌아왔다.

나의 불편함을 통해 사회성이 살아가는데 중요하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지만, 사회성을 길러주기 위해 둘째를 낳는다는 것이 적절한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도 둘째를 낳고 싶다. 나는 경험이 없지만, 살아가며 지게될 무거운 짐들 함께 나눌 형제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자식을 낳는 것이, 키우는 일이 경제적으로나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그 행위에 적절한 이유와 타당성이 있어야 하는 걸까?

왜 하나만 낳았는지, 혹은 왜 여럿을 낳았는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이유들이 나에겐 왜이리 와닿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여전히 고민만 한다.왜 결심을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결심이 안 선다.


덧,

엄마가 예전 사주를 봤을 때 내가 자식이 둘이라고 했다고 한다. 사주는 그냥 재미로 보는 나인데도, 자식을 하나 더 낳으면 딸 같이 키운 16살 우리 강아지 하늘 나라로 갈까봐 바보같은 두려움이 몰려왔다. 사랑하는 내 두 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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