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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노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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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Feb 15. 2023

응급실을 가 보다.

노산일기

한 번을 그런 적이 없던 아기가 밤 11시경 자다 깨서 울기 시작하더니 몸을 비틀며 악을 지른다. 소아과에서 엑스레이 촬영 필요 없이 추적관찰만 하자고 했으나 내심 낙상 사고에 대해 마음이 쓰이던 차라 이거 뭔가 큰 일이 났구나 싶었다. 난생 처음 응급실을 가야겠다 싶었다.

남편은 접대 자리가 있어 술을 먹고 잠들었기에 도움이 안되겠다 싶어(어차피 다시 잠들었..) 동네에 있는 큰 병원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그런데 웬걸 응급실 간호사로 보이는 분이 아주 건조한 목소리로(사실 쌀쌀 맞았지만 업무 특성을 이해해야 함) 아동진료 가능한 분들은 다 퇴근하여 진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이런 경우도 있구나). 그럼 어쩌냐 했더니 119에 전화해서 진료 가능한 병원 문의를 하라고 한다.

일전에 이용해 본 119 의료 상담을 통해 15개월 여아 응급진료가 가능한 병원 리스트를 문자로 받았다.

제일 가기 편한 곳이 아산병원이구나. 그런데 한 10초간 고민을 한 이유는 무슨 장이라도 꼬인 마냥 악을 지르며 울던 아기가 집 밖을 나오자 눈물을 뚝 그치고 세상 궁금한 눈으로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온 김에 마음의 찝찝함은 정리하고 가자 싶어 아산병원으로 향했다. 아동응급진료실은 만석이라 말 그대로 응급한 상태의 순위에 따라 진료를 진행 중이었기에 우리 딸처럼 의식이 있는 환자들은 대기를 30분 정도 한 것 같다. 접수 코너에서 보호자 명패와 환자 팔에 채울 종이 팔찌를 주었는데 팔찌를 내가 찼다고 다시 받아오기도 했다.

1차 진료에서 지난 주말의 여러 사고들과 열병으로 인한 열꽃 증상들에 대해 설명 및 궁금한 점을 문의 하였고 엑스레이를 찍고 싶다고 했다(아주 필요하지는 않아 보였지만).

그리하여 딸의 인생 첫 엑스레이 촬영이 진행되었고 그 또한 세상 재밌는 표정으로 방긋방긋 웃으며 임해주었다. 딱히 몸에 좋지 않을 것 같지만 만일 모를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엑스레이 촬영 후 대기가 좀 길어지고 상황 파악 안되고 신이 난 아기를 앉혔다 일으켰다 안았다를 반복하니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한참 지났을까 이름 호출이 되었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엑스레이 상 두부 골절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엑스레이로 보이지 않는 CT 촬영으로만 확인이 가는한 내부 출혈이 있을 수 있겠으나 만일 그랬다면 지금쯤 사단이 났을거라고 했다. 열꽃이 몸 안의 바이러스에 의해 발진이 일어나는 것인데 피부 뿐만 아니고 장에도 침투할 수 있기 때문에 배가 좀 아프다고 느낄수는 있다고 했다. 그러나 모두 매우 아프다기 보단 그냥 짜증이 나는 정도의 것일 거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우리 집 환자는 중증 꾀병으로 판정이 났고 응급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보험 적용의 대상이 되지 못해 병원비가 15만원 가까이 나왔다. 거기에 왕복 택시비까지. 이건 반드시 기재해서 나중에 해당 시점의 화폐 가치를 감안하여 청구할 예정이다.

돌아오며 곰곰히 생각해 보니 우리 딸이 순한 것 같기는 한데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이나 원하는 것이 있을 때 마음대로 안되면 성질이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리고 머리가 크면서 가족 구성원 중 엄마는 본인 성질머리를 다 내놓아도 되는 만만한 사람으로 인식 중인 듯 하다.

크게 아프지 않아 마음은 놓았지만 성질머리 치료를 위해 앞으로 외할머니집에 유학을 좀 보내는 것도 고려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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