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산일기
육아휴직에 들어가기 전, 개인 면담 자리에서 회사의 부사장(오너 아들)께서 말했다.
“혹시 돌아오기 싫으면 안 와도 돼요.”
“네? 저는 돌아와야 되는데요?”
“제가 7년간 사업을 하면서 직원들을 봤는데 모든 아기 엄마들이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러니 아이 낳기 전에는 장담하지 마세요. 나도 옵션을 생각해보는거에요. 안 돌아온다고 얘기한다고 저 상처 안받아요..”
본의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일개 직원인 내가 듣기에는 아기 엄마가 된 내 상황을 이해해준다는 생각보다는 돌아오지 말라는 얘기로 들렸다.
내 나이 올해 42. 회사를 다녀봐야 길어야 8년. 여자가 회사원의 신분을 50까지 유지하는 건 극히 희박한 확률이다. 정확한 통계지수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나마 여직원 비율이 50% 정도는 되는 내가 종사하는 이 업종도 50세 넘은 여직원 혹은 임원은 현재기준 5명이 채 안된다. 그것도 해외공장 근무자를 포함해서.
그나마도 여자임원이 꽤 많았던 우리 회사는 코로나로 한 번 휘청이면서 대량 해고에 들어갔고 살아남은 여자 임원은 거의 없었다.
살아생전 학점도 A+을 받기 쉽지 않았는데, S라는 고과를 이 회사에서 연속으로 받아봤더랬다. 나는 단 한 순간도 일을 소홀히 한 적이 없었는데 나에대한 평가의 편차가 때마다 다르다는 것은 고과라는 것이 내 실력 혹은 노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실은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이리라.
여전히 회사는 구조조정이 끝나지 않았고 어쨌든 평판 관리라는 것을 나쁘지 않게 해 온 이 회사에서도 조차 내 자리는 불안하다.
부사장은 며칠 전 같은 팀의 다른 직원에게 내가 복직을 언제하냐고 물었다고 한다. 나와 카톡을 자주하곤 했으면서 내 복직은 왜 다른 직원에게 묻는지 모르겠지만…(심지어 그 직원도 나에게 복직 시기를 물어보지 않았다)
얼마 전 같은 부서의 다른 팀 직원도 인원을 줄이라는 압박에 타 회사로 이직을 했다고 했다.
이런 저런 분위기로 내가 돌아가는 것을 환영받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으리라. 야근도 출장도 이젠 못할 것이라는 전제가 나를 더 움츠러들게한다.
내 삶을 갈아넣었던 직장이지만 그래도 내심 이곳은 그저 용돈받는 곳이라는 생각을 뿌리칠 수가 없다. 아니 그렇게 생각해야 내 속이 좀 편안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 삶이 이곳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내것이 아닌 곳이다.
빨리 내 것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한데 아직도 사춘기 소녀마냥 방황 중이니 이 순간을 즐기면서도 월급쟁이 삶, 마음이 불안한 건 어쩔 수가 없다.
시간이 참 빨리 간다. 더워죽겠다죽겠다 하면서 곧 추석이 오고, 또 친정과 시댁을 왔다갔다 하다 보면 어느새 선선해져 올 것이고, 그렇게 딸의 돌을 맞겠지. 그리곤 곧 복직의 날이 돌아오겠지.
두 손에 쥔게 없는 채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데,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1년의 시간은 길지는 않다.
(아기가 며칠 새 갑자기 확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