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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May 25. 2022

노트북

노산일기

부모님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고 해서 친정집에 며칠 다녀왔다. 코로나 백신 때문인지 아닌지 확증이 없지만 어쨌든 아빠는 2차 접종 이후 시력을 상실하고 불면증과 우울증이 심해지신 것 같았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입맛을 잃으면 위험신호로 본다는데 일주일에 최소 두세번은 반드시 소고기를 드시는 아빠가 고기조차 잘 안드시는 것을 곁에서 보니 걱정도 되고 마음도 좋지 않았다.

엄마는 양쪽 무릎 수술을 한지 일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걸음이 성치 않고 살도 많이 빠졌다. 그 몸을 이끌고 아이를 봐주겠다고 욕심을 부리신다.


어느덧 아빠도 80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엄마도 80이 넘으셨다. 신체의 모든 장기를 80년 넘게 썼으니 하나둘씩 고장이 나는 것도 당연하고 몸의 신호에 맞춰 삶의 리듬도 늦춰 나가는 것이 맞는 일인데, 그렇게 쇠약해지시는 모습을 보는 자식의 입장은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작년부터 아빠는 엄마의 다리가 되었고 엄마는 아빠의 눈이 되어 생활하고 계신다. 그렇게 많이도 싸우고 지지고볶던 부부였지만 긴 세월 곁에서 지켜본 자식인 내가 보기엔 이런 천생연분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진작에 갈라섰을 법한 각자의 치명적인 결함들이 서로에게 상호보완적이다. 두 분이 이제는 한 몸처럼 살고 계신데 두 분 중 한 분이 먼저 가시기라도 하면 남은 한 분이 어떻게 살아가실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그러면서 남편을 떠올렸다. 나나 남편이나 하나의 개인으로는 이렇게 단점이 많은 인간인데, 각자에게는 그런 부분들이 서로 의지가 된다. 남 챙기기 좋아하는 나는 항상 애정을 갈구하는 남편을 챙기게 되었고 남 다 퍼주느라 실속 없이 살던 나는 알뜰한 남편이 보완을 해 준다. 그렇게 남남이 가족을 이루어 함께 살아가나보다.


너무 예전에 봐서 잊혀졌던 노트북이라는 영화를 며칠 전에 남편과 같이 보았는데, 영화가 끝나고서도 마음이 울렁울렁하는 것이 가라앉지 않아 한참을 꺽꺽거리며 울었더랬다.

남편이 우리도 한날한시에 같이 죽자고 했다. 홀로남게될 딸은 어쩌냐고 했더니 20살이 되면 바로 시집을 보내버리자고 한다.


아직 돌도 안된 아이를 보며 좋은 남편 만나야 할텐데, 예쁜 가정 꾸리며 행복하게 살아야 할텐데 라고 벌써부터 몇십년 뒤의 걱정부터 하고 앉았다. 늙은 우리 엄마는 나를 걱정하고 노산의 늙은 나는 딸을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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