뗏목

첫 태아를 놓친 뒤 다시 들은 임신 소식은 뗏목 같았다

by moonshot
혈이 비치네


2017년 3월 21일, 메신저에 찍힌 다섯 글자에 아내의 깊은 한숨이 묻어났다. 서로에게 반복 학습된 실망이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아픔이기도 했다.


어느덧 결혼 6주년을 앞두고 있었는데, 아이를 갖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큰 맘먹고 진행한 시험관 수정란 이식술 8일 후의 일이라 마음에 돌덩이 하나가 더 얹어지는 듯했다.


“괜찮아, 절반 이하만 성공한다잖아. 그래도 인공수정 때처럼 매번 과 배란 주사는 맞지 않아도 되니까 힘내자”.


위로랍시고 뱉어 놓고 보니 궁색했지만, 달리 할 수 있는 얘기도 없었다. 확률 얘기를 하고 보니 일정도 잡히지 않은 다음 시술은 또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걱정이 앞섰다.


“두 줄이야”.


몇 시간 뒤 믿기 어려운 네 글자가 메신저를 타고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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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어떻게 된 거야? 아까는 혈이 비친다면서? 와, 근데 이거 정말 안 믿긴다, 하하하!”.


정말 크게 웃고 싶었지만 회사라서 입 꼬리만 양껏 끌어올리며 메신저에 답했다. 아내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동료 기혼 여성에게 임신 테스트기를 빌렸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그분은 얼마 전 청둥오리 꿈을 꿨다며 테스트기를 빌려 주는 틈에 , 선배(아내)가 아이를 가졌을 거라 확신했단다. 우연 치고는 묘한 일이다.


30대 초반에 결혼한 우리는 임신을 서두르지 않았었다. 초반에는 의도적으로 회피했다는 편이 맞겠다. 둘 다 보통 이상의 급여를 받고 있었지만, 모아 놓은 것도 변변치 않았고 양가로부터 지원받은 것 없이 대출 낀 열다섯 평 남짓한 다세대 주택에서 전세 살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 계획은 나름 체계적이었다. 2~3년 뒤 좀 더 나은 주거 공간을 확보하고 둘의 수입도 오를 때쯤 아이를 가진다면 우리 모두가 더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마이크 타이슨이 그랬다지. “누구나 얼굴에 한 대 맞기 전 까지는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라고. 신혼 첫 집에 3년 정도 살았는데, 마지막 반년 정도 임신을 시도했지만 좀처럼 잘 되지 않았다. 타이슨급 핵펀치는 아니었지만, 잔 주먹을 맞아 나타나는 펀치 드렁크 현상처럼 초조함이 덮쳐 왔다.


초조함이 버무려진 불안감은 일상 속을 촘촘히 파고들었다. 길을 걷다 마주치는 갓난아기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맞닥뜨린 육아 프로그램들, 차를 타고 이동하다 보게 되는 육아 용품 전람회 광고판 같은 것들에도 괜스레 마음 한구석이 푹푹 꺼지는 것 같았다. 양가 부모님은 이런 심정을 알고 임신 계획에 관해 언급하기를 자제하셨지만, 명절에 만나는 친척 어른들의 무심한 안부 인사까지 어찌할 순 없었다.


“좋은 소식 없냐?”는 관용구만 들어도 속에서 바늘이 돋기 일쑤였다. 아이가 있는 친구들과의 만남도 자연스레 잦아들었다. 병원에서 둘의 신체 상태는 정상이라고 했지만, 결과로 증명되지 않는 판정 속에서 우리는 섬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첫 태아를 놓친 뒤 다시 들은 임신 소식은 뗏목 같았다. 조금 불안하지만 스스로 만든 고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으로써의 뗏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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