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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Mar 14. 2023

워킹맘이 되다

노산일기

아침 6시 반 기상.

아기 저녁밥 도시락을 준비한다. 아직 이유식을 마무리하지 못해서 이유식도 밥과 죽의 그 중간쯤의 한우듬뿍 볶음죽(?)에 생선을 비롯한 한 두가지 반찬, 과일, 우유를 담는다. 깨끗한 손수건, 타올, 턱받이를 챙겨 넣고 끝날 줄 모르는 잔병치레에 일종의 후식 음료수가 되어 버린 약도 용량에 맞춰 담는다.


커피보다는 카페인 드링크에 가까운 얼음동동 커피 원샷으로 정신을 깨우고 성질 급한게 부모 저리 가라 싶은 아기의 성미를 맞추기 위해 분유도 미리 담아 놓는다(분유도 아직 떼지 않았다).


씻고 화장하고 옷입고 출근 가방 싸고 내 아침도 챙겨넣고 대충 마무리할 즈음이면 기척이 들려온다. 7시 정도면 잠에서 깨는 아기니 이 모든 걸 30-40분 안에 해치워야 한다.


아기 등원복 입히고 기저귀 갈고 분유 먹이고 간식 먹이고 기분 좋은 하루 보내라고 아침에 조금 놀아주고 등등 별일 아닌 일에 한시간을 끈다. 도망가고 잡고 징징대는 거 달래고가 주요 일과다.


새로운 어린이집으로 바꾼 이후 아침마다 아기는 운다. 다른 엄마들은 마음이 찢어진다는데 나는 그런 감성적인 엄마는 아닌지 빨리 회사로 뛰어가 아아 한잔 더 마셔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어차피 나보다 선생님이 더 잘 놀아줄것이다.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1세반을 가지 않고 0세 반에 머무르기로 한 것은 신의 한 수 였다. 반 친구라고는 7개월짜리 아기 한 명 밖에 없는데 그나마도 절반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완전 1:1 보육을 받고 있는데 선생님도 꼼꼼하고 친절하셔서 역시 너는 복을 타고났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며칠 안 된 것 같은데 복직한지 벌써 2주가 지났다. 이제 업무 적응 하셨죠? 라는 말을 시작으로 업무와 관련 질문들이 쏟아질 때를 기다리는 마음이 초조하기 짝이 없다.


1년 반만에 돌아온 회사는 직원 퇴사가 줄줄이 이어져 해외지사는 아는 사람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지경이다. 기존 직원을 정리하고 원하는 급여 테이블에 맞춰 새로운 직원을 고용했는데 일에 히스토리가 다 끊겨버려 똑같은 일도 진행하기가 더 힘이 들어졌다.


2주간 맡은 회장 보고 자료들은 온통 직원 정리 관련 내용들이다. 오더가 줄은 만큼 그에 비례하여 직원을 정리하겠다는 생각인데 직원이 돈으로 연결되는 그 마음 충분히 이해가 되면서도 그 대상에 나도 포함된다는 사실이 불안하고 씁쓸하다. 아기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일하는 것이 1차 목표라고 했더니 부서장이 그렇게 오래 일할 수 있을 것 같냐며 피식 웃었다. 미래가 없는 회사에 미래가 없는 직원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보내는 이상 돌림병을 달고 사는 것은 그러려니 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6시면 문을 닫는 소아과 진료는 복직한지 얼마되지 않은 나에게는 벅찬 일이다. 다행히 요즘 일이 덜 바빠진 남편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2주를 달고 있던 감기가 이제 좀 낫나 싶더니 날이 따뜻해진 지난 토요일 올림픽 공원에서 너무 오래 있었던 때문인지 다시 심해져서 기관지염으로까지 번졌다. 아기의 감기는 남편에게로 옮겨갔고 원래 기관지가 약한 남편은 더욱 기침이 심하다. 어린이집 돌림병은 가족 내에서도 2차 돌림병이다. 나는 다행히 남편 약을 며칠 먹었더니 빨리 호전이 되었다.


아기 걱정보다 회사 걱정이 더 깊은 요즘이다. 늦은 나이에 워킹맘이 되다 보니 돈 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 마음을 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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