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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노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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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Mar 01. 2023

드디어 복직

노산일기

복직 전 마지막 한 달은 기존 어린이집 폐업으로 인한 새로운 어린이집 적응과 낙상 사고, 수족구, 감기 등의 병으로 등원을 절반 가량 하지 못한 탓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기와 껌딱지 생활을 하게 되었다.


복직을 한 주 앞두고는 갑자기 마음이 너무 불안하여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하원 도우미를 구해놓지 않았는데 과연 아기가 11시간에 달하는 어린이집 생활을 견딜 수 있을지, 갑작스럽게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할지, 양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나로서는 어디 손 벌릴데가 없어 마음이 급해졌다. 허울좋은 서울시 아기돌봄 서비스는 6개월 이상 대기를 해도 도우미 배정이 되지 않는다. 아이가 없어서 난리인 이 시대에도 수요가 많아서 공급이 어렵다는 답변만 받는다. 대책이 없냐니 한 달 마다 1점씩 가점이 붙는다고 한다.


급한 마음에 어린이집을 통해 알게 된 전업맘, 직장맘, 그리고 독서 모임을 통해 친해진 동네 아줌마들을 일주일 내내 돌아가며 만나 도움을 구하였다. 직장맘은 나와 상황이 같은지라 혹시나 휴가를 쓰게 될 때 서로 도움을 주기로 하였고, 동네 아줌마들은 장기적으로는 어렵지만 급작스럽게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내밀어주겠다고 했다. 전업맘 우크라이나 친구는 만약 필요하다면 하원 도우미를 해 주겠다고 했다. 본인도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상황이니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하면 남편도 좋아할 것이라고 했다.


어쨌든 그들의 손길이 모여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고 그덕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근을 할 수 있었다. 회사의 업무는 여전한 듯 다른 듯 했지만 휴직 전의 매출보다 40%가 급감한 탓에 분위기가 영 좋지 않다. 동종업계가 다 똑같은 상황이라고 하는데 인건비 비중이 높은 업계 특성상 매출이 빠지면 직원의 자리보전이 어려운 것이 사실, 복직자로서 내심 눈치가 보인다.


고작 1년의 시간이고 나름 휴직 기간동안 페이스를 잃지 않으려 열심히 활동을 했지만 그래도 긴장감의 차이는 확연한지 막상 자리에 앉아 지난 자료들을 보는데 뇌에 기름이 낀 듯 눈과 머리에 잘 들어오지를 않는다.


이자부담이 있는 시국이다보니 남편은 나의 복직이 반가운 모양이다. 둘째 셋째 노래를 부르던 양반도 현실에서는 지갑 사정이 더 앞서나보다.


영업부서의 한 부서장이 점심을 같이 하자고 해서 둘이 함께 식당을 가게 되었는데 복직축하인가 했더니 이전에 나와 같은 부서였던 어떤 부서원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물어보고 싶었나보다.

그녀는 현재 단축근무를 쓰고 있고 매출이 없어진 타 부서에서 해당 부서장의 부서로 전배를 하게 된 모양인데, 해당 부서의 부서원들이 모두 반대를 하는 듯 했다. 예전의 내 부서에서도 겪었던 일이지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절반의 일만 한다는 것은 사실 그 나머지 일을 다른 부서원들에게 전가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에 단축근무자를 부서원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것 충분히 이해가 된다. 반면 나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된 입장에서, 출산율이 이렇게나 낮다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으면서 내 스스로가 일과 육아의 병행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할 것인지 답을 내릴 수가 없다.


이틀의 회사생활을 보내고 하루의 휴일을 보내고 있다. 나름 신경을 곤두세웠는지 어제는 퇴근 후 아기를 재운다고 하는 것이 화장도 지우지 않은 채 내가 먼저 깊은 잠에 빠져버려 새벽 세 시에 황급히 일어나 샤워를 했다. 북유럽의 어느 국가는 이미 주 4일 근무를 하고 있다는데, 내가 꿈꾸는 수/토/일 휴일제라고 한다. 자원팔아 넉넉히 살아갈 수 있게 좋은 땅 선점한 그들의 선조 덕이지.


아기 낮잠을 재워놓고 책을 폈는데 눈에 글자는 안들어오고 머릿속에 앞으로 10년 안쪽의 직장 생활 계획을 어떻게 할지 구상 중인 한국의 제조업 종사자는 배가 아프다. 그래도 목숨을 걸고 나라 지켜낸 조상님들께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리는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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