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해 비빌 언덕은 태몽뿐이었다. 나는 나약했다.
아내의 회사 동료가 임신 4주 차에 청둥오리 꿈을 꿨다는 이야기를 한 이후 ‘태몽 러시’가 이어졌다. 아내는 6주 차에 새끼 오리 다섯 마리와 귤 두 봉지를 안은 꿈을 꿨고, 곧이어 바구니 하나에 오리 알과 새끼 오리를 가득 담은 꿈도 꿨다. 며칠 뒤 꿈에서는 윤기 자르르한 멋진 말과 함께 배를 탔고, 이후에는 큰 뿔이 달린 사슴벌레가 등장하기도 했단다.
시험관 시술을 하면 쌍둥이를 가질 확률이 높다더니, 그래서 꿈을 여러 번 꾸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리둥절해하며 임신 확인 진단을 위해 병원에서 채혈을 했는데, 호르몬 수치도 무척 높게 나와 정말 다태아 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진단 결과는 단태아로 나왔다. 둘이면 감당이 될까 조금은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살짝 김이 샜다.
아무래도 지난번 계류 유산의 트라우마가 남아 있어서 양가 부모님께는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은 터였다. 그런데 안부 차 연락 드린 전화기 너머로 모친의 서운해하며 따지는 듯한 사투리가 들려왔다.
“어이 아들, 니 와 내한테 아 가진 거 이야기 안 하노?”.
헐~. 장모님과 처제, 여동생, 이렇게 셋에게 만 우연한 기회에 먼저 얘길 했었는데, 여동생이 참지 못하고 친정 엄마에게 일렀나 싶었다. 물어보니 모친은 본인 나름 태몽이다 싶은 꿈을 며칠 전에 꾼 터였단다. 큰 무를 봤다며 성별까지 넘겨짚고 계셨다.
맙소사! 하는 수없이 모친에게는 예정보다 일찍 임신 사실을 밝혔고, 부친께는 안정기에 접어들면 알려 드리기로 했다.
짧은 기간에 ‘꿈 폭탄’을 맞다 보니 태몽이라는 게 허상이 아니 구나 싶어 지며 꽤 진지한 궁금증도 생겨났다. 이를테면 꿈이 아이의 인생을 일정 부분 반영해 줄까 라든지, 산모를 대신해 태몽을 꿔 줄 수 있는 주변 인물의 범주는 어디까지 인지 등등 잡다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미국인 친구는 “일부 사람들이 태몽에 관심을 갖고 있겠지만,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믿음은 아니”라고 했다. 한국 생활 10년 차를 넘긴 하얼빈 출신의 중국인 친구는 “그런 문화가 있다”라고 했으며, 일본 결혼 이민 10년 차인 지인도 태몽 문화가 있다고 말했다. 비교적 꿈 풀이를 중시하는 동아시아 문화권을 벗어나면 ‘태몽’이라는 개념은 희박한 것 같았다. 과장해서 생각하면 신이 동북아시아 민족에게만 허락한 특별한 예지력 같은 것일 수 있겠는데, ‘국뽕’을 넘어 ‘대륙 뽕’이나 ‘인종 뽕’ 경지에 다다를 것 같아 주의하기로 했다.
영화 <인셉션>처럼 꿈의 파도가 밀려드는 사이 또한 주가 지났다. 7주 차 검진일도 다가왔다. 조마조마함에 아내의 손을 잡고 들어간 진료실 너머로 태아의 심장 소리가 ‘삑~삑~’하고 들려왔다. 분당 심장 박동 수가 평균치 대비 20회 가량 낮단다. 다음 검진 때 다시 봐야겠지만, 수치가 오르지 않으면 안심할 수 없다고 했다.
기억 속에서 태몽에 등장했던 야무진 생물체들을 끄집어냈다. ‘힘들어도 조금만 더 단단하게 버텨 줄래?’라고 되뇌었다.
동북아시아 일부 지역의 문화일 뿐이라고 직접 확인까지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순간 불안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해 비빌 언덕은 태몽뿐이었다. 나는 나약했다.