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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Jun 10. 2022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노산일기

** 오늘의 일기는 매우 길어 편히 스쳐가시기를 권장 드립니다 **


이사할 때를 제외하곤 방문할 일이 없던 동사무소라는 곳을 육아수당이나 보육료 등의 문제로 종종 방문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동사무소 안에 작은 도서관도 있고, 동사무소에서 진행하는 여러 주민프로그램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갓난쟁이를 안고 도서관을 찾는 모습이 신기했던지, 사서 자원봉사를 하고 계신 주민분께서 어떤 프로그램 하나 해 보지 않겠냐고 했다. 책을 사랑하는 동네 주민 몇 명을 모아 구청에서 지원하는 소액의 금액으로 각자 다른 책을 사고 서로 책 내용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마침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계획 되어 있으니 시간적 여유도 생길 것 같아 참여 의사를 밝혔다. 사실 알음알음 아는 분들끼리 진행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한 분이 급하게 출장이 잡히면서 한 자리가 공석이 되어 그 자리에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나는 책을 정말 사랑하지만, 책의 '존재'만 사랑해서 내용을 잘 읽지는 않았는데, 좋은 기회를 통해 숙제처럼 꼼꼼히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어 오랜만에 약간의 기분 좋은 스트레스를 느꼈다.


내가 선택한 책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었고, 오늘 소감 발표한 내용을 잊기 전에 먼저 남겨본다.


이어령 선생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전 문화부 장관이자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을 총괄감독? 했던 분 정도였다. 유럽, 특히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곳은 국가 정책이나 국가의 이데올로기까지 좌지우지할 정도로 국민에게 존경받는 지성인들이 많다고 하는데, 한국은 정치적 이유로 의도적으로 우상화를 잘 하지 않는 것인지, 혹은 뛰어난 분들이 너무 많아서 누구 하나 손꼽기가 어려운 나라라서 그런 것인지(나의 무지도 큰 몫을 하겠지만) 기술이나 예술 뭐 이런 것으로는 누가 최고지! 이런 것이 가능하다면 지성인으로는 나라의 큰 어른이라고 불리는 분이 많지 않은 것 같은데 이어령 선생은 다수가 인정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인이라고 하니 아, 그런가 보다 정도의 인지 상태였다.


며칠 전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다큐멘터리의 후반부를 보게 되었는데, 그는 노쇠한 체력에서도 눈동자는 여전히 호기심 어린 초롱초롱한 빛을 내고 있었고 카랑카랑한 에너지가 분출되고 있었다. 암 때문에 시한부를 살고 계심에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정하고 흐트러짐 없는 모습에서 아, 이 분처럼 늙고 싶다, 이렇게 죽음을 맞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분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였다.


** 아래는 책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말씀 드립니다 **


배경 지식도 전무한데다 일면식도 없는 양반께서 남기는 마지막 책인데 이거 무슨 기분인지 막상 책을 펼치자 가슴이 먹먹해서 책장이 잘 넘어가지가 않았다.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유서처럼 느껴졌고, 겉으로 죽음에 대해 당당하고 의연해 보였던 분이었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가 언제 부러질지 모르는 절벽의 나뭇가지를 잡은 듯 두려워 보였기 때문이다. 단지 먼저 간 딸이 죽음을 맞이했던 자세를 존중하고, 그런 의미로 더욱 정신일도를 하시는 듯 느껴졌다.


책이 뭔가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를 가지고 시작했다거나 기승전결의 줄거리가 있다거나 하지는 않고 거의 무작위로 떠오르는 생각들에 대해 스승과 제자가 대화로 풀어낸 책인데다 죽음을 앞둔 스승이 세상에 무엇 하나라도 더 남겨주고 싶은 마음에 쏟아내는 말들 같아서 무엇 하나 인상 깊었던 구절을 고르기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매우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부분을 몇 가지 골라 소개한다.


- 풀을 뜯어먹는 소처럼 독서하라.

천하의 이어령 선생도 책을 순서대로 chapter 1, chapter 2 순서대로 읽지 않고 그냥 손에 잡히는 페이지를 듬성듬성 읽는다. 재밌으면 읽고 없으면 버린다. 같이 평생 사는 와이프도 공유한 시절만 아는거지 풀스토리를 모르는데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고 그 세계를 아는 것이 아니다. 책 많이 읽고 쓴다고 크리에이티브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제 머리로 읽고 써야 된다.

이어령 선생의 수준은 아니지만 독서법은 비슷해서 기억에 남았다.


- 지혜의 시작은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

‘운을 읽는 변호사’라는 책을 쓴 일본의 변호사가 50년간 1만명의 의뢰인의 삶을 분석한 결과 ‘운은 하늘의 사랑과 귀여움을 받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 정의에 이어령 선생은 운이 나쁜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니, 태어난 것 자체가 엄청난 운을 타고난 것이라고 했고 일본 변호사의 정의도 결국은 운명론에 도달한다고 했다. 결정된 운이 7이면 내 몫의 3이 있는데 3은 바로 자유의지이다. 그렇기에 세상사 운명이 인생의 큰 흐름을 결정한다 하더라도 ‘내가 지는 건 운이 없어서’,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 나서’ 등으로 인생의 마디마디마다 자기가 책임지지 않고 운명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고약한 버릇이라고 했다. 세상은 대체로 실력대로 가고 있으며 그래서 그는 금수저 흙수저 논쟁을 좋아하지 않으며, 노력해봐야 소용없다는 자조를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이 부분은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완벽히 일치하는 부분이라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 바보처럼 살아라, 신념을 가진 사람을 경계하라.

이 부분은 무릎을 치며 읽었던 대목이라 원문을 길지만 가져왔다. 문화부 장관 시절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만들려고 하자 농림부, 동력자원부 장관들이 들고 일어나 문화부에만 전문학교 특권 준다고 반발했는데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이어령 선생에게 딱 5분 발언권을 줬고, 이것이 한예종 탄생 5분 비사가 되었다고 한다.


이어령 선생 왈 : “동자부장관, 당신이 그랬죠? 문화부에만 학교만드는 특권 주는게 말이 되냐고. 좋아요. 당신이 어린애 낳았는데 그 애가 기저귀 찬 채로 여기 파라 하면 석유 나오고 저기 파라 하면 가스 나오고, 그런 애가 있어요? 있으면 에너지 학교 만드세요,

농림부 장관! 당신이 어린애 낳았는데 여섯 살도 안된 애가 하루에 열 명이 심어야 할 모를 혼자 심으면 농림학교 만드세요.

그런데 문화 영역에서는 네 살짜리 모차르트와 피카소가 나와서 ”아버지, 그거 틀렸어요“ 하고 가르쳐요. 이런 천재들을 보통 애들처럼 길러서 대학 입학시키자고요? 그 사이 아이는 다 망가져요.

천재가 있으면 특별 교육시켜야 해요. 특권이 아니에요. 오히려 불쌍한 애들이지.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어 세상에 내보내기 전에, 쓸모를 못 찾은 놈에게 눈곱 하나 떼서 붙여주면 그 아이가 화가가 되고, 귀지 좀 후벼서 넣어주면 그 아이가 음악가가 되는거에요.

너 세상 나가면 쓸모없다 조롱받을 테니, 내 눈곱으로 미술 해 먹어라. 너 세상 나가면 이상한 놈이라고 왕따 당할테니 내 귀지로 음악해먹어라.

그게 예술가에요. 예술가들은 그 재능 빼면 세상 못 살아요. 아무것도 못해서 범죄자 돼요. 그러니 자비를 베풀라는 말이에요. 학교 만들어주는게 자비에요.”


이 발표 이후 만장일치로 한예종 설립이 결정 되었다고 한다.

예술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모든 아이들이 다 재능을 타고난다고 했다. 천재로 태어나서 둔재로 성장할 뿐이라고. 출생 이후로는 전부 남의 간섭과 보호를 받고 살다가, 점심 메뉴 하나 고르지 못하는 선택의 자유를 못 누리는 인간이 되고 있다고 했다.

저건 좌니까 빨갱이! 저건 우니까 꼴통! 요즘엔 생각도 좌우로 나눠서 정해준다. 이러한 현실에 변하지 않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 제일 무섭다. 그런 사람들이 육탄 테러하고 유대인을 죽였다.

진리를 다 깨우치고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더 이상 살 필요가 없다, 다 끝났으니. 10녀 전에 할 말 다하고 동어반복 하는 사람은 유언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죽음 전에 이미 죽어버린 사람이라고.

그렇게 이 책을 관통하는 큰 주제가 나왔다.

남의 신념대로 살지 마라. 방황하라. 길 잃은 양이 돼라. 존재하라. 부디 덮어놓고 살지 마라.


아이를 재우고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밤 12시가 되어서야 짬짬이 책을 펼칠 수 있었지만, 졸린 시각에도 오랜 스승이 나의 무딘 정신을 깨어있으라고 호통치는 책 같아서 오랜만에 잠도 잊은 채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오전  모임을 끝내고 부랴부랴 다음 약속 장소로 뛰어 갔다. 동네 화실 정기 수업을 신청했는데, 애기  이후로는 처음으로  드디어 나도 그림을 배워 보는구나, 첫번째 책은 실력없이 맨땅에 헤딩했는데,  번째 그림책은    그릴  있겠다 기대가 됐다. 한끼도  먹고 바삐 움직였는데, 마음이 벅차니 배고픈지도 몰랐다.


내가 참 복이 많아 이런 예쁜 딸도 얻고, 딸 덕에 휴직도 하고, 살면서 이런 충만한 시간도 가져 본다.

그렇게 또 깨닫는다. 육아란 한 여자가 아기를 만나면서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구나. 불균형한 때를 맞더라도 다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자체로 의미가 있겠구나. 엄마의 행복이 곧 건강한 양육태도로 이어지겠구나.

항상 고마워 내 딸. 오늘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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