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된 아기에게 문득 “안녕?”이라고 묻고 싶다
신혼 첫 집을 떠나 두 번째 집으로 이사한 지 4개월쯤 되던 9월의 어느 날, 우리는 첫 임신을 확인했다. 결혼식 이후 3년 5개월 만이었고, 병원에서는 5주 차라고 했다. 그에 한 달 앞서 식구가 늘어도 넉넉하게 탈 만한 새 차를 샀고, 처제가 먼저 낳은 조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어떤 육아 용품을 물려받으면 좋겠다는 둥, 초기 임산부가 챙겨 먹어야 할 영양소는 무엇이라는 둥 소소한 이야기에 기뻐했다. 정부가 주는 50만 원 정도의 바우처인 ‘고운맘 카드’도 받았다. 유리 지갑 신세로 늘 털리기만 하는 것 같았는데, 국가로부터 대접받는 기분은 낯설었다. 주워듣기로는 촌스러운 이름의 아이가 명이 길고 무탈하대서 그런 류의 태명을 일찌감치 붙였다. ‘예쁘게 좀 짓지’라는 가벼운 타박도 있었지만, 우리끼리는 그 이름을 부르며 많이 웃었다.
날 좋은 가을이어서인지, 산부인과 검진 예약이 돼 있는 10월 중순의 어느 날도 가 봐야 할 예식장이 두 곳이었다. 오전 10 시에진료 예약을 해 뒀으니 안정해야 할 산모를 집에 데려다 놓고 한 시간 간격의 예식장을 순차적으로 들를 참이었다.
주말의 산부인과는 ‘저 출산 사회’가 어느 나라 이야기인지 싶을 정도로 붐볐다. 예약 시간을 한참 넘어서 진료실에 들어갔던 아내가 굳은 표정으로 나를 불러들였다.
의사 선생님은 “태아 심장이 뛰질 않습니다”라고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우리 둘은 거짓말처럼 담담하게 뒤이은 설명을 듣고 있었다. 듣는 시늉을 하며 넋이 나가 있었다는 편이 맞겠다.
와중에 낯선 한 단어는 온 신경을 자극했다. ‘소파술’. 뱃속에서 심장이 멎어 버린 촌스런 태명의 아이는 이제 모체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무기로 변했고, 수술을 통해 긁어내야 한다는 통보였다. 의사는 집으로 돌아가서 가급적 이른 수술 날짜를 확보해 보라고 했다. 아내의 작은 손을 잡고 산부인과를 나서는데 초현실적으로 맑은 하늘을 가르고 햇살이 내리쪼였다.
주차장으로 가던 길 가에서 아내가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그런 아내를 안고 나도 한참을 소리 내 울었다. 입으로는 “괜찮아, 아이는 다시 가지면 되는 거고 네가 건강해야지”라고 했지만, 그렇게 눈물범벅이 된 내 얼굴이 위로가 될 리 만무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울었고, 도착해서도 몇 번을 부둥켜안고 울었는지 모른다. 어떤 부연 설명도 하지 못한 채 두 결혼식에 참석하는 지인들에게 축의금을 부탁했다. 축복과 비극이 뒤범벅되어 혼잡한 마음을 뒤 흔들어 놨다.
소파술을 받고 회복실에 눕는 아내가 처연해 손에 진땀이 났다. 머리는 하얗게 샐 것 같았다. 공교롭게도 옆 회복실에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낙태를 한 것 같은 젊은 여성이 아파하고 있었다. 남자 친구로 보이는 사람은 안절부절못했고, 그의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 여성은 쌀쌀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금세 자리를 떠났다. 아이를 잃은 두 여자의 아픔이 한눈에 들어와 무기력함이 방안 가득 채워졌다.
밤에는 슬픔을 위로하러 와 주신 장인 장모와 또 한 번 소리 내 울었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은 얘긴데, 무슨 상황에도 눈물 한 방울 안 보이던 내가 그렇게 울어서 무척 놀랐단다. 돌이켜 봐도 비현실성으로 뒤범벅된 하루였다. 별이 된 아기에게 문득 “안녕?”이라고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