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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Apr 06. 2023

대인관계가 어려운 43살

노산일기

복직한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아직도 나의 job이 무엇인지 애매모호한 타인의 업무경계 선에서 깍두기 마냥 상시로 던져지는 일들을 급하게 쳐내고 있는 중이다. 그 와중에도 오너 일가 수신의 보고서 작성 업무가 99%라 오너의 보고서 제출 기한은 늘 오늘까지이니 나는 그보다도 더 이른 오후 6시가 마감시간이다. 싱글일때는 머리도 식혀가며 자료도 두번세번 검토하며 야근을 일상처럼 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어찌나 모니터에 들어갈듯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자료를 작성했는지 이틀째 눈에 실핏줄이 터진채 퇴근을 하고 있다. 성격 괴팍한 회장님이 보고서를 언제 볼지 언제 다급하게 부를지 모르니 화장실도 제대로 못간다. 회사에서의 긴장의 끈은 집에 와서도 풀리지가 않아서 최근에는 또다시 잠을 잘 못 이루게 되었다. 머리도 복잡하다.


회사에 없던 자료를 바닥부터 만들었기 때문에 일과 자료에 대한 애착이 강해져서인지 1년 6개월만에 돌아온 현재에 모든 자료가 남의 업무가 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속이 상했다. 그리고 그 업무는 다시 하지 말고 새로운 일을 찾아보라는 지시에 막막함도 몰려온다. 꼭 회사를 그만둬야 경력단절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구나 새삼 깨닫는다.


고작 한 달 동안 나에 대한 동료들의 여러 평가를 듣게 되었다. 성격이 지랄맞다는 평이 있다. 회사가 인수되기 전의 임원들에게 예쁨을 받아 혜택을 많이 봤었다는 평이 있다. 의욕이 너무 강해서 같이 일하기가 불편하다는 평이 있다. 너무 일을 앞서하면 상대적으로 남들이 일을 못하는 것처럼 보이니 적당히 해라.

솔직한 심정으로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 것 절반에 복직한지 꼴랑 한 달 된 사람한테 이게 지금 무슨 개소리지? 하는 마음이 절반이었다. 성질을 있는 대로 보여줬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그래 그렇게 생각한다 이거지? 지금 오너한테도 예쁨 받아봐? 하는 생각이 끓어오르기도 했다. 곧장 아니야 나는 아이의 엄마다, 가정에 충실하자 라며 부글거리는 감정을 스스로 찬물을 부어 식하기는 했지만.

간간히 단축근무나 둘째 계획을 물어보기도 하는데 그 말들이 곧이 곧대로 들리지 않는 것은 내 배알이 꼬여있기 때문이겠지.


점심시간만은 밥을 좀 편안히 먹고 싶은데 또 누가 이러더라 저러더라 혹은 연봉이 어떻다 저떻다 얘기에 좀 속이 불편해져서 말을 꺼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본인과 가장 조건이 잘 맞는 회사 아닌가요.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위치든 급여든 업무량이든 본인이 생각하기에 뭔가 메리트가 있으니 현재의 자리에 머무르는것일꺼고 만약 그게 아니면 떠나면 되는 거죠. 모든 것이 안 맞는데 떠날수 없다면 능력이든 의지이든 본인의 문제일꺼고.

저는 회사에서 받는 월급, 그 밥 값을 할 뿐이에요. 회사와 직원은 친구나 친인척 관계가 아니라 단순 계약 관계 잖아요. 일과 돈을 교환하는. 저는 입사 이래 최소 연봉 세 배는 회사에 벌어다준다를 일의 목표로 해 왔어요. 일도 바쁜데 고용주 눈치까지 보고 싶지 않아요.

빈정거리는 웃음을 보고난 뒤에야 아 내가 이래서 좋은 소리 못 듣는구나 싶었다. 입이 방정이다.


난 진심으로 아이의 미래가 하나도 걱정이 안된다. 내가 잘 살면 아이도 잘 살게 되어 있다. 내가 아이의 좋은 모델이 되고 있는지가 제일 걱정이다. 일도 가정도 잘 꾸리는 멋진 워킹맘이라는 환상 이전에 대인관계부터 어려운 엄마다.


내일 아침에도 빨리 아기 던져놓고 정글로 출근해서 오늘 마무리 못한 보고자료를 부랴부랴 준비해야 하는데, 아직도 밤을 잊은 그대 모드라니. 휴.


속 갑갑해서 털어놓는 나의 대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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