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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shot Jul 12. 2017

초복(初伏)단상

삼계탕과 수박, 그거 ‘보신 자위(masturbation)’아닙니까?

7월 12일 점심 시간, 메밀국수를 먹기 위해 체부동 쪽으로 나섰다. 수송동이나 중학동 등사무실 밀집지역에 비해 덜 붐벼서 좋아하는 동네인데, 삼계탕으로 유명한 식당 앞에 평소보다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아, 초복 이구나'. 절기를 따져 음식을 챙기는데 무심한 편이라 줄 선 사람들과 방송사, 신문사의 취재 카메라들을 보고서야 알았다. 이 삼계탕 집은 사시 사철 유명세가 있는 집이지만, 복날이면 유독 문전성시를 이룬다. 좁은 골목길에 일렬로 형성된 줄이전형적인 '그림'이 되기 때문에 취재진들이 몰려오고, 제작된 뉴스를 보고 '대표 삼계탕 집'이미지는 공고화 되는 구조다.


반복됨을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게 미디어의속성이라지만, 이 가게 앞 사진만은 예외인가 보다. 적어도 10년 이상, 매년 이맘때면 같은 장소에서 촬영된 이미지가 신문과 방송에 나온다.

매년 복날이면 사진영상 미디어의 성지가 되는 체부동 토속촌 (출처 : 연합뉴스 https://goo.gl/qoPG9Y)


'보신(補身)을 갈구하는 피로한 현대인들의 집합'을 이만큼 잘 표현할 수 있는 아이콘을찾기 힘들다는데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과연 현대인들에게 별도의 보신 음식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남는다.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삼계탕은 분명 특별한 보양식이었을 것이다.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을 든든하게 공급해 줘 영양부족 상태를 일시적으로나마 개선해 주고 더운 한 철을 버틸 자신감을 불어넣었을테다. 이 맥락에서 보면 개고기를 식용했던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무더위 속에서 입장을 기다리며 땀 흘리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영양 과잉 상태로 보인다. '그들은 식당에 들어가 땀을 뻘뻘 흘리며 공장형 양계 닭으로 고아 만든 탕을 먹겠지' 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헛웃음이 났다. ‘보신 자위(masturbation)’라고 부르면 너무 잔인할까? 어쨌든 그들 나름대로 절기에 맞는 의식을 치르고자 하는 모습인데, 디테일을 따져 보면 고착된 생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못하는 모습들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현대 도시인이 절기 음식을 챙겨먹는 것이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는 아내는 점심으로 김치찌개를 먹었단다. 사무실에 돌아와 보니 거래처에서 초복을 챙긴다며 거대한 수박을 놓고 갔단다. 이 또한 아내가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래 12년 넘게 반복된 일이다. 모를 일이지만, 따지고 보면 창사 이래 이어진 유구한 전통일 것이다. 더 웃기는것은, 수박을 먹고 싶어하는 누구도 칼질에 나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손이남는 누군가가 수박을 썰고 다 함께 먹자며 사람들을 불러모으면 될 일이지만, 오후에 가장 바쁜 아내나 막내 여사원의 뒤를 어슬렁대며 “우리 수박 언제 먹지?”라고중얼대는 팀장과 부장의 의식 구조는 쉬이 재단할 수 없다. 스스로 수박을 썰면 ‘가오’가 빠진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저 수박을 반드시 오늘 먹어야만 한여름을 버텨 낼 만큼 보신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말이다. 공교롭게도 두 인물은 영양 과잉의 대표 질병인 당뇨를 앓고 있다. 수박을 썰 만큼의 활동도 하지 않는 습성이니, 쌓이고 쌓여서 당뇨가 오지 않았을까 싶다.


푸석푸석하게 낡아 버린 콘크리트 덩어리 같은 생각의 틀 밖으로 한걸음 내디뎌 보면 어떨까? 전제는 대략 이렇다. 첫째, 우리 대부분은 평소에 잘 먹고 있고, 많이 먹고 있다. 둘째, 그옛날의 풀어 키우던 건강한 닭과 복날에 맞춰 케이지에서 찍어 낸 닭은 다르다. 셋째, 농경 시대이자 영양 부족의 시대를 살던 선조들이 최소한의 건강을 위해 챙기던 복날은 현대에 이르러 농축산 마케터와 일부 식당들의 프로파간다(propaganda) 소재가 돼 버렸다. 여하튼 구태여 챙길 필요 없는 것을 매뉴얼처럼 꾸역꾸역 소화해 내는 모습들이 부담스러울 따름이다. 


쭈쭈바나 하나씩 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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