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명한 기준, 복잡한 현실

"당신의 가난을 증명하세요"

by moonshot

처음 만났던 태아를 허무하게 떠나보내고 한방과 양방을 넘나들었다. 무엇보다 소파술을 겪은 모체가 걱정됐는데, 육체적 무리에 심적 고통이 덧대어져 슬럼프가 길어 질까 두려웠다.


양방이나 한방 모두 ‘자연 임신을 했었으니 걱정할 것 없다’, ‘유산 경험 비율은 10%가 넘을 만큼 특별한 상황은 아니다’, ‘마음가짐이 편해야 한다’와 같은 조언을 내놓았다. 현실에 비춰봤을 때 가장 비현실적인 조언은 ‘마음을 편히 가지라’ 는 것이었다. 전세 난민 신세라도 벗어나려면 몇 년은 맞벌이 생활을 해야 할 텐데, 아내나 나나 일과 내내 몇 번이고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직업을 갖고 있는 터였다. 두 어 번의 정밀 검사를 해 봤지만, 둘 다 정상 범주라는 진단을 받고 허무함만 보태 졌다. 이후 2년이 넘도록 임신이 되지 않자 ‘그냥 포기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논리성이 뒷받침된 상황이 아니다 보니 우리 둘은 나름의 가설을 세우고 인과관계를 따지게 됐다.


‘우리는 꼭 자녀를 필요로 하는가?’, ‘만약 아이를 가진다 했을 때, 행복하게 잘 키울 수 있을 것인 것?’, ‘헬조선에서 생존하려면 부모의 ‘노~~~~~오력’은 얼마만큼이나 뒷받침돼야 하나’ 등이 주제가 됐다.


결혼 초기에는 ‘아이가 생기면 축복이고, 없으면 그 또한 둘의 인생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이니 어쨌거나 행복할 것’이라는데 의견이 모였었다. 하지만 유산을 경험한 뒤로 아내는 다시 임신하겠다는 강한 본능을 가진 것 같았다. 나는 “같이 여러 수단을 써 보며 노력해보자. 잘 될 거라 생각하지만, 설령 안 된다고 해도 둘이서 충분히 행복하지 않겠니”라고 이야기했지만, 조금은 도망가고 싶었음을 고백한다.


난임 2년을 전후해 전문 클리닉을 찾았다. 두 번의 인공수정을 시도하는 동안 아내는 과 배란 호르몬 주사에 무척 힘들어했다. 약에 대한 감수성이 높은 편이었고, 투약 기간에는 갑자기 화를 심하게 내기도 해 소리를 지르며 다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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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생활을 하며 이 과정을 소화하는 것은 꽤 비인간적이고 때론 실망스러웠다. ‘출산 장려’ 구호 속에서도 임신 의지를 갖고 호르몬 투여를 해 잔뜩 곤두선 여성 직장인이 받을 수 있는 정책적 배려는 없었다. 내 집 한 칸 없지만 맞벌이 직장인이기 때문에 2인 가구 소득 기준에 걸려 시술에 대한 국가 지원은 최소치였다. 이마저 직접 보건소를 방문해 종이 서류에 날인을 받아야 가능했는데, 맞벌이 직장인이라면 반차 휴가를 내지 않고서는 도리가 없었다.


증여 등으로 고가의 자가 주택을 보유했지만 중위 정도의 가구 소득을 올리고, 아내가 전업 주부인 가구라면 훨씬 많은 국가 지원과 편의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억울한 기분마저 들었다.


아무튼 실패로 끝난 인공수정 과정에 새치가 늘었고 신경질 지수가 높아졌다. 내외가 하루 열 시간 정도씩 일터에서 부대끼고, 시술 과정에서도 온갖 자구책을 동원해야 하니 이 상황에서 애가 들어서는 것도 참 용한 일이겠다 싶었다. 이후 시험관 시술에 도전했고, 천만다행으로 한 번에 성공했다. 물론 최저 지원 테이블에 해당됐고, 몫 돈을 지출해 가계부에는 찬 바람이 불었다. 드러난 수입보다는 출산 의지와 종합적인 가계 수준에 정부가 좀 더 민감하게 반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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