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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Apr 10. 2022

INTP 엄마

노산일기

나는 INTP다.


이제는 MBTI가 식상할만도 하지만 네가지 알파벳으로 아주 간단하게 내 성향을 설명할 수 있다는 편리성과 꽤 높은 수준의 정확도(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MBTI의 늪에서 허우적 대고 있는 것 같다.


INTP는 인간계에서 잘 어울리지 못하지만 호기심은 많아 온라인 세상에서 제일 활발한 특성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혼자 자란데다 친구도 아주 친한 소수만 어울리는 나는 인간 관계의 반경이 그다지 넓지가 못하다. 그나마도 내 마음에 상처를 받을까봐 가장 마음 가장 안쪽의 문은 누구에게도 열지 않는다. 현재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 하되 그 사람과의 인연이 끝이 났을때 내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마지막 문은 굳게 닫고 열지 않았다. 혼자 자라다보니 학교에서 약간 강제적으로 맺어지는 교우관계들에 상당히 불편한 마음이 있었고, 몇 번의 전학 동안 따돌림 혹은 괴롭힘도 당하면서 한겹한겹 마음의 문이 두꺼워진 것이 아닌가 싶다.



올해로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연세가 팔십이 넘으셨다. 늦둥이다보니 나의 사춘기와 엄마의 갱년기를 비슷한 시기에 맞이하게 되었다. 표현의 문제이지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이런 저런 대화가 많지 않은데다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함과 불친절의 극단에 계시는 부모님께서 경제적으로나 마음적으로 쉽지 않은 시절에 나에게 뱉으신 말들은 오랫동안 가슴 깊은 곳에 순간순간의 또렷한 장면들로 남아있었다. 부모를 부모의 존재가 아닌 또 하나의 개인으로 이해하고 나빴던 기억들을 스스로 치유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그런 애증이 서린 관계임에도 부모님은 내 마음의 마지막 문을 열 수 있었던 유일한 존재였다.



세상에 태어나는 것도 주어진 환경에서 자라는 것도 내 선택이었던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순전히 나의 선택이다. 내가 유일하게 마음을 열 수 있는 존재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순간이 오면 그 공허함과 외로움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또 다른 가정이 생긴다는 것. 기꺼이 내가 대신 죽을 수 있는 존재가 생긴다는 것.


부모님과 나의 지난 관계를 곱씹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좋은 것은 지금의 가정에 적용하고, 나쁜 것은 개선하고 바꾸기 위해 이런 저런 책도 읽고 영상물도 참고를 하면서 아, 새로이 가정을 형성한다는 것은 내가 인간이 되어가는 가장 빠르고 어려운 과정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아직도 관계가 너무 어렵다. 가장 가까이 있는 남편과도 토라져서 서로 말을 안할 때도 있고, 앞으로 아이가  가는 것이 자신이 없을 때도 많다. 어릴 적의 나는 책으로부터 세상을 배웠었는데, 아직도 나는 책에서 해답을 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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