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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May 28. 2022

임신의 기억

노산일기

회사생활을 오래하고 일로 인정을 받는 사람들이 싱글인 경우 성격이 좋지 않다는 편견이 좀 있다. 노처녀 노총각 같은 표현들을 비롯해서 이런 일반화할 수는 없는 통념들을 모두가 보는 장소에서 언급하는 것은 많이 조심스럽다. 해서  경험으로 폭을  한정할 필요가 있다.


내 스스로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가정에 신경을 쏟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일에 더 몰입해 있기 때문에 일이 진척이 안되거나 사고나 실수들이 생기는 것에 대해 상당히 날이 서 있었다. 집에 와도 혼자만의 시간이니 눈을 떠서 감을 때까지 일생각이 머릿속에 늘 가득했었다. 이렇게 일에 나를 갈아넣다보니 내가 이렇게 일을 하는데!로 시작하는 인정욕구를 비롯한 보상심리도 생기게 되었고, 돌아오는 것은 내가 투자한 시간과 열정에 비해 작게 느껴졌다.


싱글의 삶은 행복했지만 많이 불안했다. 워낙 혼자 잘 노는 성격이라 외로움도 별로 안 느꼈던데다, 30대 후반 기대치 않았던 기회로 마음 맞는 친구들을 새로 사귀게 되면서 전국의 산을 돌아다니며 등산하는 재미에 빠져있었더랬다.

그럼에도 미래의 삶은 불안했다. 죽는 순간까지 한 순간도 빠짐없이 내가 내 자신을 스스로 챙겨야 한다. 보험을 하는 친구를 통해 가입한 종신보험 계약 내용을 이리 저리 챙겨 묻는 나때문에 친구가 한동안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다 정말 우연히 남편을 만나 짧은 기간 휘몰아치듯 결혼을 했고, 바로 아이도 갖게 되었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숨쉴틈 없이 달려가다 임신을 하면서 시간이 다시 원래의 속도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회사를 다니고, 부모님을 챙기는 나는 그대로인데 내 삶에 남편과 뱃속의 아이가 더해졌을 뿐이다.

나는 발걸음이 상당히 빠른 편인데 임신 말기에나  걸음의 속도가 느려졌으니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인지는 하고 있으나 크게 와닿지는 않았던  같다. 딱히 태교를 하지도 해야겠다는 생각도 않았 회사  회사 집이란 삶의 루틴이 바뀌지도 않았다.


입덧도 있었으나 식사를 함께하는 직장동료나 식구가 나의 입덧 때문에 행여 입맛이 떨어질까 내지 않고 적당히 삼시세끼를 챙겨 먹었다. 먹지를 못해 링거까지 맞는 사람이 있다는 걸보면  입덧은 심하지는 않았나보다. 혹은 내가 둔했던지. (대신 먹는 음식은 180 바꼈다. 주식이 소고기, 쌀밥, 김치이던 내가 생전  먹지 않는 국수, , 과일들로 메뉴가 바꼈다.)


여전히 바빴고 회사며 집이며 챙겨야 할 일들이 많았다. 그런 덕분에 만삭 때까지 5키로 정도밖에 찌지 않았고 몸이 좀 가벼우니 더더욱 임신 때문에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을 못한 적은 없었던 듯 하다(중기에는 집안 가구도 옮겼다).


그다지 변치 않았던 삶 중에 달라진 것은 있었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딱히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는데 임신을 한 후로는 세상이 생각보다 좀 더 따뜻한 곳이라고 느껴졌다. 어디서든 임산부로서 대접과 양보를 받았고 사람들은 언제든 도움의 손길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물론 회사는 코로나 시국에도 임산부 더러 재택근무 예외없이 출근하라고 하긴 했지만… 그 층에 임산부는 나 혼자 였으니 아주 나를 특정해서 한 소리였겠지. 일은 일이니 어쩔 수 없다.)


마음이 편안해지니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 남편에게 반농담으로 임신하니 대접을 받는다. 애를 연달아 가져서 임신상태를 지속해야겠다. 라는 얘기도 했더랬다.


힘든 기억이 금방 잊혀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조금 시간이 지난 지금 나의 임신 시기를 돌이킬 때 매 순간 늘 사랑스럽고 행복한 마음이 가득했던 것 같다(물론 회사에선 화가 자주 났지만). 정말 처음으로 세상은 살만하다 싶을 만큼 따뜻한 곳이란 생각을 했더랬다.


원효대사 해골물 같은 이야기이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마음이 변하니 세상이 따라 했다. 내가 살아온 동안 아이를 가지는 일만큼 행복한 은 없었던 것 같다.  아이가 커가는  지켜보는 일은  행복하겠지.


나는 오늘도 매일 기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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