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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Jun 05. 2022

성찰이 필요한 시간

노산일기

대학 시절 유난히 나를 따랐던 예쁜 동생이 있었다. 나를 그렇게 대놓고 좋아해주는 사람은 손에 꼽기 때문에 나 또한 그 동생이 고맙고 소중했다.


그 동생은 내 그림을 좋아했고 그림을 좋아하는 내 취향도 좋아했다. 세상엔 그렇게나 전문가 수준의 박식한 사람이 넘쳐나는데 막상 내 주변에는 그림에 관련한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미술관을 함께 갈 수 있는 그녀를 알게된 것은 나에게도 큰 기쁨이었다.


 동생은 우아한 취미가 많았다. 와인 모임도 가지고 지적인 대화를 나눌  있는 어떤 모임도 있다고 했다. 그런 곳에서 어떤 대단한 사람들을 만났는지 종종 무용담처럼 내게 들려주었고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이 고통인 나는 그녀를 통해 듣는 이야기가 신기하고 재미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모임에서 만난 어떤 오빠를 나에게 소개시켜줬다. 아마도 모솔로 추정되던, 세상 이렇게 착한 사람이 있나 싶은 선한 사람이었던 그는 본가가 봉천동이라 당시 대학원 기숙사 생활을 하던 나와 거리상의 이유로 종종 만남을 가졌다. 아마 그렇게 만남을 이어가며 데이트 같은 모양새를 갖췄던  같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정말 누가  안에 들어올 수가 없는 황폐한 정신이었고 어영부영 남친과 남사친의 경계를 오가다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라는  나의 시각이고  분은 연락을 잘 안하는 나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동생도 나도 회사에 입사했고 종종 그녀가 전하는 소식으로는 아버지  대기업의 2인자가 되셨고, 어머니는 명문고의 교장이 되셨다고 했다. 집은 창동에서 스타시티로 옮겼고 강남 입성을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그녀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지사에 입사했고 1  본사로 근무지를 옮겼다.  동생의 삶이 점점 더 멋있어지는 것이 기뻤지만 점차 그녀가 나에게 할애하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느꼈다. 나도 일에 파묻혀 몇 안되는 대인관계마저 다 끊기던 시절이라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그렇게 몇년이 지나고 연락도 뜸해졌던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결혼을 한단다. 결혼 상대는 나에게 소개를 해 줬던 그 분이란다.

1 동안 선자리만 300번이 넘었고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는 능력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지만 결국엔 본인이 마음을 편하게 놓을  있는 사람을 선택했다고 했다. 63빌딩 예식장 예약이 어려웠지만 아빠카드를 썼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에게도  남사친쪽에 많이 기울어 있었던 분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아끼는 동생과 좋은 분이 결혼한다고 하니  소식 자체를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결혼식은 호화로웠고 하객도 너무 많았다. 먼발치에서 잠깐 얼굴만 보고 인사도 못한채 축의금만 내고 돌아왔다.


 이후로 동생은 차차 연락이 끊겼다. 아마도 불편함이 없지 않으리라 싶어 나도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녀가 나에게 했던 수많은 말들은 자랑이었는데 내가 바보같이 잘 못알아들었다. 부럽다고 했어야 했는데 네가 잘되어서 나도 너무 기쁘다고 했다.

그런 그녀가 우연히 인스타에 등장했다. 그림 전시회를 한다고 한다. 처음으로 많이 부러웠다. 그림은 내 것이었는데 자리를 뺏긴 기분도 들었고 화실을 오랫동안 다니고 전시회를 가질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것도 부러웠다. 왜 그림에서만 유독 그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건지 며칠간 고민했다.


이런저런 경험들을 통해 나는 꽤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많이 멀었다 싶다. 한 아이를 키워내기에 그릇이 작다못해 삐뚤어졌다.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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