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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Apr 10. 2022

출산일의 기록

노산일기


내 낙서장에 끄적거려 놓았던 글들을 거의 반년이 지나서야 저장소로 옮겨본다.

사람의 뇌는 신기하다. 아픈 기억은 빨리 잊혀진다.



2021/11/9 잠들지 않는 새벽, 유서같지 않은 유서


전치태반 비슷한 걸로 제왕절개를 하게 된 나는, 수술일을 앞두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남들 다 하는 수술인데 그래도 사람 일이라는게 무슨 일이 닥칠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니 겸사겸사 만일을 대비해 남편에게 편지를 남겼다. 늦은 나이에 남편을 만나게 되어 내가 꿈꿔오던 모든 일들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고, 내가 알뜰하지 못해 큰 돈을 모아두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20대부터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하며 조금이나마 벌어놓은 돈과 보험비 등을 아주 만일의 경우에 남편에게 양도한다는 내용이었다. 편지는 수술 직전 내가 수술에 들어가면 읽으라고 남편에게 건네주었다. 고마움과 행복감과 조금의 긴장감이 겹치면서 이상한 감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썼었는데 나중에 남편이 읽고는 남편도 울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른 지금, 돈 한 푼 없으면서 빚을 떠넘긴 거 아니나며 그 때의 편지를 돌이키며 웃곤 한다.



2021/11/9 제왕절개 수술일


오전 10시 병원에 도착했다.

긴장이 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고 겪어보지 않은 고통에 대해 상상하는 것은 진짜 공포 그 자체이다. 임산부 3대 수모?라는 수술부위 제모를 하고, 수액을 맞고, 항생제 알러지 테스트를 하고 수술대기실에 누워 있었다. 남편(보호자) 동행이 가능하고 긴장을 풀기 위해 시덥지 않은 얘기들을 나누며 마음 속 감사한 마음을 서로 나누었다.


병원에 입원을 해 본 적은 있지만 살과 내장을 찢는 수술은 처음이라 막상 수술을 앞두니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한 직장 동료는 큰 수술은 무조건 큰 병원에서 해야 한다며 서울대 병원을 다니고 있다는데, 나는 너무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그냥 '병원에서 배정해 주는 원장님'에 내 몸을 맡긴 건 아닌가? 그 동안의 진료는 120% 만족이었지만 막상 수술을 하려니 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 오랜 기간의 진료를 통해 원장님께 쌓인 신뢰를 기반으로 내 몸을 던진다.


12시 10분쯤 되었을까… 간호사 호출이 있었고 화장실을 다녀온 후 수술실로 입실.

침대는 간이 침대 같이 작고 약간 허름한 느낌도 있다. 수술용은 이런가보다. 마스크를 벗고 산소마스크를 끼고 새우 자세로 옆으로 누워 척추에 마취 주사를 맞았다. 따뜻하고 약간 저릿한 느낌이 하체를 타고 흘러내린다. 수술 전 의사께 수면마취를 물어보았는데 하반신 마취를 먼저하고 수술하는 것이 좀 더 안전하다고 하여 의사의 말에 따랐다. 알콜솜으로 수술 부위를 여러 번 닦으며 찬 느낌이 드냐고 물어보았고 점차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 시점이 되자 의사가 지금 꼬집고 있는데 느껴지냐고 물었는데 감각이 없었다. 수술 시작.

감각은 없는데 어느 부위를 만지고 있다 정도는 느낌? 칼로 자르는 걸로 알고 있는데 느낌상으로는 가위로 자르는 것 같다.


11/9 12:41pm 생명의 탄생


5분도 채 되지 않아 12시 41분 아기가 나왔다고 했고 잠시 뒤 귀여운 아이 울음 소리가 들렸다. 3.08키로이고 다 정상이라고 한다. 간호사분들이 긴급히 아이에게 조치를 한 뒤 아이 얼굴을 잠시 보여주었다. 꿈꿔왔던 이 순간, 사랑아, 고마워 나에게 와 주어서, 그리고 건강하게 태어나줘서. 혹시나 수술 중에 잘 못 되지 않을까 걱정이 있었는데, 한 생명이라도 살렸다 라는 생각으로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지면서 개복?이 된 채로 감정이 북받쳐서 엉엉 울었다.


나는 곧 잠에 빠져들었고 수술이 진행되었다. 열린 배를 닫는 수술은 40분 정도 걸린다고 했고 그 사이 아기는 남편을 만났나보다. 1시 20분쯤 수술이 끝나갈 무렵 나는 잠에서 깼고 곧 수술이 마무리되자 의사가 “어? 언제깼어요?”라며 수술 종료를 알려주었다. 1시 반쯤 수술실에서 침대에 누운채로 실려나왔고 사실 이때까진 고통이 없었다..


1인실이 없어서 우선 당일은 7인실에 묵기로 했다. 사실 20만원짜리 방이 있긴 했는데 방에 창문이 없어서 좀 좁지만 창이 있는 방을 가기 위해 하루 대기를 했다.

3시가 넘을 무렵 어라.. 마취가 풀린다..는 느낌이었고 의사선생님에게 이야기하자 이제 시작이라고 했다. 태반 아래에 있던 혈관은 생각보다 출혈이 많지 않았는데 자궁 수축이 거의 없어서 피가 좀 많이 났다고 했다. 꼼꼼히 꼬매긴 했지만 꼬매는 순간에도 자궁이 매우 말랑말랑 했다고 한다. 계속 약에 취해 비몽사몽 상태라 거의 대부분을 잠에 빠져 있었지만 고통이 시작되는 것은 느껴지고 있었다.


8시쯤 되자 아픔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고 자궁수축을 위해 배 위에 올려놓은 무거운 모래주머니 두 개는 고통을 가중시킨다. 간호원분들은 밤새도록 두시간 간격으로 혈압과 체온을 재고 항생제와 포도당을 투여했고 참다 못해 진통제 요청을 해서 주사도 추가로 맞았다. 페인버스터?라는 진통완화제가 보험이 안되어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맞았으나 야쿠자 칼맞은 느낌이 이런 것인가. 고작 10센치를 쨌다는데 아픔을 참을 수가 없다. 왜 수많은 블로거들은 제왕절개가 아프지 않다고 하는가? 정녕 제왕절개가 자연분만보다 덜 아픈 것인가?


밤잠을 이루지 못한 나는 계속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샜고 옆에서 쪽잠을 자는 남편은 불편한 와중에도 코를 골기 시작, 같은 병실의 나머지 환자들이 좀 신경이 쓰이면서도 웅크리고 자고 있는 남편이 안쓰러웠다. 그러나 미안한 마음은 새벽녁 모든 산모의 남편들이 코골이 3중창을 시작하면서 사라졌다. 친구들 왈, 원래 산부인과에서는 산모보다 남편들이 더 몸을 푼다고 한다... 7인실은 무료라서 사실 이 정도 퀄리티라면 있을만 하다 싶기는 했는데 보호자 공간이 너무 턱없이 좁고(침대 공간만 있음) 전화도 하기 눈치보일 정도로 조용해서 1인실로 옮기기는 해야할 것 같다 싶었다. 이 순간에도 돈 생각이 나다니 자본주의 만세다.


나는 늘 내 일이 3D라고 생각했는데 의사와 간호원분들의 강도높은 새벽 근무를 보며 내 일은 쉬운 편에 속하는구나 반성을 많이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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