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산일기
딸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오랜 친구가 학부모 모임에서 알게 된 어떤 엄마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엄마의 딸이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지체장애가 있는 친구가 있는데, 요즘 그 친구 엄마 때문에 전학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사연인 즉, 장애 아이가 놀다 생긴 작은 상처가 났는데 아이가 표현을 제대로 못하다 보니 그 엄마 딸이 가해자라고 오해를 했다고 한다. 물론 오해는 잘 설명해서 풀수 있는 부분이었는데 그 엄마가 그간 장애아동을 키우면서 쌓였던 감정의 울분을 그 엄마에게 퍼붓는 바람에 감정의 골이 더 이상 메워지지 못하게 깊어져 버린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엄마의 요지는 이것이었다.
내가 장애아라고 신경 더 쓰고 더 잘 해주고 편견없이 대하려고 얼마나 애썼는데 고마운 줄 모르고 어떻게 나에게 이래!
사람이 호의를 베풀 때는 자신도 모르게 보답 받기를, 인정 받기를, 최소한 나에게 고마워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는 모양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차가운 인상과는 다르게 은근 남의 부탁 잘 거절하지 못하고 남 기분을 많이 살피는 편이라 누군가 나에게 기대 이하로 대하면 그러려니 싶은 일도 화가 많이 나는게 사실이다.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하신 이야기가 있다.
돈 거래는 하지 마라. 누가 빌려 달라고 하더라도 눈 귀 다 닫아라. 그래도 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면 안 받아도 되는 돈만큼만 주고 그리고 잊어라.
관계도 그러할까?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영화의 명대사가 일상에 스며든지 오래다.
실은 어제 딸 아이 어린이집을 통해 알게 된 우크라이나 엄마를 아주 오랜만에 만나 잠깐 커피 타임을 가졌는데 그 얘기를 친구에게 하다 시작된 얘기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엄마들이 모인 단톡방이 있는데 서울은 그나마 덜한데 아직도 지방에는 대놓고 혼혈아라고 따돌림을 하는 엄마들이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부산의 어느 곳에서는 괴롭힘을 당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공공연히 못 사는 나라라고도 했다고 한다.
지금의 어린이집이 갑작스럽게 문을 닫게 된 이유로 새로운 곳을 구하는 상황에서 아기가 장애도 있고 혼혈이다 보니 이런 저런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너무 두렵다고 한다.
나는 내 딸이 혼혈, 장애, 한부모 등등의 상황에 있는 아이들과 함께 섞여 그것을 특별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환경에서 자란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는데 현실은 조금은 다른가보다.
중학생 때 같은 반에 중증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친구가 있었다.
나의 학창시절만 해도 지금의 사고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공공연히 일어났었는데, 그 뇌성마비 친구는 장애 수준이 좀 높은 편이라 몸을 계속 떨고 말로 의사표현을 하기가 수월하지 않은 정도 였다.
어느 날 수업 시간에 알 수 없는 일로 짜증이 가득하던 국사 선생은 수업종료 종이 치자 분필을 던지며 그 친구를 향해
“야, 몸 좀 가만히 있어. 너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잖아!!”
(이것보다 좀 더 심한 말이었는데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라며 교실 문을 쾅 닫고 나갔다. 나는 너무 놀라 그 친구에게 달려 갔고 그 친구는 이미 울고 있었다.
“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러냐고…” 라고.
지금 돌이켜보면 장애학교 시설이 부족해서였는지 그 친구의 의지가 강해서였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어쨌든 글자도 하나 제대로 쓰기 어려웠던 그 친구는 끝까지 학업을 열심히 해서 꿈꾸던 전문대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생 때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정말 해 맑게 웃던 모습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지만 아직도 그 친구는 내 마음에 계속 남아 있다.
이젠 다들 먹고 살만 한데, 왜 이렇게 마음은 척박해지는걸까.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드는걸까.
5호선을 이용하는 나는 여전히 장애인 시위를 지지하지만, 공공연히 지지한다는 얘기를 꺼내기도 쉽지는 않은 세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